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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실/애니멀팜
2001-01-09

시사실/애니멀팜

시사실/ 애니멀팜

발문 : <애니멀팜>은 원작의 스토리라인에 충실한 편인데, 이게 좀 과한 욕심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야기에 쫓겨 캐릭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해 각색의 묘를 살리지 못한 결과 꾸밈새에선 <꼬마 돼지 베이브>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개봉/ 12월30일 상영관/ 서울 - 중앙시네마

Animal Farm 제작 비콘 픽처스 감독 존 스티븐슨 원작 조지 오웰 각색 앨런 제인스, 마틴 버크 프로듀서 폴 로윈, 모건 오설리번, 그레그 스미스 촬영 마이크 브루스티 편집 콜린 그린 미술 브라이언 애클랜드 스노 음악 리처드 하비 특수효과 콜린 올웨이, 앵거스 비커톤 목소리 출연 줄리아 오몬드, 피트 포슬스웨이트, 패트릭 스튜어트, 이안 홀름 수입·배급 베어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1999년 상영시간 91분 등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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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주인 존스는 빚덩어리에다 술주정뱅이. 그의 학대와 굶주림을 못 견딘 동물들이,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 돼지 메이저의 가르침에 따라 봉기한다. 승리한 동물들은 인간의 역습을 이겨내고 동물농장 건설에 매진한다. 그러나 음흉한 돼지 나폴레옹은 메이저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용맹한 스노볼을 반역자로 몰아 쫓아낸다. 특권계급이 된 지도자 돼지들은 친위대를 조직하고 공포정치를 실현한다. 돼지들은 그들이 증오했던 인간의 추태를 고스란히 닮아가고, 인민 동물들은 다시 굶주림과 노동에 지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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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돼지 베이브>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실사영화로 만든다는 발상은,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고 인간의 표정을 짓게 만든 <꼬마 돼지 베이브>의 성취, 애니매트로닉스라는 마술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애니멀팜>의 동물들은 수도 많고 캐릭터도 더 복잡하다. 전혀 다른 스토리지만, 그래도 <애니멀팜>은 <꼬마 돼지 베이브>를 생각나게 하고, 좀 그리워하게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 <동물농장>은 러시아 사회주의의 우화다. 등장 캐릭터들은 꽤 직접적으로 이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재현한다. 이를테면, 늙은 혁명가 돼지 메이저는 마르크스, 용맹하고 명민한 흰 돼지 스노볼은 트로츠키, 음흉하고 탐욕적인 돼지 나폴레옹은 스탈린에 해당된다. 인간이라는 착취계급을 몰아낸 동물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인간들로부터 위협받으면서, 더욱 고단하게 노동해야 한다. 혁명가그룹인 돼지들은 부패해 점점 타락한 인간을 닮아간다.

<애니멀팜>은 원작의 스토리라인에 충실한 편인데, 이게 좀 과한 욕심이 돼버렸다. 실사영화에선 소설에서와 달리 동작의 사실감이 있어야 하는데, 족발로 글씨를 쓰고 풍차를 만드는 건 아무리 봐도 수긍하기 힘들다. 게다가 원작엔 없는 동물들의 방송장면까지 끌어들인 건 너무 심했다. 이야기에 쫓겨 캐릭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도 약점이다. 요컨대 <애니멀팜>은 기술적으로는 감탄할 만하지만, 각색의 묘를 살리지 못해 꾸밈새에선 <꼬마 돼지 베이브>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2300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TV용 영화. 감독 존 스티븐슨은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에서 주요 스탭으로 참여해온 경력자지만,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아버지 피트 포슬스웨이트가 쫓겨나는 농장주인과 회의주의자 당나귀 벤자민의 목소리를 맡아 희귀한 1인2역의 사례를 남겼으며, <가을의 전설>의 줄리아 오몬드는 현명한 개 제시의 목소리를 냈다. 최고의 목소리 연기는 <엑스맨>의 패트릭 스튜어트가 맡은 나폴레옹. 동물농장을 불행으로 몰고가는 당사자이지만, 음흉하고 거친 목소리 덕에 제일 중량감 있는 캐릭터가 됐다.

허문영 기자moon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