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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 가슴이 훈훈해지는 형제애, <붙어야 산다>
김용언 2004-02-25

외설스럽고 난폭하기 짝이 없던 패럴리표 화장실 유머는 기대하지 말 것. 대신 가슴이 훈훈해질 만한 형제애가 유쾌한 미소를 선사한다

32살 먹은 샴쌍둥이 테너 형제(이들은 ‘결합된 형제’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점잖게 밝힌 바 있다)는 마을의 명사다. 어떤 까다로운 주문이라도 3분 내에 해결하는 ‘번개 버거’의 공동 요리사이자 야구면 야구, 권투면 권투, 미식 축구면 미식 축구를 하는 족족 우승으로 이끄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게다가 형인 월트(그렉 키니어)는 직접 희곡을 쓰고 출연을 겸하는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내성적인 동생 밥(맷 데이먼)은 무대 공포증 때문에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면서도 기꺼이 형을 위해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함께 오른다. 그들이 함께라면 겁날 게 없다. 섹스문제만 해도 서로 조금씩만 양해하고 자세를 바꾸어준다면(!) 별 문제될 건 없다. 한명이 샤워할 때도 나머지 한명이 비옷만 입고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안온한 일상의 다사로운 행복이 월트의 폭탄 선언으로 산산조각나버린다.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프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다는 것! 대경실색할 노릇이지 않겠는가.

바로 그 순간, 밥을 유혹하려는 월트가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패럴리 형제가 누구던가? 외팔이(<킹핀>)와 거구의 여인(<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멍청이(<덤 앤 더머>), 정액 헤어젤을 바르는 여인과 지퍼에 거시기가 껴버린 가엾은 남자(<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알비노, 난쟁이(<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마이너리티를 등장시켜 천연덕스럽게, 감히, 코미디의 대상물로 삼지 않았던가. 그들이 대상에 무지막지하게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보는 이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며 이상하게 죄책감 서린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말지 않았던가. 이제 백인 샴쌍둥이와 유색 인종 커플, 정신지체아, 고등학생 애인을 둔 중년의 여배우 등을 등장시켜 <오즈의 마법사>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자 한다니 이 또한 심상치 않다. 도로시와 함께 오즈로 떠나는 양철 병정과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등이 각양각색의 은유로 해석되어왔던 것이야 유명한 사실이지만, 이토록 직접적으로 마이너리티들을 (그것도 메이저영화에) 대입시키는 건 패럴리 형제 특유의 무모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그렇다면 그들의 여행길은 어떠할까? 도로시와 친구들이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를 번갈아 마주치며 갖은 고난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붙어야 산다>의 해피엔딩도 예정되어 있다. 이건 패럴리 형제의 영화가 안겨주는 기이한 아이러니의 순간과도 결부되는데, 이를테면 그들이 아무리 가차없이 금기시된 웃음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사실 사악한 의도나 냉소 섞인 조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쉴새없는 폭소탄은 오히려 대상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거나 연민, 따뜻한 관심과 결탁되어 있다. 바보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화장실 유머가 질펀하게 넘쳐나는 삼류 슬랩스틱 코미디에 무슨 진심이? 수많은 점잖은 영화 팬들의 항의가 눈에 보듯 뻔한데도 패럴리 형제는 태연하게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진심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거죠!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에서도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정말 미국적이죠?’라고 뻔뻔하게 내레이션을 덧붙였듯이, 패럴리 형제는 이같은 낙천주의가 그야말로 할리우드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미국적 판타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섣불리 비웃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핸디캡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지레 겁먹은,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편견으로 작동하는 시선이라는 것.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것도, 예쁜 그녀와 데이트하는 것도 함께하는 월트와 밥은 그야말로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항상 마치 자신들의 분신인 양 남성버디를 영화 속에 등장시켜왔던 패럴리 형제는 여기서 아예 샴쌍둥이 형제를 내세운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내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분열과 봉합의 스토리는 <붙어야 산다>에서 서로의 삶을 위해 분리수술을 감행하는 월트와 밥의 결단으로 완성된다. 게다가 수술 이후의 삶이 보여주는 노골적인 은유들, 언제나 함께 붙어 있던 상대방이 사라진 이후 그들은 완전히 방향 감각을 상실해버린다. 멀쩡하게 산책하다가 걸핏하면 픽픽 쓰러지고, 햄버거 하나도 제대로 굽지 못하고, 기어이 석상 옆에 기대어 앉아 흐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는가. 서로의 그림자가 되는 희생의 순간까지 감내하더라도 결국은 따로 또 같이여야만 한다는 것. 아무리 독립된 주체의 홀로 서기를 외치더라도 자신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변치 않는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상대방과의 공존이야말로 험한 세상에 다리되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붙어야만 살 수 있다’고 패럴리 형제는 외친다(서구의 개인주의 전통보다는 동양인의 감수성에 더 잘 와닿는 정서?). 전작들과는 달리 구애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건, 월트와 밥에게 있어 정말 필요한 존재는 특정 여인이라기보다는 서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 눈물 겨운 순간에조차 그들은 “너 게이였어?”라고 새삼스레 강도 높은 조크를 잊지 않지만.

:: 영화 속 뮤지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마이너리티가 부르는 안티 히어로의 노래

<붙어야 산다>의 클라이맥스는 월트의 야심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 Clyde)의 뮤지컬 버전을 공연하는 장면이다. 월트가 할리우드 거리에서 마주치고는 황홀해하는 대스타로 카메오 출연한 메릴 스트립이 월트가 연기하는 클라이드의 상대역 보니로 재등장한다. 패럴리 형제는 영화를 본 관객이 영화관을 나설 때 뇌리에 남을 수 있는 노래 한 자락을 선사하고 싶어했고, 고심 끝에 뮤지컬의 한 대목을 넣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뮤지컬 장면을 구성하고 안무까지 담당해줄 적임자로 애덤 솅크먼을 지명했다. 안무가 출신 영화감독 솅크먼(<브링 다운 더 하우스> <러브 인 맨하탄> <워크 투 리멤버>)은 모처럼의 개인기를 마음껏 발휘하며 실제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되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역동적이고 흥겨운 뮤지컬 시퀀스를 연출해냈다. 미국 대공황 시기의 전설적인 안티 히어로였던 보니와 클라이드 커플이 재즈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근사한 집단 군무를 추는 이 장면은 관객의 어깨를 절로 들썩거리게 할 만큼 독자적인 완성도를 과시한다. 또한 이 뮤지컬 시퀀스는 메릴 스트립의 숨겨진 춤 실력과 그렉 키니어의 노래 솜씨를 처음으로 엿볼 수 있는 멋진 기회이기도 하다. “아르르르르르”로 시작하는 열창을 위해 그렉 키니어는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장장 6시간 동안 연습하는 열성을 보였다고 한다.

자료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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