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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에 서리 내리는 ‘여귀’들, 고전 납량영화전
이유란 2004-08-27

한국영상자료원, 60~80년대 고전 납량영화 11편 상영

왜 여귀(女鬼)인가? 귀신 하면 우리는 흔히 소복 입고 머리 풀어헤친 여자귀신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여귀가 처음부터 한국 공포영화의 지배적인 형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음력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여귀들이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이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채근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폭력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타자화되고 주변화되어갔다. 이 억압받은 여성들이 귀신이 되어 벌이는 한바탕의 칼춤,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이 바로 공포영화였다. 여귀들이 주인공인 공포영화 11편을 상영하는 한국고전 납량영화전 ‘그 여름 밤 두견새 우는 사연’이 8월26일부터 31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 시기적으로 1967년에서 1986년에 걸쳐 있는 상영작들은 최근의 한국 공포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와 공포를 엮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공포영화들은 주로 한국 고유의 설화, 민담 등 전통서사에서 소재를 끌어왔다. 그중 <두견새 우는 사연>(감독 이규웅, 1967)은 <춘향전>의 공포영화 버전. 퇴기의 딸, 승지의 아들, 수청을 강요하는 사또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하지만 <춘향전>과는 달리 퇴기의 딸 옥화는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한을 품고 죽는다.

옥화는 가부장제, 계급제의 희생자다. 옥화뿐만이 아니라 여주인공들은 예외없이 억울하게 죽어 원귀가 된다. 이처럼 살아서 가부장제의 가련한 희생자였던 여성들은 죽어서 초월적인 힘과 성욕을 지닌 귀신이 되어 복수를 감행한다. <여곡성>(감독 권혁수, 1986년)의 귀신 월아는 자신을 버린 이씨 집안의 대를 끊기 위해 그의 세 아들을 모조리 살해한다. 신상옥 감독의 <이조괴담>(1970)은 원귀의 섹슈얼리티가 얼마나 막강하고 공포스러운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 연산군이 요구하는 수청을 거절한 야화는 자결하면서 고양이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야화가 흘린 피를 먹고 마성이 생긴 고양이의 혼은 박 상궁과 장녹수에게 씌이고 그날부터 궁중 안에서 시체들이 연달아 발견된다. 그리고 천하의 폭군인 연산은 장녹수와 하룻밤을 보내고 정기를 다 빼앗겨 시름시름 앓는다. 이처럼 고양이의 마성이 산 여성에게 씌인다는 설정은 <원한의 공동묘지>(감독 김인수, 1983)에서 다시 반복된다. <이조괴담>에서처럼 남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괴력의 성욕은 여귀들의 주요 ‘무기’가 된다. <월하의 공동묘지> 감독 권철휘의 1973년작 <>의 여귀들은 성욕을 이용해 잇따라 무사들을 살해한다. 동시에 <>에는 이색적으로 빈번한 정사장면, 와이어액션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 공포영화 장르의 변주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이채롭다.

한국 공포영화 가운데에는 공포의 유발보다는 애절한 사연 전달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도 많다. <반혼녀>(감독 신상옥, 1973)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약혼자와 혼인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르고 싶어하는 연화의 애절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멜로드라마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멜로의 신파성은 이 시기 공포영화에 흔하게 나타난다. <누나의 한>(감독 이유섭, 1971)에 나타난, 계모의 흉계로 억울하게 죽은 누나가 어린 동생을 보호한다는 설정에서 멜로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의 흔적을 엿보는 논자도 있다. 한편, <원>(감독 남태권, 1969), <깊은 밤 갑자기>(감독 고영남, 1981), <망령의 웨딩드레스>(감독 박윤교, 1981)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각 꽃, 목각인형, 마네킹에 깃들인 여귀가 등장한다(문의: 02-521-6213, www.koreafilm.or.kr).

이유란 fbird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