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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감독님의 미국상륙작전
2001-06-19

LA

난니 모레티 회고전 열려, 관객과의 대화시간도 가져

이탈리아의 악동 난니 모레티가 미국에 상륙했다. 그간 난니 모레티는 유럽에서의 영화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작가로 그다지 대접받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는 영화 스타일이 심지어 미국의 평론가들에게조차 그리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미국에서는 이미 우디 앨런이 이런 유의 영화가 발붙일 수 있는 아주 좁은 자리를 차지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미국 상륙은 지난 94년 <나의 즐거운 일기>(Caro Diario)가 아주 짧고 제한적인 배급 속에 스쳐간 이후로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위세를 싣고 서부 인디의 본산 아메리칸 시네마테크 이집션 극장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시작할 만큼 가히 공격적이다. 회고전의 제목도 다분히 공격적인 ‘나는 자족한다’(I’m self-sufficent). 그 첫 번째 프로그램인 <아들의 방> 상영 뒤 가진 미국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그의 이런 풍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관객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작들이 유럽 내지 이탈리아의 상황을 다루었다면 이번 영화의 주제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미국 관객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 돈으로 약 400만달러의 예산이 들었다. 미국 기준으론 작지만 내 영화의 예산은 대개 이 정도”, “다른 사람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들어야 하는 정신과 의사라는 캐릭터를 먼저 착안했고, 그가 자신의 끔찍한 고통을 갖게 됐을 때는 어떻게 될까,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삶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에 대한 나 자신의 공포가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이런 극단적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의 매 순간 어떻게 고통과 대면하느냐가 중심 이야기다” 등. 미국 인디펜던트 분위기에 젖은 대부분의 관객이 물었던 카메라 앵글이나, 음악의 사용, 작업방식의 실용적 질문들은 영화의 내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난니 모레티의 응답과 자꾸만 겉돌았고, 모레티는 점점 질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식의 답변을 했다. 흡사 이날의 질문과 응답은 저예산영화로 빠르게 스튜디오 관계자의 관심을 얻는 법에 골몰하고 있는 미국 인디들의 얕은 정신이 유럽 예술영화를 만났을 때 얼마나 분명하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행사 같았다. 이날 질문의 의도와 답변의 의도가 가장 부합했던 문답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극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것이 영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그것은 내 영화를 관객에게 좀더 쉽게 다가가게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LA=이윤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