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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1]
홍성남(평론가) 2004-09-09

하이퍼텍 나다, 9월10일부터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상영

“그 영화는 우리를 미학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논쟁으로 옮겨가는가 하면 또 그 반대로 이어지기도 하는 끝없는 토론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탈리아의 영향력 있는 영화잡지 <치네마 누오보>의 비평가였던 귀도 핑크는 대략 40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본 “힘있고 젊으며 불온하면서도 도발적인” 한편의 이탈리아영화가 자신에게 남긴 깊은 인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그가 본 것은 <불타는 남자>라는 한 젊은 영화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영화를 시작으로 앞으로 자신들의 필모그래피를 흥미로운 영화들로 채워넣을 시네아스트의 탄생이기도 했다. 타비아니 형제는 이탈리아의 영화계가 창조적인 인재들을 쏟아내던 호시절에, 핑크의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앙팡 테리블’들이었다. 이후에 그들은 모던한 영화 양식 안에다가 정치적, 역사적 관심들을 실은 수작들을 만들어내며 견고한 영화 세계를 구축한 시네아스트들이 되었다.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협업하며 나아가다

그들의 어머니조차도 그 방식의 수행을 궁금하게 여길 정도로 유별나게 긴밀한 협업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는 비토리오(1929∼)와 파올로(1931∼) 타비아니는 네오 리얼리즘의 자식으로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특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네오 리얼리즘 걸작 <전화의 저편>(1946)이 그들에게 대단한 감화를 준 영화라는 것은 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전후에 고등학생들이었던 타비아니 형제는 어느 날 <전화의 저편>을 틀어주던 영화관에 들어가게 된다. 극장 안에는 상영 영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있었고 형제는 자신들로 하여금 ‘발견’에로 이끈 영화를 반대하는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 이후로 형제는 앞으로 자신들의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영화에의 투신이 그들이 결심한 바였던 것이다.

타비아니 형제가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것은, 그 운동의 대변인 격인 체자레 자바티니와 공동 작업한 단편다큐멘터리(<산 미니아토 1944년 7월>, 1954) 등을 만들었던 초기 경력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은 네오 리얼리즘의 그늘 아래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네오 리얼리즘이 프티 부르주아의 표현 양식이 되면서 점점 퇴보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네오 리얼리즘과 결별을 고하면서 자신의 그 ‘사랑스런 아버지’를 매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타비아니 형제는 첫 장편 <불타는 남자>를 만들 때 이 영화가 네오 리얼리즘에 대한 애정이 배어있는 것이라고 간주했지만, 실제로 그것에는 네오 리얼리즘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이 아니라 모호한 애증의 감정이 반영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네오 리얼리즘식의 명백한 선악 나누기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제는 더이상 불가능해졌다는 타비아니의 의식이 스며들어 있었다. <불타는 남자>의 주인공인 살바토레는 노동조합의 지도자로서 고향 땅의 농민들과 농부들을 착취하려는 마피아와 당당하게 맞서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종의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살바토레를 권력에의 의지를 가진 다분히 자기 중심적인 인물로 그림으로써 타비아니 형제는 그에게 모호한 음영을 짙게 드리워놓는다.

네오 리얼리즘과의 결별 선언 <파드레 파드로네>

네오 리얼리즘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놓여 있으면서 그로부터 탈출하려고 하는 타비아니 형제의 의지는 그들의 대표작인 <파드레 파드로네>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타비아니 형제는 객관적인 리얼리즘의 세계에다가 주관성의 시각을 융합하려 한다. 영화의 실제 원작자가 등장해 영화 속에서 자기 아버지 역을 맡은 인물에게 회초리를 깎아주는 첫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객관적 현실의 시선에다가 그것과는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異種)의 시선을 도입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익스트림 롱숏과 클로즈업, 정적과 대화(혹은 소음) 같은 의미심장한 대립항들을 설정하면서 심심찮게 비(非)/반(反) 네오 리얼리즘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곤 한다. 여기에다가, 이미지와 스토리 세계 바깥의 사운드가 서로 공명하고 대화하고 논평하는, 사운드와 이미지 사이의 변증법도 또 하나의 중요한 형식의 목록을 추가한다. 이와 관련해 적절한 타비아니 형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이런 것이 있다. “영화는 분명 사실(facts)의 장(場)의 일부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런 사실들을 의문에 붙이기도 한다.” 이처럼 객관성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성의 형식도 도입함으로써 타비아니 형제는 이 세계를 단지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적극 개입하고자 한다. 그런 창조적인 노력이 현대영화의 풍요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알롱상팡>처럼 19세기까지 거슬러가든 아니면 <로렌조의 밤>처럼 2차대전이 벌어지던 좀더 가까운 과거로 눈을 돌리든,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들은 역사에 시선을 돌리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 영화에서 역사란 객관적으로 ‘기록’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해석’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를 다루면서 그것에 주관적인 시선을 가져가는 데 대해 주저함 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영화는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신화, 판타지, 전설, 소소한 노변 담화, 지방의 속담 등을 거침없이 융합해낸다. 그리고는 그렇게 스크린 위에서 들려지는 역사 혹은 기억이 현실로 되돌아와 그것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주기를 바란다. “오늘날의 우리가 누구인가를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부단히 되돌아갔다가 또 되돌아옴으로써 오늘날의 세계가 절대적인 리얼리티라고 간주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현재 안에서만 산다는 것은 혼돈의 감각을 산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드러났듯이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란 이름 붙이자면 모던한 정치영화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영화에서는 그런 명칭으로부터 거의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딱딱함의 감각은 잘 지각되지 않는다. 이건 무엇보다도 그들이, 르네상스 회화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고 음악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 영화란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로부터 구축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비아니 영화의 공간 그 자체인 토스카나는 진지한 역사학자이자 애정어린 시선을 가진 민속학자이며 특별한 세공력과 감식안, 그리고 창의성까지 갖춘 장인이 설계한 곳이었다. 그러니 그런 곳에 나름의 묘한 신비와 매혹이 간직되어 있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 할 수 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타비아니 형제 특벌전>

일시 9월10일(금)~23일(목) 장소 하이퍼텍 나다 문의 및 예매 02-766-3390, www.ticketlink.co.kr, www.interpark.com, www.maxmovie.com ※현재 동숭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예매는 하실 수 없습니다.

▶ 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1]

▶ 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