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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희귀한 희망, <밝은 미래>

지옥도의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가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희귀한 희망

당신이라면 청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일본영화의 위대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절망에 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키즈 리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배틀로얄>에서 후카사쿠 긴지는 시스템에서 탈주하는 소년 소녀들에게 외쳤다. “뛰자!” 여기 <밝은 미래>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덧붙인 것은 ‘가라’는 사인이다. “지금까지 난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 가라는 신호는 벌써 떨어졌는데.” <밝은 미래>의 주인공 니무라(오다기리 조)가 극중에서 던지는 이 한마디는 그간 인간 본성의 지옥도를 주로 그렸던 구로사와가 품고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절망의 심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희귀한 희망 한 조각을 건져올린다.

<밝은 미래>는 24살 젊은이 니무라가 자신의 꿈에 대해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꿈에서 행복한 미래를 보는 이 청년은 그래서 꿈속에 머물고자 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직장동료 아리타(아사노 다다노부)와 함께 회사 사장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아리타는 “폭풍이 몰아칠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의 예감은 적중한다. 며칠 뒤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리타는 사장과 그의 부인을 살해한다.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 아리타는 니무라에게 자신이 기르던 해파리를 부탁하고, 아리타가 감옥에 가자 5년간 아들을 만나지 않았던 아리타의 아버지(후지 다쓰야)가 면회를 온다.

아리타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구로사와가 <큐어>나 <강령> 같은 공포영화에서 보여줬던 분위기다. 사소한 자극에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설 것 같은 예리한 연출은 세대 차이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간극을 한눈에 드러낸다. 꿈속에만 머물려는 청년과 젊은 날 자신이 무엇을 꿈꿨는지 기억조차 못하는 사장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다. 뚜렷한 사건이 없어도 그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큐어>처럼 살인은 악인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사소한 분노나 이기심이 돌변해서 일어난다. 여기까지는 구로사와 특유의 심리적 공포로 이뤄진 세상이다. 그 다음 후반부는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영화는 아리타의 자살과 더불어 단조에서 장조로 전환된다. 아리타는 니무라에게 세 가지 선물을 남긴다. 해파리와 ‘가라’는 신호와 자신의 아버지다. 하지만 니무라는 아직 아리타의 유산을 상속받을 의지가 없다. 그는 ‘가라’는 신호를 읽지 못했으며 해파리는 마루 틈새로 흘려보냈고 아리타의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긴다. 과연 니무라는 꿈속에서 보던 밝은 미래를 현실에서도 볼 수 있을까? 발광하는 해파리가 마룻바닥 밑을 지나 지하수를 타고 흘러내려 도쿄의 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영화는 희망의 손을 잡기 시작한다.

물론 구로사와에게 희망은 손쉬운 약속이 아니다. 5년간 못 만났던 아들이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뒤 면회를 하러 가는 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은 현실을 직시한 대가가 무엇인지 일러준다. 그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듣는 말은 무엇인가? “빨리 사형집행하라고 탄원서나 써주세요” 또는 “아버지 장래랑 내 장래는 다르고. 게다가 이제는 아버지 성도 아니고.” 그나마 아리타의 아버지는 세월에 닳고 닳은 인간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은 편이다. 아리타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장은 현실이 길들여준 대로 살아온 대가로 전형적인 중년 남자가 됐고 그래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구로사와는 시간이 파괴한 것을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겹쳐놓는다. 세월이 흐르면 니무라도 그들처럼 되지 않을까? 구로사와에게 근심은 희망의 전제조건이다. 그 자신 젊음의 용광로를 거친 어른으로서 그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지 않는다. 절망과 희망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그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존중하는 법을 일러준다. 해파리의 기적이 그것이다. 무리지어 바다로 향하는 해파리떼가 만들어내는 아찔한 아름다움은 아버지와 아들을 부둥켜안게 만든다. <밝은 미래>가 보여주는 해파리의 기적에는 꿈과 현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이상적 조화가 들어 있다.

아마 구로사와를 공포영화 전문감독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겐 <밝은 미래>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무서운 영화가 아닌 건 그렇다치고 때로 이 영화는 괴이한 유머감각을 보여준다. 과거 <네 멋대로 해라> 연작에서 삼류인생의 코미디를 연출했던 것과 비슷하다. <밝은 미래>의 마지막 장면은 그 절정이다. 웃기지만 웃고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 <밝은 미래>의 세 배우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은유가 포함된 영화다.”

<밝은 미래>의 주요 등장인물은 셋이다. 아리타 역의 아사노 다다노부, 니무라 역의 오다기리 조, 아리타의 아버지 역인 후지 다쓰야가 그들. 셋 가운데 아사노 다다노부는 다소 익숙한 얼굴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에서 병든 아내의 약값을 벌어야 하는 무사 하토리는 아사노의 이미지를 선명히 각인시킨 캐릭터다. 이와이 순지의 <프라이데이 드래곤 피시> <피크닉>,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 이시이 소고의 <고조>,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 등에도 출연했던 아사노는 <밝은 미래>에서도 하드보일드 영화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그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상반된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올해 3월 한국을 방문했던 구로사와는 “아사노가 분명 일본 영화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계를 바라보는 배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리타 역에 적격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오다기리 조는 일본에서도 신인급인 배우. 구로사와는 오다기리의 캐스팅에 대해 “신인이기 때문에 배우로서 포지션을 아직 확실히 깨닫지 못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촬영장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니무라의 본질과 무척 닮았다”고 말했다. 후지 다쓰야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과 <열정의 제국>에 출연했던 관록있는 배우다. 그는 <밝은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삐걱거리는 삶 속에서 우리는 구세대부터 계승한 다양한 생각이나 방법, 패턴 등을 더이상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무척 외로운 일이지만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는 다음 세대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틈새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아픔을 느꼈다고 해도 사회는 가부간의 대답없이 나아갈 뿐이다. <밝은 미래>는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은유가 포함“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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