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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신문 제33호 (1977∼1978년)
김재희 2004-03-11

<스타워즈> 영화사의 새 장을 열다

상영관 32개로 개봉 석달 만에 1억달러 매출 ‘역대 최단기간’

<스타워즈>가 나왔다. 영화사의 온갖 기록과 관행들이 깨지고 있다.

조지 루카스의 첨단 SF영화 <스타워즈>는 1977년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상영관이래봐야 고작 32개뿐이었다. 이어 석달 만에 1억달러 매출을 넘겼다. 역대 최단기간에 이뤄진 기록이다. 2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가 1억달러 매출을 넘겼을 때만 해도 언론은 그 기록이 웬만해선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스타워즈>는 영화가 그저 영화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흥행과 함께 로봇 C-3PO와 R2D2는 캐릭터 인형으로 상품화하며 영화에 버금가는 수익을 올릴 전망이다. 수십년 역사의 로봇 개념은 <스타워즈>로 인해 일상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스타워즈>는 ‘우주활극’이라는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새롭고 독창적인 영화 장르를 탄생시켰다. 평론가들은 “서부극의 재미와 액션이 우주라는 예견치 못한 공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됐다”고 한다. 조지 루카스는 1973년 자신의 출세작 <아메리칸 그래피티> 개봉에 즈음해 이미 <스타워즈>의 초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저예산으로 만든 <아메리칸 그래피티>의 대성공은 <스타워즈>를 만들기 위한 재원이 됐다. 공상 아닌 현실이란 착각을 줄 정도로 사실적인 <스타워즈>의 영상은 루카스가 영화 개봉 2년 전 설립한 ILM(Industrial Light & Magic)의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나왔다. 특수효과 전문회사인 ILM은 <스타워즈>를 위해 만들어졌고, 당시까지 나온 기술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마크 해밀, 해리슨 포드, 캐리 피셔 주연의 1977년작 <스타워즈>는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의 우주 모험담이다. 루카스는 무언가 있을 법한 시간적 배경을 거두절미하고 은하제국의 독재로부터 영화를 시작했다. 반란, 공주의 탈출시도, 그리고 체포. 제다이 기사의 존재가 알려지자 루크도 훈련을 받고 제다이 기사가 된 뒤 은하계의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내용이다.

전쟁은 확률 게임?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러시안 룰렛’으로 베트남전의 공포 묘사

1978년 12월, 때아닌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논란이다. 비평가들은 “베트남전 때 군인들이 러시안 룰렛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영화감독 마이클 치미노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응수하고 있다. 치미노 감독이 연기자 로버트 드 니로와 ‘러시안 룰렛’ 장면의 사실성을 놓고 다퉜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디어 헌터> 그리고 러시안 룰렛 장면.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베트남전의 아픔을 과거 어떤 영화보다도 소름 끼치는 방식으로, 극단으로 끌고 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탄알 1개가 든 6연발 권총의 실린더를 돌리고 번갈아 자신의 머리를 겨누는, 이어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 <디어 헌터>에서 베트콩들한테 포로가 된 주인공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과 닉(크리스토퍼 워컨)은 강압에 못이겨 러시안 룰렛을 한다.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공포. 그러나 영화 말미 러시안 룰렛은 그저 도박이 된다. 닉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장을 떠나지 않고 러시안 룰렛에 빠져 있다.

로버트 드 니로와 크리스토퍼 워컨의 연기는 베트남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폭발적이고 흡입력 있다는 평가다. 영화사상 가장 거친 것으로 기억될 러시안 룰렛 장면 외에도 마이클이 영화가 끝날 무렵 총으로 사슴을 조준하다 그냥 놓아주는 연기는 관객을 숙연하게 했다. 영화 초반 사슴 사냥을 즐기던 마이클과 그 친구들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영화 촬영을 앞두고 몇달간 극중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오하이오의 철강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근무를 끝낸 노동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그들을 익혔다는 것이다. 드 니로는 철강 공장에 취직을 시도하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1939년생 치미노 감독은 애초 TV광고를 만들다, 70년대 들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74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대도적>(Thunderbolt and Lightfoot)으로 감독 데뷔했고, <디어 헌터>는 두 번째 영화다. 존 새비지, 메릴 스트립이 함께 출연했다.

