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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반복적 희화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영진 2003-12-30
남북관계는 언제까지 희화화를 위한 소재로 쓰일 것인가. 혹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의지없는 생이 펼쳐질 때 누군들 당혹스럽지 않을까.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백두’(정준호)와 ‘동해’(공형진) 또한 그렇다. 이들의 죄라곤 만취한 상태에서 해일을 만나 남한의 피서지로 쓸려왔다는 것뿐. 어떻게든 북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 앞에 놓인 길은 험한 장벽투성이, 천신만고다. 남북이라는 소재를 끌어왔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광복절특사>를 연상케 한다. 어렵사리 탈옥했지만 어떻게든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두 청년의 아둥바둥이 기를 쓰고 북조선으로 유턴하려는 두 군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잠깐. 여기서 <간첩 리철진>을 돌이켜보자. 막중한 임무를 진 남파간첩은 택시강도에게 봉변을 당하고, 외려 한몫 보겠다고 어수룩한 사내를 후려친 남한 강도들은 간첩으로 몰린다. 군 생활 도중 졸지에 남파간첩 꼴이 된 동해와 백두는 어떤가. 제발로 경찰서에 들어가 ‘우리 위에서 내려왔수다’라 했더니 고위급 인사가 내려보낸 이들이라고 착각하고 굽실거린다. 북쪽 사투리를 주야장천 써도 별 수 없다. ‘조선족’이라고 넘겨짚으니 말이다.

시내 한가운데에 마련된 이벤트 코너에서 팩 마사지를 받고, 자장면을 실컷 먹고서 신용카드인 양 전화카드를 내미는 배포를 과시하고, 일대 양아치들을 혼내주는 치안 업무까지 본의 아니게 맡아야 하는 이들 혁명전사들은 과연 공화국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카메라는 뗏목을 만들기 위해 송림보호 지역에서 톱질을 하고, 배를 훔치려다 걸려 오징어를 잡아야 하는 등 수난이 끊이지 않는 이들 두 사람을 뒤쫓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코믹 확장판이기도 하다. 경계선을 넘나들던 그들만의 암구호가 쵸코파이와 김광석에서 코카콜라와 wax로 바뀌었을 뿐이다. 가출한 경찰청장의 딸을 매개로 두 청년의 주위에 어리버리한 두 형사, 노는 것밖에 모르는 고딩들이 달려들어 2인3각 게임을 벌이지만 앙상한 이야기를 만회하기 위한 방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점이 없진 않다. 상황에 걸맞게 배우들이 쏟아내는 애드리브의 분출은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다. 설명이 과하지도, 그렇다고 슬그머니 건너뛰지도 않는 드라마의 매끄러운 연결 또한 안진우 감독의 공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로 데뷔한 안 감독은 기존 코미디 영화의 컨셉과 장치들을 끌어와 접합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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