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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릴레이] <미스틱 리버> - 허문영 영화평론가
2003-12-09

깊은 강은 멀리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고 되돌아온다. 강 깊은 곳에 그들의 과거가 묻혀 있다. 그들은 강물에 과거를 묻어 떠나보내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끊임없이 현재로 되돌아온다. 강물은 흐르지만 그것은 수면뿐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과거는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되돌아와 현재를 덮친다. 미래는 과거로의 영겁회귀다. 그것이 ‘미스틱 리버’라는 물리적 공간이 전하는 진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액션 영웅 출신으로 걸출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기적적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4번째 연출작 〈미스틱 리버〉는 범죄 스릴러의 탈을 쓴 음산한 드라마다. 미스틱 강이 흐르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세 소년 지미(숀 펜), 숀(케빈 베이컨), 데이브(팀 로빈스)는 데이브가 변태성욕자들에게 납치돼 강간당한 뒤 다시는 유년기의 친밀함을 회복하지 못한다. 지미의 딸 케이티 피살사건으로 다시 모이지만 그들은 해후를 반기지 않는다. 형사가 된 숀은 동료에게 “데이브는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미는 데이브가 범인이라고 믿는다. 데이브는 둘 모두에게 여전한 선의를 드러내지만 불행하게도 강간 사건 뒤로 그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그들은 모두 25년 전의 악몽에 포획돼 있다. 〈미스틱 리버〉는 살인 사건이 아니라 과거라는 블랙홀, 환기 불가능한 죄의식의 공기에 관한 영화다.

세 친구를 붙들고 있는 과거의 장력은 그러나 동일하지 않다. 숀은 형사가 됨으로써, 지미는 범죄세계에 속함으로써 유년기와 단절했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데이브는 아내와 자식이 생겼지만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다. 데이브는 강물 위를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린다. 그에겐 성인의 부력이 없다. 뱀파이어 영화를 보면서 그는 “저들은 산송장이지만 아름다워. 인간의 장점을 잊고 살잖아”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이미 반쯤 뱀파이어다. 숀과 지미에게 데이브는 과거로부터 온 유령이다. 그들의 평온을 위해 데이브는 강바닥에 가라앉혀 과거로 돌아가야 할 존재다. 그걸 원하고 있음을 자신들은 알지 못한다. 카메라가 관객에게 넌지시 일러줄 뿐이다.

카메라는 누구의 시점도 특권화하지 않는다. 페이스는 느리게 느껴지지만 〈미스틱 리버〉는 컷이 많은 영화다. 쉴 새 없이 자리를 옮기는 카메라에 의해 모두가 관찰하고 관찰되지만 데이브는 더 많이 관찰된다. 카메라는 홀로 있는 데이브를 잘 비추지 않는다. 홀로 있는 숀과 지미에게 데이브는 늘 유령처럼 등장해 상대방을 굽어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영화의 미스터리 플롯을 이끌고 가는 유일한 열쇠이며 카메라가 생략한 살인 발생 당시의 짧은 시간에 모든 등장인물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 짧은 시간이 온갖 과거가 되살아나 데이브를 영원히 빨아들일 구멍이다. 문제의 시간에 지미가 18년 전에 사용했던 권총이 되살아나 발사되고, 25년 전의 악몽이 데이브를 완전히 덮친다. 25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차에 실려온 데이브를, 지미는 15년 전 밀고자를 살해했던 곳에서 난자해 강바닥에 묻는다.

과거는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올해의 가장 냉혹한 영화

이 이야기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실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데이브란 존재 자체다. 지미와 숀이 죽은 딸과 사라진 아내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를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는 동안 데이브만이 온전한 자의식을 지녔으며 또한 자기 운명을 알고 있다. 그는 죽어가며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라고 말할 뿐이다. 지미의 아내는 “가족을 위해 한 어떤 일이라도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말하니 아이들이 편히 잠들었어요”라고 사악하게 말한다. 무엇보다 데이브만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 그의 영혼만이 과거에 속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의 축제 행렬은 데이브의 이름이 다 씌어지지 못한 25년 된 보드블록 곁을 지나간다. 엔딩 크레딧을 예비하는 카메라는 강물 위를 비행하다 강 속의 어둠으로 빠져든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묻고 웃으며 미래로 향해가지만 데이브는 또다른 이름으로 회귀할 것이다. 고요하고 심심하며 느려터진 이 미스터리는 올해의 가장 무섭고 냉혹하며 비판적인 영화다. 〈미스틱 리버〉는 〈용서받지 못한 자〉 〈미드나이트 가든〉과 함께 이스트우드의 최고작 자리를 겨룰 자격이 있다. 허문영/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