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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신문 제25호(1960∼1961)
김재희 2003-12-09

영화사신문 제25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 · 발행 씨네21 · 편집인 김재희

1960 ~ 1961

<싸이코> 영화미학의 새 장

샤워실 살인장면, `감각의 시대' 문 열어

충격적인 샤워실 살인장면을 선보인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할리우드 영화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평론가들은 과도할 정도로 쇼킹하고 센세이셔널한 샤워실 살인장면에 주목하며, “<싸이코>는 20세기 말의 주류 영화미학이 될 만한 것의 도래를 상징하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기존의 할리우드영화를 특징지웠던 “정서의 영화”(cinema of sentiment)로부터 독립해 성장하기 시작한 “감각의 영화”(cinema of sensation)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히치콕의 <싸이코>가 관객 내부에 본능적으로 잠재해 있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확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뉴웨이브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싸이코>는 영화관객의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본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미학의 영화”라고 극찬했다. 그는 영화의 역사를 두동강낼 만큼 획기적인 영화로 <싸이코>를 지목하고, 바로 그 순간으로 여주인공 마리온 크레인(재닛 리)이 칼에 난자, 살해되는 모텔 샤워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은 내러티브에 우선순위를 두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규칙을 깨는 것으로, 무엇보다 센세이션(감각)을 위해 고안된 장면이라는 것이다.

영화계가 주목한 <싸이코>의 또 다른 특기할 만한 점은 비일상적인 드라마적 장치이다. 영화 중반 이전에 여주인공을 심술궂게 살해해버리는 전복적인 플롯은 샤워실 장면이 창조해낸 강력하고 새로운 시각적 미학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싸이코>의 줄거리 구성은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전통적 가치를 전복시킬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할리우드의 베테랑 감독인 히치콕은 자신이 만든 첫 공포영화인 <싸이코>의 흥행성적에 몹시 안달해한다고 전해진다.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시네마베리테 등 反상업화 운동 봇물

영화의 주류를 바꿔보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6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세계 곳곳에서 상업영화에 반발하는 영화인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 ‘시네마베리테운동’ 등의 형태로 할리우드를 대표로 한 기존 영화계에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60년 9월 요나스 메카스, 셜리 클라크를 비롯한 뉴욕의 독립영화 감독·제작자들이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을 결성하고 기존의 영화를 “허위가 가득하고 호화로운 영화들”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더이상 장밋빛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핏빛 영화를 원한다”라며 “거칠고 못 만들었어도,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토로했다. 앤디 워홀 등 전위적인 예술가들도 이 그룹에 가담했다. 프랑스의 뉴웨이브, 영국의 프리시네마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훨씬 대담한 이들은 주제와 테크닉 면에서 상업영화와 차별화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메카스는 16mm 실험영화를 다수 제작하면서, 1956년엔 <필름 컬처>(Film Culture)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어 61년 프랑스에서는 장 루슈가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과 함께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내놓으며 ‘시네마베리테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극적 구성을 피하는 대신, 렌즈의 기록성을 최대한 살려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 인터뷰 형식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영화 도입부에서 이 영화가 “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라고 명백히 하고 있다.

영화계의 이같은 사회참여적이고 운동적인 성향은 멀리 일본에서도 ‘새로운 물결’이란 이름으로 함께 나타났다. 오시마 나기사는 60년, ‘미-일 안보조약’(Ampo)에 대한 좌파 학생들의 투쟁을 가차없이 비판한 <일본에서의 밤과 안개>를 만들어 개봉했지만, 즉각 상영 중단됐다. 또 이마무라 쇼헤이는 61년 <돼지와 군함>을 통해 날카로운 정치·사회 비판을 보였다.

주제:할리우드 영토확장 러시

TV명화 제작·기내 상영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 나서

TV 등 새로운 매체에 당하고만 있던 할리우드의 역공이 시작됐다. 60년대 들어 뉴미디어들을 영화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할리우드는 이제 ‘영화=극장에서’란 도식을 무너뜨리며, 안방으로 항공기로 ‘상영관’을 넓히고 있다.

61년 9월 에 <토요일 밤을 명화와 함께>(Saturday Night at the Movies)란 프로그램이 첫선을 보였다. 주요 시간대에 영화시리즈 프로그램이 편성된 첫 케이스로, TV를 통해 할리우드영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란 분석이다. 첫선을 보인 <토요일 밤을…>을 장식하게 된 영화는 와이드스크린 코미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이다.

앞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텔레비전 쇼를 제작해오고 있다. 대규모 스튜디오의 영화제작이 감소한 탓이다. 이들 스튜디오들은 또 극장 상영과 텔레비전 방송에 둘 다 쓰일 수 있는 독립영화 제작에 필요한 제작시설을 대여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황금시간대 TV 진출에 앞서 할리우드영화는, 항공기를 새로운 영화상영 매체로 끌어들였다. 61년 7월 TWA 에어라인은 퍼스트 클라스 승객을 대상으로 영화상영을 시작했다. 비행 중(in-flight) 상영이 정규화되기는 TWA가 첫 시도였다.

미국의 영화제작사들은 이 밖에도 음반, 출판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이미 착수했다.

진짜 사나이 사라지다

클라크 게이블 심장마비, 유작은 카우보이 역할

“완전한 남성성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이 세상에 딱 한명뿐이다.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다.”

