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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속지 말자는 다짐 무너지다, <로미오와 줄리엣>
2003-10-16

내내 비가 내렸던 지난 여름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종로거리를 쏘다니곤 했던 나의 십대가 유난히 생각났다. 장대비 속에 우산을 꽉 잡고 길바닥에 원을 그리며 튕기는 빗방울을 보기만 해도, 그땐 그냥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난히 종로 언저리에 추억이 많았던, 모범생의 일탈을 즐겼던 나의 십대는 허리우드극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갔던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되었다. 대한극장에서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같은 단체관람용 영화를 보았던 것이 전부였던 내가 처음 시내 개봉관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같은 사건이었다. 늦었다 생각되어 친구들과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막 뛰어올라가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뭐니뭐니해도 올리비아 허시의 영화였다. 알쏭달쏭한 순백의 표정을 짓는 그 예쁜 얼굴(물론 백치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과 발코니 장면에서의 그 커다란 젖무덤은 그냥 내 가슴에 팍 꽂혀버렸다. 그 이후로 그녀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를 보기 시작했고, 회색 스웨터를 입은 가운데 가르마를 탄 풍성한 생머리의 그녀 패널을 방에 걸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감수성이 풍부한 그 시절, 왜 남자배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남자배우의 잘생기긴 했지만 악센트 없었던 외모 때문이었을까? 아님 무모한 줄리엣에게서 더 감동을 받아서였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실 내 사랑법에 은근히 큰 영향을 끼친 영화다. 사랑의 유일성이나 영원성에 대한 환상에 지나치게 시니컬했던(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내가 줄리엣으로 인해 사랑에 대한 솔직한 태도나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죽음으로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영원한 사랑에 대한 맹세 따위는 환상이라 여겼다. 유일한 사랑!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로미오는 다른 여자를 찾아서 온 파티에서 줄리엣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온리 러브를 말하는 것은 역시 달콤하지만 헛된 맹세에 불과한 것이라 여겨졌다. 하나 파티장에서 두 번째 키스를 이끌어내고, 발코니에서 숨김없이 사랑을 밝히는 줄리엣의 그 열린 솔직함에는 감동을 받았다. 그녀가 짧지만 꿈같은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존심이나 우유부단함으로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녀의 태도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철없어 보이는 무모함이 참 부러웠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여자의 일생>이나 <테스> 같은 소설들을 읽은 뒤 나는 남자에 속지 말고 어리석은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굳게 다짐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본 줄리엣은 어리석지 않고자 하는 사랑법이 가질 수 있는 지나친 방어적 자세 대신에 사랑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가르쳐주었다. 한편으론 한없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소녀의 여린 가슴은 아마도 이런 다짐들에서 만들어진 자동방어 메커니즘으로 상처받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짐이 지나쳤다면 나는 냉소적으로 사랑을 조롱하는, 절절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반쪽짜리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자기방어와 솔직한 용기가 상호충돌하여 때때로 매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십대에 가질 수 있었던 그 우연한 중용은 분명 행운이리라. 사진으로 본 20대의 올리비아 허시에 너무 실망해 그동안 그녀를 잊고 살았는데, 지금 이 순간 문득 그녀가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설마 죽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너무나 짧은 시간 빛나던 올리비아 허시의 미모처럼 격렬하게 빛나는 사랑이란 짧을 수밖에 없는 건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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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전략정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