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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파격적인 상상력 - CGV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
황혜림 2004-06-09

CGV, 화제작부터 신작까지 한국 단편애니메이션 23편 상영

때로는 일상, 때로는 욕망과 상상 속에 숨은 크고 작은 판타지를 살아 숨쉬게 하는 짧은 애니메이션들만의 축제로 이른 휴가를 떠나볼까. CGV 한국 단편애니메이션영화제가 오는 6월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CGV상암과 CGV오리에서, 6월18일부터 20일까지 부산 CGV서면에서 열린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J-CGV가 주최하고, 한국독립애니메이션 작가연대 애니마포럼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국내 단편애니메이션의 따끈한 신작들과 지난 화제작 가운데 23편의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영화제. 국내 작가들의 단편애니메이션은 올해에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본선에 8편,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본선에 6편이 진출하는 등 90년대 후반 이후 꾸준하고도 활발한 성장을 보이며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 안시페스티벌에서 한국 특별전이 개최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단편애니메이션의 풍요로운 실험과 상상력이 축적해온 신뢰가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단편애니메이션의 해외 페스티벌 진출 및 수상 소식은 점점 느는 데 비해 해당 작품을 볼 통로는 여전히 부족한 형편에서, 이번 영화제는 반가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부산 등 각종 국제영화제나 독립영화제,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 같은 애니메이션영화제에 하나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처럼 단편애니메이션에 초점을 맞춘 행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키즈 섹션’, 일반 관객을 위한 ‘CGV 섹션’, 그리고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매니아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영화제에는 지난해와 올해 안시 본선에 진출한 7편이 포함돼 있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강아지똥의 이야기인 <강아지똥>,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와 이를 위로하는 개의 상반된 입장을 펜 터치가 섬세한 코미디로 살려낸 <존재> 등 기존 화제작들은 물론이고 다채롭고 파격적인 상상력과 이미지로 무장한 미공개 신작들을 만날 수 있을 듯. CJ CGV에서는 이번 행사에 대한 호응도에 따라 영화제를 연례 행사화하는 계획도 적극 고려 중이라니 성장의 기운은 감지되나 실체를 확인할 기회는 많지 않은 국내 단편애니메이션 전문 축제를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상영작 중 미공개작 및 최신작을 위주로 7편을 미리 들여다보자(관람료 섹션당 3천원/ 예매 6월7일부터 인터넷 www.cgv.co.kr, ARS 1544-1122).

황혜림 blauex@hanmail.net

추천작 7편 소개

<메리 크리스마스> 박세형/ 2003년/ 25분/ 2D 컴퓨터/ 매니아 섹션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쿠데타에 휘말린 군인의 이야기.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하는 임무를 맡은 문 대위는 어쩔 수 없이 아군과 총격전을 벌인다. 명령을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문 대위. 혼란스러운 그의 머리 속에는 미군에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아이들, 동생 영희 등 유년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스쳐간다. 문 대위는 쿠데타를 막으려는 상관 송 대령과 대치하게 되고, 친분이 있던 두 사람이 서로 쏘지 못한 채 주춤하는 사이 쿠데타 세력이 들이닥친다. 어두운 색채와 정교한 작화에 바탕한 사실적인 액션,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권력의 전장으로 내몰린 남자의 비극이란 모티브 등에서 <인랑>을 연상시킬 법도 한 작품. 단편으로 소화하기엔 버거운 소재라 이야기에 빈틈이 있긴 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재구성한 매끄럽고 사실적인 영상이 돋보인다.

<정현아> 강준원/ 2004년/ 7분/ 2D, 페이퍼/ 매니아 섹션

말하자면 ‘설거지에 대한 감독의 즐거운 일기’. 문이 열리고 부엌으로 들어온 인물은 지저분하게 널린 그릇들을 보고 망설인다. 이내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누르는 손. 경쾌한 재즈곡이 흐르자 싱크대로 다가간 손은 설거지를 시작한다. 인물의 얼굴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은, 수세미에 세척제를 묻히고 물을 튼 뒤 쌓아둔 접시들을 하나하나 씻어가는 손과 그릇들이 주인공. 페이퍼애니메이션을 컴퓨터에 옮긴 영상은 펜선 특유의 질감과 꼼꼼한 묘사를 보여주며, 재즈 리듬과 맞물린 그릇들의 움직임은 설거지를 유쾌한 유희처럼 그려낸다. 트럼펫 음색 사이에 달그락거리는 그릇,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 수저통에 꽂히는 수저 등 일상적인 사물들의 운동과 거기서 찾아낸 소리들을 또 하나의 악기처럼 끼워넣은 연출은 움직임과 사운드가 하나로 만난 애니메이션 특유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지옥> 연상호/ 2003년/ 11분/ 플래시/ 매니아 섹션