클라크 게이블의 마지막 영화였던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0)의 제작자였던 프랭크 테일러는 그를 남성성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이 영화의 각본을 썼던 극작가 아서 밀러도 그가 만났던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며 클라크 게이블에게 “유일한 진짜 사나이”란 호칭을 선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로 뭇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클라크 게이블이 1960년 11월16일 세상을 떴다. 향년 60살.

그는 죽기 직전까지 배우의 길을 걸었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가 죽던 해 찍은 영화. 존 휴스턴 감독의 연출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 그는 나이를 잊고 스턴트 연기를 직접 했다. 나이 든 카우보이 역할이었는데,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나흘 뒤 심장마비로 쓰러져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5개월 뒤 그의 늦둥이 아들 존 클라크 게이블이 태어났다.

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사나이 연기’의 전형으로 통한다. 남북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환경을 뚝심으로 이겨나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지의 위력을 보여줬다. 앞서 35년 <어느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부터 그는 이미 할리우드의 왕자였다. 훤칠한 체격에 막힘없는 성격의 그를 보며 여성관객은 주저하지 않고 ‘할리우드 제1의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배우’란 호칭을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는 그의 남성성은 영화계 입문하기 이전 벌목공, 유전의 인부, 농부, 그리고 영업사원 등으로 활동했던 그의 선 굵은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지방 극단의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 할리우드에서 갱(gang) 연기를 통해 영화계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외에 <바운티호의 반란>(1935), <모감보>(1953),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0)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블랙리스트 무용지물, 대부분 가명으로 활동

1960년대 들어, 1950년대의 악명 높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많은 감독들이 강제로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배우들은 은퇴를 하거나 연극으로 방향을 돌린 반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익명이나 가명으로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할리우드 10대 작가” 중 한명인 달튼 트롬보는 두개의 신작영화의 작가로 크레딧에 올랐는데, 하나는 유니버설이 제작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커스>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제작한 오토 프레밍거의 <영광의 탈출>이다. 재미있는 것은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으로 1956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로버트 리치는 트롬보의 필명에 다름 아니며, <콰이강의 다리>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불이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1957년 아카데미 각본상은 사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국에 망명 중인 칼 포맨과 마이클 윌슨이 공동 원작자라는 사실이다.

화제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헨드헬드·점프컷 신기술 등장

장 뤽 고다르의 첫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60)가 개봉과 동시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할리우드 B급영화의 산실인 모노그램픽처스에 헌정하는 이 영화는 젊은 자동차 도둑(장 폴 벨몽도)이 경찰을 살해하고 미국인 여자친구(장 세베르)와 도주를 한다는 스토리. 플롯은 관습적이지만, 시나리오는 정반대이다. 미국 갱스터영화의 직접성과 경제주의를 영화 속에 다시 구현하고자, 고다르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촬영기사 라울 쿠타르도 종종 기용하면서 핸드헬드 카메라와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또 전통적인 구축숏(establishing shots)을 생략하는 과감한 점프컷(jump cuts)도 사용했다. 고다르는 배우에게 큐사인과 동시에 펼쳐지는 즉흥연기를 요구했고, 영화 찍는 내내 연기동선을 익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 벨몽도와 매혹적인 세베르가 보여주는 유례없이 신선한 연기는 영화제목(breathless)처럼 관객을 숨막히게 했다고.

르네 클레망, 뉴웨이브 합류

르네 클레망은 신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에서 젊은 날의 고뇌가 팽만한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뉴웨이브(New Wave) 시나리오 작가인 폴 제고프가 각색을, 뉴웨이브 스타일에 공을 세운 뛰어난 촬영기사 앙리 드케가 촬영을 맡았다. 194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B급영화의 음울한 정취를 떠오르게 하는, 태양빛에 잘 그을린 필름누아르인 <태양은 가득히>. 이 영화에서 24살난 알랭 들롱은 엄청난 부와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파멸하는 주인공 톰 리플리 역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문제적 청년 톰 리플리는 친구 필립(모리스 로네)을 속여 돈을 갈취하고, 그를 죽인 뒤 그의 여자친구 마리 라포레를 자기 여자로 만든 다음, 죽은 친구의 행세를 하는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 원제는 <자줏빛 정오>(Purple Noon).

“명작을 몰라보다니” <피핑 톰> 평단 혹평

영국 합작 공포영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마이클 파웰의 신작 <피핑 톰>(1960)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있다. 정신병에 걸려 여자들을 살해하는 젊은 영화 촬영기사 역으로 칼 봄이, 그의 타깃이 되는 발레리나 역에 모이라 시어러가 각각 열연했다. 16mm 카메라로 타깃이 되는 여인들을 훔쳐보며 카메라의 삼각대 다리로 희생자들을 찌르는 엽기적 행각을 보여주는 <피핑 톰>은 많은 이들을 곤혹스럽게 할 만큼 추악하면서도 대담하고 놀라운 영화다. 파웰 자신이 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고의로 자기 아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그의 반응을 촬영하는 심리학자로 출연한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아이는 파웰의 아들 콜롬비아가 직접 연기했다. 한 분노한 평론가는 “한마디로 <피핑 톰>은 수세식 변기로 씻어내려버려야 마땅한 영화”라고 평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블랙유머, 그리고 파웰의 주된 관심사인 인생과 예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치밀한 탐구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미덕으로 그를 논쟁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