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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종횡하는 복수와 속죄의 질주, <본 슈프리머시>
김혜리 2004-08-17

유럽을 종횡하는 복수와 속죄의 질주. 제이슨 본, 그 남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희귀한 첩보원이다. 그가 찾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진실이다. 그에겐 지령도 임무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2년 전 <본 아이덴티티>로 거슬러올라가는 사연이 있다. 총상을 입고 지중해에서 구조된 본은, 기억은 백지상태인데 육체는 가공할 반사신경과 첩보기술, 전투력을 암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본의 정체는 CIA 암살단 트래드스톤 최정예. 그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길 원치 않는 과거의 상사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싸움에서 본은 마리(프랭카 포텐테)를 우연한 동행으로 만나고 결국 은둔 생활의 반려자로 맞이한다. <본 아이덴티티>의 말미에서 본때를 보여준 본은 “이제 건드리지 말라”고 적에게 통고했지만 그 정중한 부탁이 받아들여질 거라고는 CIA도 관객도 유니버설픽처스 관계자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6500만달러로 찍은 1편이 1억2100만달러를 벌어들인 뒤에는 말이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인도에 정착한 본에게 다시 저격수를 보내는 것은 부패와 살인의 죄를 본에게 전가하려는 무리들. 그러나 킬러의 총에 생명 대신 마리를 빼앗긴 본은 생존과 복수를 위해 유럽으로 날아가 스스로를 미끼로 던진다. 한편 비리사건을 조사하다가 파일과 부하를 잃은 강직한 CIA 간부 파멜라 랜디(조앤 앨런)는 지문이 범인으로 지목한 본을 잡기 위해 베를린에 덫을 놓는다. 본의 복수전은 어느새 아직 기억이 불완전한 그가 ‘악행의 자서전’을 복원하고 속죄하는 여정과 하나가 된다.

뿔 달린 히어로부터 뿔 자른 히어로까지 영웅이 북적대게 마련인 여름 시즌에 제이슨 본이라는 중키의 (전직) 첩보원이 발휘하는 출중한 매력을 설명하려면 몇 가지 자문으로 충분하다. 지나가는 여자의 차를 태워달라고 해서 거절당하는 액션영웅을 본 적이 있었던가? 5분 전에 도착한 도시라 한들 길을 물어보고 자동차 시동을 거는 스파이를 본 적이 있었나? 본은 모스크바 거리에서 총을 맞으면 슈퍼마켓으로 뛰어들어 소독할 보드카와 지도를 산다. 제이슨 본은 탁월하게 강하지만 거저 이루는 일은 하나도 없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경탄을 자아내는 장면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무장 경비원의 급소를 가격해 쓰러뜨린 그는 2초간 눈을 깜박이며 판단한다. 다음 순간 휴대폰의 칩, 자동차 열쇠를 챙기고 번호판을 바꿔단다. 쓸데없이 기물을 파손하고 총질할 필요가 없다. 첫째, 감청으로 적의 동선을 파악하고 둘째, 이동수단을 확보한다. 상황 끝. 사운드트랙의 스코어 한곡이 흐르는 동안 전화카드 하나로 파멜라 랜디의 소재를 파악하고 육박해 들어가는 한달음의 시퀀스는 댄스뮤직처럼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마지못해 질주하는 프로의 세계가 있을 뿐, 벽 타는 액션 따위는 없다. 동작과 판단 하나하나가 현실적 기준에서 경이로울 뿐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의 개성을,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전작 <블러디 선데이>가 100% 입증한 두 가지 장기, 현장감과 뚝심으로 살려낸다. 카메라와 편집은 관객이 제이슨과 함께 실시간으로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하도록 재촉하고,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던 <블러디 선데이>의 결기 비슷한 에너지가 이 장르영화를 관통한다. 핸드헬드와 스테디캠으로 영화 대부분을 찍은 <본 슈프리머시>는 일부 관객에게는 시신경의 피로를 유발할 법하다. <본 슈프리머시>는 대륙간 여행을 불사하고 유럽 공동체 안에서도 끝없이 움직이며 편집은 영화를 미분한다(맷 데이먼까지 있으니 또 다른 기행 스릴러 <리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동승자의 시점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요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관객을 조수석에 결박하고 기어코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두번의 졸도할 만한 카 체이스에서도 그렇다. <빌리지 보이스>가 ‘안티블록버스터’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본 슈프리머시>의 미학적 전략은, ‘통제된 생동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심히 디자인된 ‘들고찍기’는 폭력과 감정을 직접 연결하고, CGI의 불기둥보다 훨씬 심장을 조인다. 폴 그린그래스는 통상 스타일의 추방으로 여겨지는 시네마 베리테식 카메라워크가 얼마나 강렬한 장르적 양식일 수 있는지 입증했다.

액션의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숨을 고를 즈음에 본은 한 여자를 만난다. 007 영화라면 새 본드걸이라도 소개하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다. 고해로는 저질러진 일을 지울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지만 어쨌거나 본은 그렇게 한다. 살아 있는 한 그는 군중 속에 숨어서 걸어야 하고, 군중을 벗어나면 달려야한다. 그러나 추격과 도주가 끝났을 때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제이슨 본 시리즈가 우리의 공감까지 얻어낸다면 그것은 강요당한 여행자 본의 과로한 얼굴 때문일 것이다. <본 슈프리머시>의 여운은 시대착오적으로 멋있는 남자와 만나 진지한 데이트를 한 느낌과 흡사하다. 핸섬한 오락영화가 즐비한, 기억할 만한 여름이다.

:: 폴 그린그래스 감독 할리우드 진출기

“이 감독 안 쓰면 우리가 미친 거다”

<본 아이덴티티> 촬영 중 스튜디오와 마찰이 많았던 덕 라이먼 감독을 제작자의 의자로 물러앉힌 뒤 유니버설이 물색하고 나선 “새로운 피”에, <스티븐 로렌스 살인사건> <블러디 선데이>를 만든 48살의 반골 영국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그리 딱 들어맞는 인물은 아니었다. <본 슈프리머시>의 제작경과를 기사화한 〈LA타임스>에 따르면 그린그래스를 추천한 것은 1, 2편의 각본가 토니 길로이였다. 그의 제안에 어느 주말 <블러디 선데이>를 일제히 감상한 맷 데이먼과 제작자들은 “이 감독 안 쓰면 우리가 미친 거다”라는 결론에 동의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런던의 한 극장에서 관람했던 <본 아이덴티티>에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류 미국 상업영화와 유럽 인디 감수성의 흥미로운 결합이라고 여겼고, 사실적인 정서와 반권위적인 캐릭터에 마음이 쏠렸다. “본은 슈퍼히어로나 만화 속 영웅과 다르다. 그는 첨단 기술이나 초인적 파워도 없는 거리의 남자다. 다만, 잘 훈련됐고 머리를 쓰는 남자다. 그의 내면에는 선량한 본과 옛날의 암살자 본이 공존한다.” 게다가 그린그래스는 영화경력에서 지금쯤 모험을 해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양쪽의 이해는 맞아떨어졌고, 첫 번째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그린그래스는 예전의 동지 중 의상디자이너 디나 콜린만 데리고 왔을 뿐 1편의 배우, 제작자, 촬영감독, 조감독을 고스란히 물려받기로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앤서니 밍겔라, 케빈 스미스 등 유수한 감독과 작업해온 맷 데이먼은 폴 그린그래스가, 배우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우선시하고 카메라를 거기에 종속시키는 구스 반 산트와 가장 비슷하면서도, 반 산트보다 더 의사소통을 중요시하는 감독이라고 인물평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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