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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마을의 집단적 공포, <분신사바>
김도훈 2004-08-03

공포영화 전문감독 안병기의 세 번째 작품. 안타 둘의 구원타자, 삼진아웃으로 주춤

호러 영화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여름이다. 호러 장르에 대한 기본도 없는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안병기의 <분신사바>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 안병기는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한우물만 열심히 파온 감독이고, 전작 <가위>와 <폰>은 서툴지라도 가능성만은 열어두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영화는 왕따를 당하던 전학생 유진(이세은)이 분신사바 주문으로 원혼을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불에 타서 죽어가는데, 시작 부분은 시각적으로 꽤나 강렬하고 프로덕션디자인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화의 리듬은 조금씩 늘어진다.

인물들은 설명하고 또 설명하느라 화면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때문에 30년 전 벌어졌던 비극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관객의 잘 전달되지 않는다. 전작들의 약점이었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의 부재’를 극복해보고자 원작소설(<모녀귀>)의 각색을 택했건만, 소설의 장점이 영화적 재창조의 고민없이 스크린에 그대로 투사되는 순간 지나치게 친절한 이야기 트루기는 오히려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고립된 마을의 집단적 공포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저주받은 마을의 지형도는 그리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아쉽다.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소녀들은 사다코의 배다른 자매처럼 화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을뿐, 관객을 소리지르게 만들 만한 기술적 장치들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가위>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뚫고 튀어나오는 손이나 <폰>에서 벽 손에서 튀어나오는 시체는 완전히 독창적인 건 아니지만 관객을 놀래키는데 성공한 순간들이었다. 그가 지닌 ‘호러영화광’으로서의 순발력과 거칠지만 쓸모있는 창조력 때문이었다. <분신사바>에서 그런 장점들은 흐릿하게만 감지된다.

안병기도 알다시피 호러영화 팬들은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 번째 영화에서까지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다음 가능성’만을 열어둔 지금, 그들의 충성심도 그리 미덥지는 않아 보인다. 팬들은 그럼에도 네번째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것이다. 그때 안병기 감독이 내놓는 것은 제대로 된 카드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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