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씨네클래식
영화사신문 제27호(1964∼1965)
김재희 2003-12-15

영화사신문 제27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 · 발행 씨네21 · 편집인 김재희

1964 ~ 1965

'마카로니 웨스턴' 나가신다

개척정신은 없다, 단지 냉혹한 총잡이의 세계만 있을 뿐

세르지오 레오네 <황야의 무법자>/b>

세르지오 레오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 세 사람으로 충분했다. 60년대 들어 시작된 서부영화의 탈신화화는 이 세 사람의 협업으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장르를 탄생시켰다.

64년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65년 <속 황야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는 ‘마카로니 웨스턴’(macaroni western)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원조격인 미국 서부극을 압도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기존의 미국 서부영화가 왜곡했던 미국 역사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촬영한 광활한 풍광, 심도를 왜곡시키는 광각렌즈의 사용 등 레오네의 화려한 시각적 양식은 서부영화 장르의 관습을 완전한 의식(儀式)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얻고 있다. <황야의 무법자>는 한 사나이가 강력한 두 패거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이익을 챙기고, 끝내 그들을 제거한다는 내용. 플롯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61년작 <요짐보>(Yojimbo)에서 따왔다. 찌푸린 인상에 담배를 씹어 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그저 냉혹하고 자기 자신만을 챙기는 새로운 총잡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잔혹하고 강렬한 서부극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레오네 감독은 사실 밥 로버트슨이란 미국식 가명으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고, 다른 이탈리아 스탭 역시- 심지어 엔니오 모리코네는 댄 사비오라는 이름으로- 가명을 사용했다. 10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야외촬영은 스페인에서, 실내신은 로마의 시네시타에서 찍었다.

‘무법자’ 시리즈, 다시 말해 ‘마카로니 웨스턴’의 출현을 얘기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애초 클래식의 대가를 꿈꾸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음악을 맡기 시작했는데, <황야의 무법자>로 뜨기 전에도 몇개의 가명을 쓰며 <일 페데달로> 등 영화작업에 참여해왔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웅장한 현악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영웅화하거나 갑작스러운 휘파람 소리로 그것을 조롱하기도 했다. 레오네는 모리코네를 자신의 ‘각본가’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그것은 감정을 표현해주는 그의 음악이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레오네 감독은 66년 개봉을 목표로 ‘무법자’ 시리즈의 완결판격인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컬러는 ‘마음 상태로서의 풍경’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붉은 사막>으로 현대적 미감 창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자신의 첫 번째 천연색 영화 <붉은 사막>(The Red Desert, 1964)에서 상징적이고 표현주의적 색채를 사용, 현대영화의 새로운 미감(美感)을 창조했다. 이 영화는 신경증에 시달리는, 부유한 엔지니어의 아내 질리아나(모니카 비티)가 산업사회의 불모지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개인적인 혼돈, 그리고 자연과 산업사회가 복잡하게 충돌하는 과정을 안토니오니는 상징적 색채와 추상적 형식미를 통해 모던하게 드러냈다.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파도치는 거대한 노란색 연기, 항구의 회색 안개를 뚫고 계속해서 오가는 선박들, 그리고 공장 쓰레기에 불쾌한 빛을 던지는 산업염료들, 이 모든 것이 마을의 자연적 풍광을 침입해 들어가는 것들로 제시된다. 또한 깊은 붉은색과 녹색은 남편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정신상태를 드러낸다. 반면 밝은 색조는 그녀가 공상의 나래를 펴 판타지로 진입할 때 쓰였다. 여주인공의 정신질환은 현대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와 고독에 대한 징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니가 산업 구조물에서 발견한 단아한 선들과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순도의 색채, 매혹적인 질감 등은 그를 가장 현대적인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자리잡게 했고, 1964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영화계도 비틀스 열풍

일상 다룬 <하드 데이즈 나잇> 개봉, 리처드 레스터 자연스런 카메라와 신선한 영상으로 큰 반향

미국의 리처드 레스터 감독은 별다른 플롯없이 희대의 스타 비틀스의 일상을 그냥 쫓아다녔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독특한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주연이야 당연히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64년작 <하드 데이즈 나잇>(A Hard Day’s Night)이다.

영화는 비틀스 멤버들이 리버풀에서 ‘비틀마니아’(Beatlemania)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TV쇼 출연차 런던행 기차에 오르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런던에 도착한 비틀스 멤버들은 리허설 도중 무대를 빠져 나와 TV 연출진을 당황하게 한다.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캔 바이 미 러브>(Can’t Buy Me Love)를 배경음악으로 공터를 달리는 비틀스 멤버들은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비틀스 멤버들의 무정부적인 성향을 반영이라도 하려고 했을까. 레스터 감독은 비틀스 멤버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영화를 찍었다. 때로는 헬기를 동원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파격적으로 의외인 장면에 비틀스의 음악을 배치하고, 과감한 점프 컷(jump cuts)과 플래시백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메라 기법을 자유롭게 동원했다. 이 작품은 막 스타덤에 오른 비틀스의 하루를 따라가보자는 감독 리처드 레스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계기로 레스터는 유명세를 얻었다. 영화 내엔 타이틀곡인 <하드 데이즈 나잇>을 비롯해 히트곡 13편이 들어 있다. 이 영화는 비틀스가 TV쇼인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 미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개봉되었다.

