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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인생을 훔치는 연쇄살인마와 섹시한 여형사의 매치업, <테이킹 라이브즈>

남의 인생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마, 그리고 섹시한 여형사의 매치업

수백만명이 몰려 살고 표준화된 정보관리를 받는 도시의 삶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만 몇개의 숫자로 표현될지 모른다. 거기서 공포의 연원을 읽는 스릴러영화 <테이킹 라이브즈>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사실 공동체적 기반을 잃고 살아가는 도시의 독신자들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의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범작에 그치긴 했지만 <왓쳐>의 경우도 피해자를 예고하는 데도 정작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속수무책인 도시 생활의 삭막한 익명성을 파고든 적이 있다. 그러나 <테이킹 라이브즈>의 연쇄살인범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사람을 살해하고 난 다음 그 사람의 이름과 신분증, 카드를 사용하며 아예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야말로 정체성 도둑인 것. 그리고 미모의 FBI 프로파일러 스콧(안젤리나 졸리)이 천재적 직관과 관찰력으로 결정적인 증인 코스타(에단 호크)와 함께 범인의 심리를 추적하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쎄븐>의 텍스처와 편집을 의식한 영상이 그녀의 시선을 예민하게 따라 흐르는 전반부의 신들은, 모든 것을 심리적 공간으로 환원한 뒤 기꺼이 문명 비판적이기까지 한, 무거운 묵시록을 들려줄 것 같은 기세다. <디 아워스>의 필립 글래스가 맡은 미니멀 음악이 끼어들면 그 기대는 더욱 커진다. 살인마의 어머니와 만나는 기괴한 장면까지는 적어도 그렇다.

그러나 졸리의 가슴과 몸매를 노출하는 짧은 섹스신과 <매트릭스>식 자동차 추격장면이 별다른 필연성 없이 엮여들어가고 마땅한 대답없이 비약을 일삼는 논리가 차곡차곡 쌓이는 가운데 영화는 할리우드산 스릴러의 악습을 답습하기 시작한다.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전이야 원래 ‘후더닛’(whodunnit)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라고 쳐도, 고작 애정결핍을 연쇄살인의 동기로 내세우는 범인의 ‘범상함’은 초반부의 스타일리시한 심리 공간 묘사를 머쓱하게 만든다. 안타까운 것은 ‘정체성 도둑’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훨씬 의미심장하고 복합적인 스릴러를 만들 수도 있었다는 점. 그러나 영화는 범인의 정체와 동기조차 일찍 공개하는 악수를 두며 결국 허탈한 트릭으로 사태를 수습한다. 또 하나의 “섹시한 여형사 사이코를 만나다” 식 관습적 스릴러로의 귀결. 물론 이것은 원작에 없던 졸리의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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