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허구적인, 너무나 허구적인
2001-06-14

영화 <진주만>과 역사 속 진실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왜곡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들이 얼마 전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판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참 ‘대단한 일본이야!’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우리나라와 중국이 만만해 보인다고 해도, 주변국가들과의 마찰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우익의 목소리를 두둔해주는 일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무엇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과오에 대해 그토록 당당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일본통’들이 문화개방으로 인해 조금은 가까워진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출간한 수많은 일본 관련 책들도, 이 근본적인 궁금증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일본인들이 자신의 현대사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의 흥행감독 마이클 베이가 <진주만>을 선보인 것은 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가 일시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 중 하나인 진주만 공습을 일본의 시각이 아닌 미국 시각에서, 그것도 화려한

특수효과로 실감나게 복원된 상태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 대해 일부 일본인들이 ‘역사의 왜곡’

운운한다면, 이는 완전히 코미디가 되고 말 것이다. 역사 교과서의 왜곡시비에 휘말린 일본이, 기본적으로 허구임이 분명한 영화를 상대로 왜곡을

부르짖는 것은 결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7월14일로 예정된 일본 개봉 때에는 조금 변형된 <진주만>이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우익의 목소리가 큰 일본사회에서 <진주만>의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史實)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허구일 수밖에 없는 <진주만>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비단 일본인들만은 아닌 듯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마이클 베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부정확성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마이클 베이는 <타이타닉>을 거론하며

“극영화가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인 허구가 없다면, 그건 그냥 침몰한 배의 이야기가 될 뿐”이고, “<도라! 도라! 도라!>의 경우가

역사에 충실하려 시도했던 예지만, 그 결과 다큐드라마가 되고 말았다”라며 <진주만>의 비역사성에 대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진주만>이나 같은 영화들을 하나의 역사공부 텍스트로 바라보는 이들이 전세계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에서, 특히 미국인들이 <진주만>을 보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부분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비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의 대치상황이 심화하면서 태평양의 미국 해군이 대서양으로 대거 이동했고, 태평양의 미국 공군 또한 일본의 공습이 예상되던 필리핀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당시 레이더 시스템과 대공포 등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일본의 그런 대규모 공습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공습이 그토록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있었다. 우선 일본이 사용한 A6M ZERO 전투기는 당시 하와이에

배치돼 있던 미군의 P-40기들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군의 조종사들 역시 중국 전장에서 실전경험을 충분히 쌓은 이들로만

선발되었던 것이 그중 하나다. 또한 철저한 계산하에 다른 비행기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진주만의 북쪽 항공루트를 이용해 공습을 가맹하면서도 자신들끼리의

무선교신을 절대 하지 않은 일본군의 치밀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없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공습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미군의 정보기관들이 공습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41년 1월27일 일본 주재 미국 대사인 조셉 그루가 미국 국무성에 보낸 일본군의 암호 전문이었다. 당시 미국무성의 일본군 암호 전문가는 그

전문의 내용이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것임을 알아내고 이를 상부에 즉각 보고했지만, 그 전문을 보내준 일본 주재 대사인 조셉 그루는 물론이고

다른 정보기관에서조차 이를 일본군의 심리전 정도로 믿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공습이 있기 며칠 전에는 워싱턴 미 국방부의 정보기관에서

일본군 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이를 진주만의 미군에는 알리지 않은 것이 훗날 드러나기도 했다.

반면 당시 미국에 있던 일본계 미국인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기록에 따르면 2차대전중 약 1만7천여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미군으로 참전했으며,

일본인 2세만으로 구성된 전투사단이 구성되어 독일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앨런 파커의 90년작 <폭풍의 나날>(Come

See the Paradise)이 그려냈던 것처럼 미국 서부에 살던 약 12만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갇혀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그중 1/4은 15살 이하의 어린이들이었으며, 2/3은 이미 미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들은 지금도 이를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고 <진주만>을 보는 것은

미국인들에게조차 ‘해로운’ 일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진주만>을 허구에 바탕을 둔 오락영화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관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 <진주만> 공식 홈페이지

http://www.pearlharbor.com/

▶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진주만>

특집 http://www.nationalgeographic.com/pearlharbor/ngbeyond

▶ <히스토리 채널>의 진주만 공습 특집

http://www.historychannel.com/pearlharb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