크하수도 구석에 앉아 쥐를 뜯어먹는 남자. 역설적으로 들리는 “난 운좋은 사람”이란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은 그의 과거로 플래시백한다. 회사와 집을 오가고, 이따금 상사에게 닦달을 당하곤 했던 남자의 일상은 평범했다. 하지만 어느 날 천사에게 곧 죽을 것이며, 지옥에서 지금껏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의 10배를 느낄 것이라는 선고를 받는 순간 남자의 지루한 평화는 깨어진다. 지옥이 무서워 도피하고, 도망칠수록 배가된다는 고통을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쫓길 수밖에 없는 남자의 현실은 이미 지옥에 다름 아니다. 저승사자들에게 붙들린 다른 희생자의 유혈 낭자한 죽음 등 악몽 같은 현실의 공포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가 두드러지며, 실제 사람을 촬영한 필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이용한 움직임과 영상이 플래시애니메이션이라 보기 힘들 만큼 사실적이고 정교하다.

<쏭의 명절> 이송희/ 2004년/ 8분25초/ 2D컴퓨터/ CGV 섹션

어릴 때야 맛난 음식을 먹고 용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자라면서는 그 잔치를 준비하는 노동(?)과 차례 등 가족으로서 함께 치러야 할 일들로 바쁜 명절. <쏭의 명절>은 “꿈 많은 애니메이터지만, 사람들은 시집 안 간 노처녀”라 부르는 29살 쏭의 명절맞이 풍경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추석 연휴에 음식 준비를 돕던 쏭은, 딱히 할 일이 없는 남동생들과 아빠를 두고 자신에게만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야속하다. 훌쩍이며 잠들었다가 바람을 쐬러 나가보지만,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집으로 돌아와 아직도 일하는 엄마를 보며 도울지 그냥 피할지 갈등하는 심리까지, 명절을 맞이한 미혼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세심하게 포착한 진솔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작품. 방 안의 소품까지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배경, 귀염성 있는 그림체에 녹아든 일상의 우화는 명절과 가족의 의미를, 특히 여성의 시선으로 되짚어보게 한다.

〈Africa> 한태호/ 2004년/ 10분22초/ 2D, 3D컴퓨터/ CGV 섹션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아프리카의 한 마을. 한 소녀가 어렵사리 배급받은 수프를 들고 오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만다. 좌절한 소녀 앞에 쏟아진 수프에 기운을 차린 듯 전설의 고래가 나타나고, 쩍쩍 갈라진 땅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형형색색으로 물들면서 꽃과 나무, 물과 갖가지 동물들이 마술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전설의 고래와 함께 아직 생명과 자연의 풍요로움이 넘쳐났던 시절의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과 같은 작품. 풍부한 색감과 아프리카 전통 미술에 영감을 얻은 캐릭터디자인 등 세련된 만듦새와 이상은의 서정적인 음악이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으로, <바스토프레몬> 등 국내 TV시리즈와 해외 하청 작업으로 이력을 쌓아온 동우애니메이션이 제작했다.

<오늘이> 이성강/ 2003년/ 16분/ 2D컴퓨터/ 키즈 섹션

<덤불 속의 재> 등 여러 단편과 장편 <마리 이야기>에서 컴퓨터애니메이션의 독창적인 질감을 탐사해온 이성강 감독의 시도는 <오늘이>에서도 계속된다. 계절의 향기와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원천강. 전통 자수에서 볼 법한 화사한 문양의 자연 속에 소녀 오늘이와 커다란 학 야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납치된 오늘이는 풍랑을 만나 낯선 세상에 도착한다.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대는 소녀, 꽃을 한 송이밖에 피우지 못한다며 슬퍼하는 연뿌리, 비를 뿌리는 구름을 달고 사는 소년, 여의주를 아무리 모아도 승천하지 못하는 용. 원천강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존재에게 길을 묻고, 또 그들의 사정에 귀기울이는 오늘이의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전통 미술에서 생명을 얻은 산수의 자태와 풍부한 색상의 절경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에그 콜라-에피소드1>홍성호/ 2003년/ 6분15초/ 3D컴퓨터/ 키즈 섹션

장편으로 제작 중인 3D 컴퓨터애니메이션 <에그콜라>의 두 번째 트레일러를 겸한 단편. 에그콜라의 제조비법을 캐내려는 도적단의 모험을 그릴 장편의 일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사막을 지나던 주인공들이 에그콜라 때문에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로봇을 타고 이동하던 도적단은 우연히 에그콜라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 맛에 반한 사막의 생명체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게 된다. 코믹한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움직임, 사막의 모래 등 세련된 컴퓨터그래픽 테크놀로지와 역동적인 카메라워크, 유머 감각이 두드러지면서 장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