AFI, 역대 미국의 10대 영화 선정 1977년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AFI)는 역대 미국의 10대 영화를 선정했다. 미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고, <카사블랑카> <사랑은 비를 타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나이> <오즈의 마법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프리카의 여왕> <시민 케인> <분노의 포도>가 그뒤를 이었다. 투표는 미국 내 50개주와 50개국에 달하는 해외 거주 AFI 회원 3만5천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 투표 결과는 감독, 프로듀서, 작가, 제작자, 영화배우를 비롯한 영화관계자들과 대통령 지미 카터, 영부인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비롯해 2200명에 달하는 청중이 함께한 자리에서 공표 되었다.

마르타 메자로스의 <어돕션>은 유부남 애인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43살의 독신여성 케이트와 그녀의 삶에 갑자기 뛰어들어온 보호소 소녀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흑백영화다. 메자로스는 남편인 미클로시 얀초, 이스트만 자보와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돕션>의 그랑프리 수상은 여성영화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시금석의 의미를 갖는다. 60년대 중반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영화는 질과 양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1975년 한해만 살펴보아도 모더니즘영화의 사건으로 평가받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송>,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 마가레타 폰 그레타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영예> 등이 발표되어 페미니즘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이론진영에서는 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라는 논쟁적인 글을 발표했다.

“컬러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든다”

“공포와 부조리한 유머의 혼합.” “지독하게 아름다운 초현실주의 코미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평들이다. 1978년, 32살의 데이비드 린치는 과거 어떤 영화와도 비교 불가능한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린치의 사실상 데뷔작인 흑백 톤의 <이레이저 헤드>(Eraserhead)는 미래의 영화사적 평가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걸작 반열에 오르는 느낌이다.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AFI)의 학생 데이비드 린치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영화가 이상하다는 사람이 많다.

영화 속 장면들이 이상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세계 자체가 먼저 그렇게 이상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영화 속 장면들은 이 세계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나는 부조리한 것들을 사랑한다. 그건 나에게 대단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지난해(1977) 개봉했던 <스타워즈>만 봐도 색(色)의 향연이다. 그런데 당신에겐 흑과 백만 중요해 보인다.

약간은 과장인 것 같다. 그러나 흑과 백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빛과 어둠, 그리고 그 대비를 사랑한다. 흑과 백은 너무 순수하고 강력하다. 나는 흑과 백의 사운드가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때론 컬러가 사물들을 싸구려로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의 취향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뭔가.

몇년 전 필라델피아 빈민가의 초라한 집에서 살았다. 거리엔 쓰레기와 공포뿐이었다. 조그만 아이들이 울어대기 일쑤였다. 아마 그 아이들의 아빠는 집에서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으로 강도가 들어올까 무섭기도 했다. 그런 편집증적인 아름다움. <이레이저 헤드>는 아마도 거기서 탄생했을 것이다.

인물과 사건들이 상징적인 것은 일부러 노력해서인가.

꼭 그렇진 않다. 난 화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도 여전히 화가인 것처럼 말한다. 혹시 자신을 좌절한 예술가로 느낄 땐 없나.

없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내겐 똑같다. 둘 다 나 스스로(for myself) 만들기 때문이다. 완전히 독립적인 일들이다.

역사 인물 중에 누구를 좋아하나.

반 고흐를 정말 좋아한다. 그가 살던 시기의 파리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이앤 키튼 “그녀는 카멜레온”

<애니 홀>의 말괄량이에서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의 밤의 여인까지 변신귀재

막 서른을 넘긴 여배우 다이앤 키튼(1946년생)의 한계를 모르는 연기 변신이 눈부신 한해(1977년)다. 배우로서의 명성이야 <대부>(1972), <대부2>(1974)로 20대 때 이미 확고히 했다. <대부> 시리즈에서 극중 알 파치노의 아내로서 남편의 음울한 변신을 우울하게 지켜보던 키튼의 모습은 관객을 안타깝게 했다. 그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키튼은 올 들어 극과 극의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에 깊이를 더해 가는 모습이다. 상반기, 키튼은 유니섹스 패션의 말괄량이였다. 우디 앨런의 코미디영화 <애니 홀>(Annie Hall)에서 그는 그같은 중성적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곧 가벼운 말괄량이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은 못 참겠다는 듯 키튼은 연말을 즈음해 대단히 해석하기 어려운 복합적 캐릭터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Looking For Mr. Goodbar)를 통해서다. 주디스 로스너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이 영화에서 키튼은 청각장애아들을 가르치는 정숙한 선생님이다. 그런데 밤만 되면 술집을 돌아다니며 남자들을 섭렵한다.

