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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회고전
2001-06-14

느껴보라, 거장의 그림자를

지금은 조금 그 명성이 빛바랬다고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전히 일본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워낙 일본애니의 새로운 조류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안노 히데야키에서 오키우라 히로유키에 이르기까지 개성 강하고 실력 좋은 쟁쟁한 후배들의 등장으로 미야자키의 작품을 거론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감상이 되었다. 더구나 비슷한 연배의 린타로나 데자키 오사무 등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는 데 반해 그는 여전히 TV시리즈나 OVA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처럼 뜸한 작품활동에 늘 한결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가 감각적인 젊은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가 <원령공주> 이후 새로 준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이 여전히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얼마 전 이 지면을 통해 <메트로폴리스>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이미 개봉을 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메트로폴리스>에 비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한때 ‘올 여름 개봉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현재로서는 7월개봉 예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근 소식을 보면 6월 초순인 현재까지도 아직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라고 하니, 제작이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이하게도 이번 작품의 상당 부분은 한국의 프로덕션들이 담당하고 있어, 지브리의 제작일지에는 서울에서 오는 애니메이션 컷에 대한 소개가 상세하게 실리고 있다.

하지만 요즘 미야자키 하야오를 둘러싼 최고의 이야깃거리는 신작 애니메이션이 아닌 그의 회고전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데뷔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가여정을 살펴보는 뜻깊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영화의 계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 회고전은 생존하는 일본애니메이션 감독으로는 최초로 열리는 행사이다. 오는 6월16일부터 7월20일까지 장장 한달간에 걸쳐 도쿄 ‘에비스 가든플레이스’의 사진미술관 홀에서 열릴 예정. 여름에 공개하는 신작과 그가 오랫동안 공들였던 지브리 미술관의 10월 개장을 기념해 열리는 회고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터로 참가했던 63년 작품에서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모든 작품이 공개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극장용 장편은 물론이고 대표적인 TV시리즈 <미래소년 코난>도 행사를 위해 별도로 편집돼 공개된다. 이 밖에 <루팡 3세> <플란더스의 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빨간머리 앤> <명탐정 홈즈> 등 그가 참여했던 TV시리즈들이 모두 소개된다.

흥미로운 것은 60년대 초기작으로 선보이는 작품들. <하늘을 나는 유령선> <동물보물섬> <장화신은 고양이> <왕왕 주신장> 등 그가 애니메이터 시절 참여했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들도 있지만, 70년대 초 국내에서 <로빈특공대>란 이름으로 소개됐던 <레인보우전대 로빈>를 비롯해 <요술공주 세리> <걸리버의 우주여행> 등 ‘여기에도 미야자키가 참여했었나’ 싶은 예상 외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고전은 단순한 한 개인의 자취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데츠카 오사무 이후 일본애니메이션이 걸어온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어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한동안 ‘한물 간 거장’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이번 회고전을 보면 아직도 일본애니메이션에 드리운 미야자키의 그림자는 짙기만 하다.

김재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