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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랄 데 없는 즐거운 오락, <자토이치>
김현정 2004-01-27

눈감고도 피를 부르는 맹인 검객, 부모의 원수를 찾아 칼을 품은 게이샤 자매, 관직에서 쫓겨나고 아내까지 잃은 사무라이, 야수처럼 잔인한 악당들. 이런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매우 웃기는 영화

<자토이치>는 1962년부터 26편의 시리즈영화로 만들어졌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1997년 사망한 배우 가쓰 신타로가 그 시리즈의 주연이었고, 27년 동안 자토이치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쓰만의 캐릭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그 완고한 영토를 허물어뜨렸다. 맹인이고, 도박의 명수고, 검술의 달인이라는, 단 세 가지 특징만 물려받은 기타노 다케시는 코믹하고도 단호한, 특유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금발의 검객 자토이치를 창조했다. 자토이치는 단 몇번의 움직임만으로 액션을 끝내버리지만, 눈감은 그의 지팡이는 그저 피를 뿌리는 검이 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팡이로 톡톡 두들기고 공기를 가르고 사건을 만들면서, 자토이치는 어느 곳에도 없는 재미있고 잔인한 세상을 여행한다.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는 발검과 동시에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맹인 검객이다. 그가 잠시 머무르고 있던 마을에 관직을 박탈당한 사무라이 하토리(아사노 다다노부)와 떠돌이 게이샤 자매가 찾아든다. 자매는 오래전 부모를 살해한 검객 일당을 찾고 있고, 하토리는 병든 아내의 약값을 벌기 위해 그 일당의 하수인이 되었다. 자토이치가 하토리와 마주치고, 우연히 게이샤 자매를 돕게 되면서, 조그만 시골 마을은 그들의 대결과 복수로 피에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도쿄 아사쿠사에서 코미디쇼를 하던 젊은 시절부터 스승이었던 사이토 치에코의 부탁으로 <자토이치>를 받아들였다.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참고 참았던 뜨거운 기운이 어느 한순간을 감싸안았던 전작들과도 다르지만, <자토이치>는 기타노의 무심한 웃음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영화다. 밭을 가는 농부들이 한번 삽질을 할 때마다 그 소리는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을 따라 사무라이 행렬과 맹인 검객의 더듬거리는 발걸음이 나아간다. 혹은 마을 사람들은 악당이 사라진 걸 축하하는 축제에 모여 나막신을 딸그락거리며 대규모 탭댄스를 춘다. 기타노는 고아가 되어 몸을 팔며 살아온 자매, 사실은 남매의 복수담이나, 지키려 했던 걸 모두 잃어버린 하토리의 처절한 심정에는 잠깐 눈길을 주는 데 그친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몸짓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가벼우면서 자유로운 <자토이치>는 대가의 영화는 아니겠지만, 나무랄 데 없는 즐거운 오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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