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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카니발, <범죄의 재구성>
박초로미 2004-05-14

아가씨

아가씨, <범죄의 재구성>의 유쾌한 열정을 질투하다

한국은행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채를 상큼하게 찜쪄먹는 사기극, <범죄의 재구성>. 완전범죄를 위해 동원되는 현란한 미장센, ‘꾼’들이 서로에게 ‘접시를 돌리는’ 치밀한 두뇌게임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옴팡 털려버린 건 한국은행이 아니라 ‘나는 사기의 무풍지대에 살고 있다’는 소시민적 착각이다. 고만고만한 일터와 닭장 같은 집을 오락가락하며 애벌레처럼 옹송그리고 살면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스펙터클한 사기의 세계. 돌이켜보면 배신과 상처를 밥먹듯 주고받는 생의 장소 곳곳에 살떨리는 사기행각들이 오롯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다. 허접하고 꿀꿀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에게서 배어나오는 투명한 열정에, 기분 좋은 질투가 끓어오른다.

감동은커녕 가냘픈 휴머니즘조차도 자극하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 사기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고상한 생의 목표가 없기에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순수한 열정을 내뿜는다. 폼나는 좌우명이나 대의명분 따위를 윽박지르지 않기에 오히려 맘 편히 퍼질러 앉아 그들에게 한수 배우고 싶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사기가 침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양만점 숙주는 ‘확신’임을 깨우친다. 사기의 기초공사는 찜쪄먹을 대상과의 믿음을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진정한 사기꾼은 불신의 틈바구니가 아니라 확신의 성곽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간다. 가장 위험한 확신은 스스로의 지능과 능력에 대한 확신이다. “넌 머리쓰지 마. 머린 내가 쓴다”고 뇌까리는 김 선생(백윤식)의 매혹적인 오만이야말로 접시돌리기 딱 좋은 확신의 숙주다. 금전욕이나 명예욕은 이러한 확신에 비하면 ‘쪼잔한’ 탐욕이다. 세상 전체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나와바리’만큼은 자신의 ‘땡김’대로 조종하고픈 욕구는 얼마나 끊어내기 힘든지. 그를 깊이 넘어뜨리는 건 바로 그의 철통 같은 자존이다.

영화 최대의 반전은 ‘구로동 샤론 스톤’ 염정아가 보험금 5억원을 쿨하게 거부하는 장면이다. “난 또, 날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네”라며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를 부여잡을 것만 같았던 그녀는 5억원을 거부함으로써 더 큰 미끼를 던진다. 55억원이나 해먹고 나서도 뭐가 모자라 계속 사기를 치냐는 질문은 핀트가 어긋난다. 돈 따위에 올인할 그녀가 아니다. 가장 ‘얼빵’한 ‘삼류’로 구박받는 염정아만이 사기 자체를 흥미진진한 ‘놀이’로 즐긴다. 그녀는 호박에서 김나도록 전술을 짜거나 남성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확신과 탐욕의 성곽을 잘근잘근, 마침내 휘영청, 무너뜨린다. 김 선생은 사기꾼계의 최고봉인 자신의 ‘전설’을 완성하기 위해, 혓바닥(박신양)은 ‘복수’를 위해 사기를 선택하지만, 염정아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기의 본질에 대해 득도한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기꺼이 표절하고 싶은 희대의 사기꾼,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봉이 김선달. 카퍼필드 마술의 매혹은 자유의 여신상을 감쪽같이 없애는 ‘규모의 마술’이 아니다. 객석에 웅크린 관객의 평범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무대 위에서 경험하게 해주는 ‘체험마술’의 힘. 그의 마술치료요법은 몸과 마음에 치명적 외상을 입은 이들에게 마술의 환희를 맛보게 함으로써 자신감과 신체적 자유를 선물한다. 한편, 김선달의 대동강물 사기에 놀아난 이들은 두 가지 함정에 빠진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대동강이 사적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발칙한 허영. 포졸이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고 ‘대동강물 주인’ 김선달에게 알아서 기는 노예적 상상력. 지배당하지도 않았는데 복종하려는 자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이 뒤통수를! 유쾌한 사기를 통해 자유를 누리려는 이들에게는 사기의 카니발을! 아가씨가 꿈꾸는 행복한 사기의 ‘로망’이다.정여울/ 미디어 헌터 suburb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