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인디문화의 힘, 홍대를 지켜라!
신선경 2004-04-08

문화예술인들은 왜 백주에 옷을 벗고 거리로 나섰나

지난 3월22일 서울의 홍익대 앞에서는 ‘문화예술장례식’이 열렸다. 사)문화마을 들소리의 심장을 쿵쾅대는 북소리와 함께 8·15퍼포먼스록밴드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애국가’, ‘순수예술 장례식’을 마친 뒤, 검은 천으로 아슬아슬하게 성기를 가린 나체의 20여명 문화예술인들이 상여를 멨다. 오는 4월 폐관을 맞게 될 극장 씨어터 제로의 운명이 이 지역 문화에 위기를 몰고 올 것임을 염려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퍼포먼스였다. 압도된 좌중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거리 퍼포먼스를 시작하려는데 ‘경범죄 처벌법상 과다노출’의 죄목으로 경찰이 저지에 나섰다. 검은 천 대신 팬티를 입으라고 요구했고 다음에는 다시 바지를 입으란다. 전자음악의 긴박한 리듬과 쟁쟁한 악소리, 경찰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문화지구 지정이 문화를 죽인다?

씨어터 제로 앞에서 시작하여 홍익대 앞까지 상여를 메고 퍼포먼스를 벌였던 이들 행위의 표면적 이유는 임대료 인상과 재건축 예정 등으로 인해 폐관 위기에 놓인 실험예술극장 씨어터 제로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02년 4월 인사동을 문화지구로 지정한 데 이어 오는 5월에는 대학로를, 올해 말에는 신촌과 홍익대를 ‘문화지구’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동인구가 자연스레 많아지게 될 ‘문화지구’가 ‘투기지구’로 될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한 사람들에 의해 유흥과 환락의 가능성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전위예술가 박미루씨는 알록달록한 비즈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마도 ‘관’에서 개입하면 저 언니들에게 미관을 해친다고 나가라고 할지도 몰라요. 문화는 자생적 흐름이에요. 이 지역의 컨셉이 이거니까 이렇게 하라고 억지로 규정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화는 죽어요.” 이런 예측을 단순한 기우로 치부할 수 없는 여러 증거들을 우리는 이미 봐왔다. 2002년 11월 개관한 활력연구소는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시 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서울시 문화정책의 부재와 운영예산 지원번복 등등의 문제들로 인해 위태롭게 1년을 보내다 결국 지난해 12월22일 문을 닫게 되었다. 당시 영화인 등 문화계의 많은 이들이 활력연구소 내 분향소를 설치하여 추도 상영회, 활력연구소 공간의 죽음을 상징하는 장례 이벤트 등을 통해 내부 투쟁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12월22일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활력연구소는 이날을 서울시에 의해 살해당한 날이라 규정지었다.

우리나라 사립미술관 등록 제1호로 개관과 함께 유럽 미술을 적극 소개, 동시대 서구 미술과의 격차를 좁히는 일에 기여했던 서울미술관이 3여년 전 경매에 부쳐진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미술관 부지를 프랑스 문화원 이전부지로 구입할 뜻을 비치고 매각협상을 1년 반이나 끌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결렬시켜 미술관에 재정적 부담을 안기게 되었던 때문이다.

문화는 자생적 흐름이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대학로 또한 지난해 가을부터 건물 임대료와 공연장 대관료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가난한 입주 소극장들과 극단들이 문을 닫거나 공연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고 문화지구가 문화인을 몰아낸다는 극단적 논리비약도 적절하지 않지만 현실이 이렇게 펼쳐지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은 “관의 행정놀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문화시설은 그 특유의 공익성 때문에 공공지원이 당연한 것이고, 지원이라 함은 재정지원과 함께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모범사례로 고려될 만한 것이 정동 세실극장이다. 건물주인 성공회쪽은 지금의 씨어터 제로 건물주가 그렇듯이 수익이 없는 세실극장을 일반 사무실로 개조하려고 했다. 이때 제일화재가 임차료를 해결해주며 극단 로뎀과 제휴했다. 극단 로뎀+제일화재+성공회의 노력을 통해 1976년 개관했던 이 극장이 ‘제일화재 세실극장’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 <구름>은 지금 이곳의 현실과 매우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아르헨티나 시내 곳곳은 재개발이 시작되고 극장은 철거의 대상이 된다. 배우들의 저항과 막막한 기다림, 마지막 장면에서는 극장으로 구름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는 한 극장이 철거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주인공의 바람이 판타지로 재현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한국에서도 예술가와 비영리 문화공간의 힘겨움은 그 무게가 전혀 덜어지지 않고 있다. 글 신선경,이나영/객원기자·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