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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액션의 영웅 신화, <바람의 파이터>
김용언 2004-08-10

실화 대신 신화를 선택한 파이터의 삶. 리얼 액션의 짜릿함은 남아 있지만, 인물의 정서는 휘발되고 만다

‘CG와 와이어를 거부하는’ 리얼 액션을 주창했던 모 영화에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영화계에 있어 <돌려차기>나 <바람의 파이터> 그리고 <역도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업들을 들여다보면 일체의 다른 도구 없이 육체와 육체가 직접 맞부딪치는 액션, 그 짜릿한 날것의 느낌에 당분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극진공수도라는 실전무술을 창시했던 무도인 최배달의 삶을 다루고 있는 <바람의 파이터>는 몇분을 채 넘지 않는 가운데 ‘일격필살의 한방’으로 승부를 가려야 하는 특유의 대결 구조 속에서 최대한 리얼한 액션의 쾌감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수모와 차별을 겪으면서도 일본 무도계를 제패하고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잊지 않았던 최배달이라는, 드라마틱한 영웅의 인간적 면모 역시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단 영화는 익숙한 블록버스터의 외형적 특성에 매우 충실하다. 적절한 고뇌와 시련을 거쳐 최고가 되는 주인공의 수련기, 모든 인과관계가 주인공의 삶과만 연결되는 주변 인물들의 형상화, 상당히 꼼꼼하게 재현된 시대적 배경, 화면의 중심을 철저하게 주인공에게 맞추는 촬영, 감정을 고양시키는 과장된 스코어의 사운드… 이 모든 요소들과 어울리며 최배달의 삶은 익숙한 영웅 서사 구조에 흡수되어간다. 잠깐, 사실 최배달은 방학기의 만화가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썩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이 이야기가 ‘낯익어’ 보이는 걸까? 이건 말 그대로 그가 만화적인 인물, 캐리커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신화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실화의 절절한 정서가 증발되어버린 것이다. 실존했던 ‘우리들의 영웅’의 최초의 영상적 초상화가 아더왕이나 아킬레스 같은 서구 영웅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인물을 더 가깝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가능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만다.

영화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상적 민족주의도 그러하거니와 최배달과 주변 인물의 유기적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진행될수록 영화가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 최배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무술 선생 범수는 비현실에 가까우리만치 맥없이 그려지고, 숙적 가토와 료마 역시 최배달이라는 당대의 마이너리티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좀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부여받지 못하며 단순명료한 악역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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