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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너머 만화가 보인다
2001-06-14

SICAF 2001에 소개될 북한만화들

2001년 8월11일부터 19일까지 코엑스 1층에서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01이 개최된다. SICAF 2001 기획전시의

하나인 남북만화전에는 북한의 만화그림책 49권이 소개된다. 북한애니메이션은 공중파TV나 케이블TV 등지에서 소개된 적이 있지만 만화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북한에는 만화와 그림책의 개념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만화도 그림책, 동화그림책, 그림이야기, 이야기그림책 등으로 표기되고

있고 그림책의 경우도 유사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만화책은 각각 우편엽서 크기, 일반 공책 크기, A4용지 절반 크기 등 다양한 크기에 대부분

40∼60쪽 분량이다. 50년대 팔렸던 딱지만화처럼 조악한 인쇄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에서부터 비교적 세련된 인쇄상태를 보여주는 작품까지 다양하다.

금성청년출판사에서 1991년 출판된 만화들은 대부분 갱지에 인쇄돼 있는 데 비해, 평양출판사의 1991년판 만화인 <솔개에 대한 이야기>

<불사조의 노래> <돌아선 모습>은 모조지에 인쇄돼 있다.

공산주의도덕교양만화에서 전쟁만화까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북한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상업만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만화를 출판한 금성청년출판사나 평양출판사, 조선미술출판사

등은 만화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물들도 출판한다. 가장 많이 만화를 출판하는 금성청년출판사는 주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만화를 출판하고 있다. 금성청년출판사의 만화는 교통질서를 지키거나 학교생활을 잘하자는 ‘공산주의도덕교양’을 위한 만화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만화 그리고 설화나 전설을 소재로 한 만화로 나뉜다. 재미있는 점은 엽서 크기에 40여쪽의 얇은 ‘공산주의도덕교양그림책’이라는 만화책이다.

간단하게 휴대할 수 있는 이 만화책은 북한에서 만화가 교육의 일상적 보조교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전쟁만화인 <푸른 신호탄>

<격전을 앞두고> <긴급전문> <무전수와 두소년> 같은 만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소년들의 활약을 그린 만화다.

항일무장투쟁과 한국전쟁의 경험이 북한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년들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전쟁만화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금성청년출판사에 비해 평양출판사의 만화책은 품질이 뛰어나다. 이번에 소개된 만화 중 가장 매력적인 화풍을 보유한 작품인 양경진의 <솔개에

대한 이야?gt;는 평양출판사의 1991년 작품이다. <솔개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붓으로 제작된 만화다. 북한의 모든

만화는 톤을 사용하지 않고 펜과 붓으로만 그렸는데, <솔개에 대한 이야기>는 굵은 선은 물론 세필까지 모두 붓을 이용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붓을 이용한 말 그림이나 소나무와 같은 풍경은 한국화의 한폭을 보는 듯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천민 출신 고구려 무사 솔개는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이야기. 민족적 정취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번에 소개된 북한만화 중 가장 큰 판형에 가장 두꺼운 페이지인 김중일의 <돌아선 모습>도 평양출판사에서 출간된 만화다.

해외교포들이 북한에 대한 오해를 푼다는 내용을 그린 이 만화의 주인공 김수민이 <고르고 13>의 캐릭터와 똑같았다.

<수정열쇠>, 뛰어난 연출력 돋보여

금성청년출판사에서 1991년에 출판된 하정아의 <수정열쇠>는 다른 만화와 비교해 만화적 연출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바다에 가까운 산골마을에는 신기한 약샘이 있었는데, 물의 양이 많지 않아 수정으로 된 동굴의 열쇠를 무술대회 우승자가 지키게 했다. 최장수는

고장수를 이기고 열쇠를 맡게 되었다. 약샘을 빼앗으려는 도적들은 고장수와 짜고 최장수의 열쇠를 빼앗지만 열쇠의 비밀을 풀지 못해 문을 여는

데 실패하고 만다. 최장수의 아들인 최곰과 돌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산채에 잠입한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아들들의 스릴 넘치는 활약이나 만화체의

익숙한 캐릭터, 다양한 칸 나눔과 앵글 연출은 마치 김원빈의 <주먹대장>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친숙함은 작가가 18살에 입북한

조총련 출신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정아의 다른 작품으로 <날개 달린 룡마> <호랑이를 이긴 고슴도치> 등이 있다.

금성청년출판사에서 1994년에 출판된 <아음파의 비밀>은 보기 드문 SF만화다. 북한에서는 SF만화를 ‘과학환상련속그림책’이라 표기하고

있는데, 그럴듯하다. 엄정희가 글을 쓰고 고임홍이 그림을 그린 이 만화는 ‘만능소년과학탐험대’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메뚜기떼가 아프리카의

중부지대를 공격하자 자연동물원 담당자는 만능소년과학탐험대를 불러 사건의 해결을 부탁한다. 탐험대의 대장인 강영남은 북한의 허승민 교수를 불러

함께 문제를 해결하다가 나치 전범인 포우를 고용해 아음파(7헤르츠보다 낮은 음파)를 이용한 무기를 만드는 조직을 일망타진한다. 60∼70년대

보았음직한 소년, 소녀의 과학모험담으로 20세기적인 모험이 매력적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과 비교해보면 미묘한 감흥을

받을 수 있다.

세밀한 칸 나눔과 70년대 이재학이나 강철수의 성인만화의 매력적인 펜선이 살아 있는 최혁의 <단검작전>은 조선미술출판사에서 출판된

1993년 작품이다. 미술전문출판사에서 출판된 만화이기 때문인지 꼼꼼한 미장센이 매력적이다. 다른 만화와 달리 피드백과 같은 연출기법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전쟁만화다.

북한에도 만화가 있다

북한의 만화는 전체적으로 매우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책의 판형은 물론이고 만화적 형식에서도 그림책의 삽화처럼 말풍선이 분화되지 않은 형태에서부터

시작해,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초보적인 형태의 만화연출 그리고 제법 세련된 연출까지 다양한 형식이 혼재돼 있다. 이를테면 1940년대의

만화와 1980년대의 만화가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상업적 구조에 의해 발전하기보다는 다른 예술분야처럼 당의 정책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에도 만화가 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다 해도, 북한 어린이들도 만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박인하|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