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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과 자유의 딜레마
2001-06-14

게임과 심의

창작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 한반도에 살다보면 더 절실하게 느낀다. 사람 머리를 때리는 장면이 들어간 광고는 공중파 방송에서 방송될 수 없고, 영화의 주제와 직결되는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일인당 세개씩 붙은 빨간 하트에 폭소만 자아냈다. 검열 같은 유치찬란한 제도는 반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창작의 자유를 외치는 주체가 모모 부인 시리즈로 대표되는 핑크영화 제작진 일동이라면? 솔직히 내놓고 지지하긴 좀 뭐하지만 이쪽에만 안면을 바꾸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한술 더 떠서 지나친 검열 때문에 외국에 시장을 빼앗긴다고 울상인 인터넷 성인 방송국의 국내산업 보호, 육성론도 눈감아주자. 하지만 유아 대상 포르노는? 또 동물 학대는? 스너프 필름은?

책이든 만화든 영화든 게임이든, 내가 볼 걸 남이 먼저 가로채 이리저리 잘라내는 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 나도 생각할 줄 알고 판단할 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대신 판단해주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많은 경우, 심의 담당자는 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열정도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검열을 반대하려고 드니 앞에 얘기했던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은 그 진부한 울림만큼이나 정확하게 작용한다. 젊고 예쁜 여자의 옷을 더 많이 벗기고, 다른 사람, 특히 약자를 더 심한 웃음거리로 만들고, 더 처참하고 잔인하고 규모가 큰 폭력을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다. 특히 “처음인데 잘 먹었네” 따위 카피만 내놓는 주제에 툭하면 예술가연하는 사람들을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동조해주는 게 한심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국내에선 게임이 아직까지 아이들 대상이라 그런지 검열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폭력성과 선정성을 무조건 문제삼는 쪽과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해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역시 무조건 화부터 내고보는 쪽이 산발적으로 대립하고 있을 뿐이다. 검열을 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 자의적인 검열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 기준을 세워야 할지, 검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보완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만드는 게임 종류로 보나,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사상으로 보나, 계몽주의적 게임 제작자라고 부를 만한, <문명> 시리즈의 시드 마이어는 “제작자가 ‘개발의 자유’를 남용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계몽주의자들처럼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대중이 원하는 한, 제작자는 자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을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드 마이어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제작자는 대중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대로 팔리는 게임을 만들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게이머 스스로가 나쁜 게임을 걸러내 시장으로부터 퇴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는 ‘논리적’ 최선, 다시 말해 형식적 가능성일 뿐이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그런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든 말든 심의제도를 채택하고, 사태를 그냥 방치한 건 아니라는 자기 위안의 방어기제를 만드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그렇게 될 거 악화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간섭하는 부당한 권력을 거부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어느 쪽이든 별로 재미있지도 보람있지도 않은 일이고, 골치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게임이나 한판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