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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화해, <인 더 컷>

건달, <인 더 컷>의 여성 육체가 남성 육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듣다

중국인은 여자 셋이 모인 풍경(姦)을 간사하다고 상상했다. 여기 불만을 품은 누군가는 남자 셋이 모인 풍경은 ‘뻔뻔할 뻔’이라고 우스개를 지어냈다. 종종 엿듣게 되는 ‘여자 셋’의 수다는 간사하다기보다 터프하다. 여자가 간사해지는 것은 괜찮은 남자 셋 사이에 혼자 있을 때다. 물론, 이 경우 ‘간사함’은 사회적 권력에 기대어 독점하고자 하는 강자의 욕망에 포획되지 않는 약자의 얄미운 모습일 뿐이다. 반대로, 남자가 매력있는 여자 셋 사이에 혼자 있으면 뻔뻔스럽다. 여기서 ‘뻔뻔함’은 독점욕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권력이 없는 약자의 눈에 비친, 좀더 분방하게 저질러대는 강자의 파렴치한 모습이다. 성적 매력을 경합하는 섹슈얼리티의 시장에서 독점의 욕망은 간사함과 뻔뻔함을 뒷맛으로 남긴다.

이 개운치 않은 뒷맛의 예방주사로 오래전부터 상호 독점의 계약이 제시됐다. 낭만적 사랑의 뿌리는 남녀간의 성적 독점을 통해 시장 경쟁의 고단함을 피하려는 계약이다. 이게 평등조약이 되려면 공정한 성의 교환이 필요하다. 섹스는 상대의 몸을 빌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로 그 자체로 쾌락의 균등 분배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몸은 그 자체로 소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섹스는 침대 위의 공정한 노동의 교환을 통해서만 최소한 착취를 모면할 수 있다. 몸에 덧씌워진 모든 소통의 서사는 불공정한 교환을 은폐하는 레토릭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낭만적 사랑의 서사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해서 계약을 현상유지하는 교환의 불공정함을 가리는 유구한 판타지이다. 그리하여 여성의 성적 욕망이 외출했을 때 이 판타지는 그로테스크한 악몽으로 돌변한다.

제인 캠피온의 <인 더 컷>은 이 악몽을 마주보는 여성의 육체에 관한 세밀화다. 여기서, 남자의 육체는 “흑인들의 속어처럼 야하고 폭력적이다”. 그건 무구한 육체가 아니라 ‘아버지의 법칙’인 속어에 감염된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 육체는 욕망의 표적을 속어처럼 정확하게 겨냥하므로 언제나 확고하게 고함지른다. 여자의 육체는 단테의 시처럼 온화한 고뇌 속에 감싸여 있다. 이 육체는 언제나 욕망의 미로에서 방황하므로 머뭇거리며 비명을 삼킨다. 두 육체의 만남은 교통사고다. 여자의 육체는 고슴도치처럼 사회 권력에 감싸인 남자의 육체에 쓸려 마모된다. 그런데도, 두 여자는 왠지 자꾸만 남자의 육체로 다가간다.

‘여자 1’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위할 때만 상상 속에서 남자를 불러온다. 그에게 남자는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지만 언제 폭력과 권력의 발톱을 드러낼지 모르는 성마른 맹수다. 그는 남성 호르몬의 난폭함에 겁먹고 가부장 권력의 뻔뻔함에 질린다. 그는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워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그의 육체는 발톱이 없는 부드러운 동물을 꿈꾼다. 그의 이복동생인 ‘여자 2’는 남자의 발톱에 할퀴면서도 “상상만으로는 공허해” 성적 욕망을 적극 실천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남자의 무구한 육체를 욕망했던 그녀의 육체는 남자의 면도칼에 토막난다.

그녀들의 맞은편엔 이들의 육체와 만나는 다른 두개의 육체가 있다. 하나는 여자에게 약혼반지를 끼우고 오럴 섹스를 시킨 다음 면도칼로 전신을 토막내는 육체다. 다른 하나는 여자의 몸을 여자의 욕망대로 연주한다. 그는 여성의 성에 대한 위생학적 편견이 없는 맑은 남성 호르몬의 소유자다. 그런데, 두 남자는 형사이며 순찰 파트너이다. 그리고, 총을 쥐고 ‘아버지의 법’을 집행하는 오른손에 똑같은 문신을 갖고 있다. 이렇게 다른 육체에 새겨진 똑같은 모양의 문신! 이건 무얼 말하는가? 가부장 권력이 각인되지 않은 남성의 육체는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성 육체가 남성 육체에 보내는 조건부 화해의 메시지로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집으로 돌아온 여주인공은 말없이 애인 곁에 눕는다. 이 순간에도 문신을 새긴 남자의 오른손은 여전히 수갑으로 기둥에 결박돼 있다. 남자의 무구한 육체는 인정해도 그 속에 각인된 난폭한 가부장 권력은 인정 못하겠다는 전언. 남성 육체의 난폭함이 호르몬 탓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때문이라는 규정은 단호하고 온화한 어머니의 시선이다. 제인 캠피온이 여자의 육체를 껴안는 품은 넓고 남자의 육체를 보는 눈은 날카롭고 지긋하다.

남재일/ 고려대 강사 commat@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