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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로맨스가 진화한다, 야오이 만화 [1]

소녀들의 로맨스가 진화한다

‘야오이 만화’- 소녀문화에 자리잡은 소년 동성애물

동성애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적 생산물 중 생산자의 표현적 측면이나 소비자의 수용적 측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 중의 하나가 야오이 만화다. 소년 동성애를 다루므로 BL(보이 러브)로도 통용되는 야오이는 열혈 10,20대 여성 팬층을 확보하는 등 흥미있는 문화 현상을 제공했다. 이번 컬처잼 포커스에서는 야오이 만화와 이에 열광하는 소녀들을 로라 멀비의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보여지는 페미니즘적 테제로 접근, 시선의 대상으로서, 욕망의 규제 대상으로서의 여성바라보기를 시도하였다.

편집자

황미요조/ 문화평론가

아이돌 그룹 신화의 두 멤버인 에릭과 전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사진집이 기획되었다는 기사가 났다(<스포츠서울> 2004. 4. 30). 그 둘은 실제 동성애자도 아닐 뿐더러 그들의 팬층 역시 10대에서 20대 여성이 대부분으로 동성애 커뮤니티와 별 관련이 없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어떻게 이런 기획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소녀문화 내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인 소년 동성애물에 대한 열광과 관련이 깊다. 이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야오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러한 소녀문화 내의 특수한 그러나 압도적인 경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팬픽, 동인(녀), 커플링, 보이 러브 등등은 야오이와 함께 종종 언급되는 말들이다. 야오이물의 창작과 소비의 주체는 대부분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 여성들로 그 형태는 대부분 만화와 소설이지만 한국보다 야오이의 유행이 일찍 시작된 일본에서는 라디오 CD(성우들이 녹음한 라디오드라마와 같은 것)나 애니메이션, 영화가 상업적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동성애 커플은 순수하게 창작되기도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이나 기존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기도 한다. 한국 소녀들 사이에 신화의 멤버들은 동성애 커플로 상상하는 데 있어 선호되는 모델들이다.

야오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동성애를 중심소재로 다룬다는 것과 함께 그것이 소녀문화의 특수한 장르로서 창작/향유 계층이 (주로 이성애자) 젊은 여성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소년들의 연애 판타지를 즐기는 여성들

야오이 내에서도 보통 하드 야오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본래 야오이의 개념에 가장 충실한 것들이다. 두 인물의 캐릭터는 강하고 저돌적인 (강)공과 약하고 의존적인 (꽃)수로 정형화되고 그들이 관계하는 장면을 부각해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이야기의 핵심은 성교장면으로, 모든 이야기구조는 그것을 위해 배치된다. 이들의 관계는 대개 저돌적인 공의 공세로 시작되며 수는 처음에 자신이 변태가 아닌가 고민하지만 결국 나의 사랑과 그의 행복이라는 결론 아래 둘의 관계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를 위해 나의 레이프는 너를 향한 사랑이다, 와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거야, 라는 지상명제가 반복·동원된다.

이런 까닭에 하드 야오이물들은 종종 포르노물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야오이 팬들 역시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다. 다만 포르노이기 때문에 야오이는 나쁘다거나 야오이를 즐기는 여성들을 변태 취급하는 것에는 크게 반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도 포르노를 통해 성적 욕구와 판타지를 충족시키기를 원한다는 사실과 기존의 포르노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포르노라는 사실이다. 야오이에서 재현되는 남성 동성애와 여성 감상자의 쾌락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이론에서 재현되는 대상과 관객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도입하고자 한다.

영화보기의 쾌락과 관련해 재현되는 대상과 (관람하는)주체의 시선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신분석학의 심리적 과정은 메츠(Christian Metz)에 의해 이론화되었다. 메츠에 따르면 영화보기는 관객에게 절시증(대상을 볼 때 얻는 시각적 즐거움)이나 관음증(훔쳐보기), 동일화와 같은 쾌락을 유발하는 심리적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메츠의 이론은 관객의 쾌락에 개입되는 성차의 문제가 고려되지 않은 것이었고 멀비(Laura Mulvey)에 의해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성된다. 멀비는 영화보기의 쾌락을 유발시키는 시선의 문제가 권력과 관계된다는 것, 특히 가부장제하에서 젠더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이론화했고 이후 영화보기와 시선(응시)에 대한 이론의 고전이 됐다. 절시증은 타인을 시선의 대상으로 삼고 시선으로 통제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며 또한 가학적인 쾌락이다. 그러나 멀비는 가부장제하에서 이미지가 재현되는 양식에서 이 시선의 소유자는 남성이라는 것, 여성은 이러한 쾌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응시는 권력의 문제이고 가부장제하에서 시선을 가진 자는 남성, 보여지는 자는 여성이다. 시선을 소유하지 못한 여성관객은 시선의 대상이 되는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피학적 입장에 서거나 남성주인공에 동일시하여 남성화되어 쾌락을 추구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여성에게 분열된 주체가 되기를 요구하거나 불편함으로 남게 마련이다.

남성적 쾌락에 봉사하는 영화에 반기를 들고 멀비가 제안한 것이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 자체를 해체시켜 동일시를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영화 만들기였다면, 동인녀들은 내러티브 내에서 여성의 공간을 아예 제외시킴으로써 여성적 응시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선택한다. 내러티브에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배제시킴으로써 철저하게 보는 주체로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남성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꽃수는 여성들에게 감상의 대상이지 감정이입의 대상이 아니다.

감 잡았어! 야오이 개념사전

야오이, 보이 러브(BL), 동인, 팬픽, 커플링

동인이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결성한 모임, 혹은 그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예전에 주로 문학쪽에서 시나 소설을 쓰는 모임들을 동인이라 불렀듯이) 통상적으로 아마추어 만화작가들이나 만화 팬들의 습작/비평 모임을 동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동인지는 동인들의 아마추어 만화 창작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작가에 대한 글을 모은 간행물로 코믹 마켓이나 동인지 행사, 직접 판매 등 개인적으로 생산/유통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동인들 내에서의 히트작, 히트작가가 나오기도 하고 동인지 규모가 큰 일본에서는 기업화된 동인지 판매/유통망도 존재한다.

야오이는 그림은 그럴듯하지만 내용이 없다며 일본에서 주로 동인지 만화들을 비꼬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말인데 야마나시(극적인 사건없고), 오치나시(결말없고), 이미나시(의미없음)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이다. 팬픽은 팬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해서 창작한 아마추어 소설들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들의 전성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팬활동(특히 남성 아이돌팀을 응원할 경우)의 당연한 한 분야로 여겨지고 있다. 인기있는 팬픽의 작가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되고 팬사이트와는 별도로 팬픽 사이트들이 운영되기도 한다.

야오이는 동인지 경향의 작품들을 지칭하는 본래의 경멸적 의미에서 (주로 이성애) 여성들에 의해 창작되는 모든 분야의 남성 동성애 커플 로맨스물을 총칭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최근에는 이 분야에서도 다양한 분화가 나타나면서 노골적인 성애묘사 중심의 작품들로 좁혀 사용되는 추세이고 남성 동성애물을 총칭하는 말은 BL(보이 러브, 혹은 보이스 러브)로 대체되고 있다. Y, Y물은 야오이의 다른 표현이다. 야오이물들을 즐기는 소녀들이 주로 동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동인녀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