중국 문화혁명 바람

마오쩌둥 “사회주의적 혁신” 성토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문화’ 개념의 재정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중국 영화계에도 한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 영화계의 쇄신 조짐은 마오의 아내인 장칭(江靑) 휘하에 있는 연극계에선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이다. 모든 고전적인 레퍼토리는 진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마오 주석은 64년 2월 <인민일보>를 통해 “작가들, 극작가들, 영화감독들이 당의 노선을 따르고 있지 않다”며 강한 불만을 표명했다. 마오는 이어 “그들은 수정주의라는 미끄러운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라며 “온 나라가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해(1963) 12월에도 마오는 “많은 영역에서 사회주의적 혁신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과거의 것들이 아직도 군림하고 있다”고 성토한 바 있다. 매년 480여편의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영화계에 이데올로기 측면의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줄리 앤드루스 ‘즐거운 비명’

<메리 포핀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사운드 오브 뮤직> 흥행 신기록

줄리 앤드루스는 연극무대에서 자신의 출세작인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의 영화화 과정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픽처스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스타인 앤드루스를 버렸다. 대신 대중적 인기에서 앤드루스를 능가하는 오드리 헵번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앤드루스는 헵번을 포함, 쟁쟁한 여배우들을 물리치고 196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영화로는 데뷔작인 <메리 포핀스>(1964)의 주인공 자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출연작인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은 20년 넘게 깨지지 않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하며 영화사에 남을 명화로 기록됐다.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이 연출한 <메리 포핀스>에서 ‘신인’ 앤드루스는 탁월한 노래와 마술사 연기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이어놓았다. <메리 포핀스>는 특히 영화사 최초로 실사(實寫)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을 시도하며 영화 기술사적으로도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작사인 월트 디즈니는 이용 가능한 영화 기술을 총동원해 특수효과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세운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앤드루스의 전공 장르인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의 영화화에 앞서 50년대 말 이후 1400여회의 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또 뮤지컬에 앞서 56년 <트라프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미 독일에서 한 차례 영화화되기도 한 폰 트라프 일가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감독 로버트 와이즈는 이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뮤지컬영화의 대가로 인정받은 인물. <도레미 송> <에델바이스> 등 걸작 삽입곡은 뮤지컬에서 이름을 떨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합작이다.

뒤늦게 영화에 데뷔, 60년대 중반 영화계를 석권한 줄리 앤드루스는 영국 태생으로 12살 때부터 무대에 섰고, 54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역시 뮤지컬 배우였던 줄리 앤드루스의 부모들은 네 옥타브를 내지르는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찌감치 줄리에게 노래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단 신 들

시나리오작가 유니버설과 판권 소급 계약

65년 12월 미국 시나리오작가협회(The Screen Writers Guild)는 1948∼60년에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효력이 소급되는 새로운 판권 계약을 유니버설픽처스와 맺었다. 이 계약으로 시나리오작가들은 그들이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당시 영화들이 텔레비전에 방송될 경우 유니버설픽처스가 얻는 수익의 1.5%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 뤽 고다르 SF스릴러 도전

장 뤽 고다르는 신작 <알파빌>(Alphaville, 1965)에서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소외’문제에 대한 우화를 만들기 위해 SF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시간적 배경은 미래의 어떤 시점. 비밀 요원인 레미 코숑(대중적인 스릴러 배우인 에디 콘스탄틴이 맡음)은 우주 밖 외계의 나라로부터 알파빌이라는 도시로 우주여행을 하는 중이다. 알파빌이라는 도시에서 그가 행해야 할 임무는 폰 브라운 박사를 파괴시키는 것. 폰 브라운 박사는 알파빌 시민들을 무감각하게 하고 생기없이 멍청하게 만들는 ‘알파 60’이라는 컴퓨터의 발명자이자 조정자이다. 코숑은 폰 브라운 박사와 알파 60을 파괴한 뒤 브라운 박사의 딸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알파빌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원래 <타잔 vs. IBM, 알파빌>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고다르가 가장 공을 들인 작품 중 하나. 내러티브와 등장인물의 대사에서 SF임을 느끼게 해주는데, 촬영기사 라울 쿠타르는 현대의 파리 시내를 그대로 찍어냄으로써 비인간화된 미래도시를 화면에 창조해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였다.

카트린 드뇌브 사이코 변신

인간 내부에 있는 사악한 본능과 악성(惡性)에 대한 탐구를 세밀하게 다루는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1965년작 <혐오>(Repulsion)에서 우아한 카트린 드뇌브를 사이코로 등장시켰다.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차가운 금발 미녀(카트린 드뇌브)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성적인 공포로 인해 자신의 남자친구인 존 프레이저를 살해하기에 이르고, 또 호색한인 집주인 패트릭 와이마크를 면도칼로 난자해 죽인다. 관객은 포장도로에 난 균열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그녀의 강박증에서부터 그녀 안에 자꾸만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망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눈을 통해 광기의 끝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의 숨막힐 듯 부패한 감각은 드뇌브의 핸드백에 쑤셔박혀 있는 태아(胎兒) 같은 피부를 한 토끼 이미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