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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하지만 결정적 감동을 주는 아스라한 판타지, <천공의 성 라퓨타>

늘 변함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열광하거나 혹은 냉대하거나

“어디엔가 하늘 끝엔 언제나 푸른 꿈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작은 별 하나가 있단다/ 맑은 미소 고운 눈빛 뛰노는 아이들처럼/ 오래전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오래전 가요 중엔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고 있으면 이 가사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 ‘라퓨타’가 작은 별?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실체가 달라진다. 어른들 시선, 그것도 탐욕스런 어른의 시선으로 보는 라퓨타는 권력과 무력의 상징이다. 온갖 전투무기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라퓨타는 다르다. 새들이 노래하고 아늑한 평화가 존재하는 곳. 그래서 라퓨타는 각기 다른 상징과 비유로서 작품에서 기능하며 읽히기도 한다.

기계 견습공인 소년 파즈는 어느 날, 빛이 나는 목걸이를 한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소녀를 구해준다. 소녀는 목걸이, 즉 비행석으로 인해 정부의 군대와 도라 일당에게 쫓기고 있던 신세. 시타가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던 중 파즈는 하늘에 떠 있는 성 ‘라퓨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 라퓨타의 존재를 믿고 있던 파즈는 시타와 함께 라퓨타를 찾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파즈와 시타는 군대에 사로잡히고, 시타는 정부 비밀 조사관인 무스카에게 파즈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협력을 약속한다. 도라 일당과 만난 파즈는 그들과 함께 시타를 구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타로 인해 봉인이 풀려 라퓨타의 위치를 가리키게 된 비행석을 무스카에게 빼앗기고 만다.

어느 고전기 일본영화 감독은 자신을 ‘두부장수’라고 표현했다. 두부공장에서 두부를 찍어내는 사람이라고. 만약 같은 비유를 사용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두부장수일지 모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붉은 돼지>,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늘 같았다. 모양과 맛이 거의 비슷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모험, 아스라한 판타지, 그리고 하늘을 나는 비행의 모티브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 언제나 작은 마을이 무대가 되고 있으며 캐릭터들 생김새가 엇비슷하다는 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지일관을 설명하는 사례다. 요컨대, 미야자키 하야오는 가수로 치면 늘 동일한 장르를 노래하는 사람이며 장사꾼으로 치면 같은 업종에 장기간 종사해온 인물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역시 다르지 않다. 파즈와 시타라는 아이들은 ‘꿈’을 동경하고 있으며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안다. 어른들이 라퓨타를 보물의 은닉처, 그리고 무력의 근원으로 사고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친구의 안전과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거대한 하늘의 성을 자멸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가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타와 파즈가 “함께 있자”라며 손을 모으는 순간, 그것은 라퓨타의 실체가 나타나는 순간이며 또한 작지만 위대한 사랑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다. 이렇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 세계는 언제나 같은 향과 맛의 두부처럼 무던하지만 결정적 감동을 준다.

“날로 증가하는 컴퓨터의 사용은 그것 자체로 해로운 물건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 문제다. 난 비관론자가 아니며 아이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을 통해 도울 수 있다.” 미야자키 감독의 말처럼 <천공의 성 라퓨타>는 문명과 탐욕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어린 세대를 위한 작품이다.

<걸리버 여행기>와 존 포드의 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온 <천공의 성 라퓨타>는 이제는 낡은 애니메이션이 될지도 모른다. 현란한 3D 기법이 온갖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소박한 셀애니메이션을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전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을 본 적 있는 이라면,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면서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토로와 키키, 포르코라는 익숙한 친구들 곁에 파즈와 시타 역시 어디엔가 낄 여유가 있을 텐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중얼거리면서.

:: <캐릭터 분석

‘라퓨타’ 원정대

시타

본명은 류시타 토엘 우르 라퓨타. 이는 곧 정통 왕위 계승자 류시타 왕녀라는 의미다. 곤도아 계곡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을 할머니로부터 들으면서 성장했다. 이후 무스카 일행에게 납치된다. 파즈와 만나고 라퓨타와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목걸이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 용기와 사랑을 고루 갖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파즈

밝고 명랑한 소년.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오두막집에서 생활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퓨타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언젠가 자신이 만든 비행기로 라퓨타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시타를 만나 정부 비밀조사단과 군대, 해적에게 쫓기는 그녀를 돕는다. 시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서 남는다.

무스카

정부 비밀조사단 소속. 라퓨타와 보물을 찾기 위해 정부에서 파견했다. 본명은 로무스카 파로 우르 라퓨타. 라퓨타 왕족의 또 다른 후예이다. 라퓨타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지니고 있으며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도라

해적의 보스이자 여걸. 해적선을 지휘한다. 처음엔 비행석을 노린 것이지만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를 찾기 위해 파즈와 힘을 합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도라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해적

도라와 아들들, 그리고 기관사 등으로 구성된다. 해적답지 않게 착한 면도 지니고 있다. 특히 도라의 아들은 마마보이. 시타를 마음속으로 짝사랑하며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

무오로 장군

라퓨타를 찾기 위해 정부에게 파견한 군장성. 부패한 장군의 전형적인 경우다. 스스로는 무스카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용당한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시타의 할머니

시타를 맡아 키우면서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주문을 그녀에게 알려준다.

폼 할아버지

광산을 사랑하며 광산촌의 바위들에 대해 잘 아는 백전노장. 시타와 파즈가 광산촌 터널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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