그리고 키튼의 성적 모험은 정상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멀리 나간다. 극중 정상인으로 보기 어려운 동성애자 톰 베린저와의 격렬한 만남, 이어지는 리처드 기어와의 가학적이고도 피학적인 관계.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의 감독 리처드 브룩스는 “교사의 캐릭터에 깊숙이 내재한 어두운 측면을 키튼이 어떻게 표현해낼지 대단히 궁금했지만 이내 놀랐다”며 “키튼은 정말 센세이셔널했다”고 말했다.

중국 ‘5세대 영화인’ 출현할까

베이징영화아카데미 재개관… 첸카이거 장이모 등 입학

중국에서 ‘5세대 영화’는 가능할까. 문화혁명(1966∼76) 기간 내내 문을 닫았던 베이징영화아카데미가 1978년 다시 문을 열면서 영화인들 사이에 ‘5세대’의 출현을 점치는 낙관적 전망들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과거 <무대의 두 자매>(Two Stage Sisters) 등이 연출로 성가를 높인 시에진 감독 등이 중국의 4세대 영화 제작인들로 꼽힌다. 그러나 1949년 혁명과 함께 경력을 시작했던 영화 제작인들을 선봉으로 한 4세대 영화 제작인들의 활동은 문화혁명으로 맥이 끊겼다. 영화 편수 자체가 많지 않았다. 1978년 들어 크게 늘고는 있지만 문화혁명 직후인 1977년의 영화 제작편수는 고작 19개에 불과했다.

영화인들은 오랜만의 문화적 해빙 속에서 이번 4년제 영화아카데미의 재등장이 대가 끊긴 중국의 영화를 이어나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78년 수십년 만에 처음 받은 신입생 중에는 첸카이거, 장이모 등 감독 지망생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텔 미 모어, 텔 미 모어…!” 미끄러지는 댄스, 댄스!!

댄싱 킹 존 크래볼타의 스텝은 계속 된다! 지난해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놀라운 춤실력으로 젊은 관객을 흥분시킨 존 트래볼타가 <그리스>(Grease)(1978년)라는 또 다른 댄스영화로 히트를 칠 조짐이다. <그리스>는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을 토대로, 1950년대를 추억하며 만든 복고풍 뮤지컬영화. 제목 ‘Grease’는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를 말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자동차 윤활유란 뜻으로, 일면 춤이 상징하는 이성간의 성적(性的) 윤활유 역할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톱스타인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이 존 트래볼타와 쌍벽을 이루는 여고생 댄싱 퀸으로 나와 흥겨운 로큰롤 스텝을 밟는다. 이 젊은이들의 ‘비치 파티’(Beach Party)영화는 영화 초반부터 <여름밤> <나를 봐, 나는 산드라 디>와 같은 빠른 댄스곡으로 관객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이 댄스열기엔 이브 아덴, 조앤 블론델, 프랭키 아발론과 같은 베테랑 스타군들도 대거 참여했다.

세기의 미녀 브룩 실즈, 뉴올리언스의 10대 창녀 변신

이미 성공한 10대 모델인 브룩 실즈는 지난해 <앨리스, 스위트 앨리스>로 갑작스레 영화계에 데뷔하더니, 올해(1978)는 루이 말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고작 12살인 그녀가 맡은 배역은 1917년 뉴올리언스의 사창굴에 기거하는 10대 창녀. 어떤 기준을 갖다대도 위험한 이 영화에 대해 루이 말은 “난 언제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나 캐릭터, 주제를 드러내는 데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시도한 것뿐”이라고 일축한다.

어쨌든 루이 말은 논란거리가 된 사창굴을 브룩 실즈의 극중 엄마인 수잔 서랜던의 집이자 일터로 묘사하는, 사실적이고 무미건조한 접근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선정주의를 피해갔다.

편집인 김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