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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가 없는 초국적 사무라이들의 활극, <사무라이>
박혜명 2004-02-17

신비스럽지 않은 고대의 악마와 게임용 액션에 능한 사무라이들의 활극

사무라이를 비롯한 일본 문화가 비단 할리우드만 탐내는 소재는 아니다. <사무라이>는 프랑스에서 홍콩과 일본의 스탭 및 배우를 끌어들여 제작하고 국제언어인 영어로 더빙한 영화다. 이런 다국적성 탓인지는 몰라도 <사무라이>는 정체가 없다. 결정적으로 제목이 되는 ‘사무라이’의 존재가 이 영화 속엔 없다. 뼈대있는 사무라이 가문의 후손조차 ‘철권’ 같은 비디오게임용 액션에 더 정통하다.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아바론>을 작업했던 가와이 겐지의 음악은 시작부터 친숙한 록 사운드와 랩 비트를 만들어 <사무라이>의 초국적성에 일익을 담당한다.

<사무라이>는 코데니라고 하는 고대 악마의 부활을 막으려는 인간들의 분투를 담은 액션스릴러다. 500년 전 후지와라 가문의 주문을 통해 부활한 이 악마는 그뒤로도 죽지 않고 처녀의 몸을 빌려 목숨을 부지해왔다. 초인간적인 존재에 툭하면 갖다붙이는 기독교적인 설정은 제쳐놓더라도 이 악마가 왜 후지와라 가문의 처녀만 골라 부활하는지, 왜 이번에는 하필 후지와라 경관의 딸인 아케미의 몸을 선택하게 됐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자기가 ‘간택’된 전후 사정도 모른 채 아케미는 불러오는 배를 움켜쥐며 괴로워하고, 코데니가 이끄는 ‘거대’ 범죄조직의 몇 안 되는 부하들은 아케미를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위험에 처한 아케미를 도와주는 사람은 수영장에서 한번 만난 뒤로 가까워진 프랑스 청년 마르코와 그의 수다쟁이 친구, 그리고 아케미의 아버지다. 아케미의 아버지인 후지와라 경관은 ‘다크 부시도’라는 폭력게임을 팔아 먹고사는 코데니와 그의 일당들을 뒤쫓다가 코데니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이 폭력게임을 통해 영화는 현실과 게임이 뒤섞여 있다는 설정까지 하고 있지만 여기에 속아넘어가주기도 쉽지 않다.

얼기설기 엮인 스릴러적 구도 탓에 액션의 통쾌함도 떨어지는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단 하나는 후지와라 경관 역을 맡은 야수아키 구라타다. 일본의 액션배우이자 가라데 마스터라고 하는 이 남자는 50대 후반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몸을 날린다. 그러나 이 멋진 배우가 딸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순간에도 감동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심심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제작자가 프랑수아 오종 영화의 프로듀서였다는 점은 가장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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