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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과 믿음, <우리형>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갈라 가진 형제의 유머있는 비극 멜로.

“이 씹새끼들아!” 원빈의 첫마디가 거칠게 열린다. 주먹질을 막 마치던 참이다.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릴 것 같던 그의 해맑던 눈이 꼴통의 눈깔로 변신했다. 잘생기고 깡다구로 똘똘 뭉친 고교짱 종현으로 말이다. 이 깡다구에게 연년생 형이 있었으니, 공부 빼면 시체인 성현이다. 입술을 갈라놓는 특수분장을 했지만 신하균은 꺼림칙한 이미지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성현은 성격은 천사표에 반성문을 써도 문학적이라고 칭찬받는 우등생이다. 깡다구가 “형제는 용감했다”고 스스로 빈정댈지언정 빈말은 아니다. 형은 전교 석차로, 동생은 싸움 석차로 그 학교를 평정해버렸으니.

문제는 동생이 깡다구가 되고, 형이 천사표 우등생이 된 까닭이다. 갖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이자 믿음이다. 형은 입천장이 벌어져서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의 한 종류, 언청이다. 가족사진을 찍어도 끝내 얼굴을 돌려 입술의 흉을 감추고 마는 슬픈 운명이, 노골적인 편애로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해대는 어머니가 그를 천사표 우등생으로 만들었다. 동생은 형만 챙기고 자신에게 구박만 날리는 어머니에게 기인했을 결핍감으로 반항기를 키웠다. 어머니를 가졌으므로 형이 모두를 가졌다고 믿는 이 결핍이 위태로운 불구로 이어지진 않는다. 스스로 무덤을 파버린 ‘초록 물고기’의 운명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건, 형을 형이라 부르지 않고 하대할지언정 연민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뭉칫돈을 날린 어머니 때문에 깡패의 수하가 되지만 양아치 짓거리를 견디지 못하고 곧 걷어치우고 마는 곧은 성격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보디가드, 사랑의 보디가드”라며 결투까지 벌여 차지한 사랑마저 형의 감추어둔 맘을 알고 떠나보내는 넓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니 이 외강내유형 반항아를 미워하기란 참으로 곤란하다. 대신 형제멜로를 완성시키는 비극은 태생부터 슬펐던 형의 몫이고 평생을 한스럽게 살았던 어머니의 차지다. 이렇게 <우리형>은 주먹활극, 청춘로맨스, 형제멜로로 차례차례 돌진해가지만 결국은 회귀하고 그래야 옳다는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영화다. 그렇지만 구태의연하다고 돌던지기에는 원빈의 멋진 변신처럼 <우리형>은 잘난 영화다.

마지막 한방, 눈물의 펀치를 날리기까지 장르의 버라이어티쇼를 펼치는 솜씨도 그려려니와 시와 유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청춘로맨스에서 각별한 맛을 선사하는 시는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 같다. 퀸카 여고생 조미령(이보영)이 단아한 태도로 낭독하는 자작시의 소재라는 게 ‘아스피린’이다. “생리통이 심해 씹었다네. 아스피린/ 그 쌉쌀한 맛 속에 숨어 있는/여자의 숙명….” 종현은 형이 써놓은 시를 훔쳐와 미령에게 바치는데, 네잎클로버와 세잎클로버의 간단한 차이와 은유로 그녀의 맘을 사로잡는다. “세잎클로바면 어떻습니까? 만약 당신이 네잎클로바였다면 이미 사람들이 당신의 허리를 잘라갔을 것을.” 종현은 훔친 시로 미령에게 시에 대한 훈수까지 두는데, 아스피린과 클로버로 시의 문학적 권위와 묘미를 간단히 격파하는 장면들은 <우리형>의 절경이다.

희한하게도 <우리형>에선 시공간의 정체가 불투명하다. 사투리는 부산이 틀림없지만 시장과 골목이 반드시 부산은 아니다. 그곳에선 <친구>처럼 바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시점은 더하다. 현재이면서 현재가 아니다. 교복의 스타일과 옷감은 2000년대적이지만 촛불 켜고 시를 낭독하는 문학의 밤 스타일은 80년대적이다. 일수놀이로 남들에게 험한 짓을 해가며 오로지 자식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70년대적이다. 의식했든 안 했든 과거의 그 무엇을 자꾸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이 영화가 가족을 말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업보를 주고받는 끈끈한 관계, 그 기원이 되는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희망 말이다. 개구쟁이 시절이든 여드름투성이 사춘기 시절이든 그 아득한 과거로.

:: 안권태 감독 인터뷰

“공감대가 관건이다”

<우리형>으로 심상치 않게 데뷔하는 안권태(33) 감독은 부산 토박이다. 그의 영화 이력은 간단하다. 경성대를 졸업하고 단편 <자전거>를 만든 뒤 충무로에 들어와 <친구> 조감독을 했다. CF를 찍긴 했으나 ‘여력’이 많은 터라 매년 꼬박꼬박 시나리오 1편씩을 써왔다. 그중에서 고르면 되는 차기작도 어쩐지 <우리형>과 닮아 있다. 성장통을 앓는, 19살에서 20살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의 진지한 사랑 이야기와 휴먼코미디 중에 고를 생각이라니.

‘우리형’이란 블로그의 사연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들었다. 실화 같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던데 영화가 굉장히 많은 부분 닮았다.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회사에서 샀다. 실제로 장애가 있는 분이어서 사실을 밝히길 꺼린다. 그 이야기의 전부가 실화는 아니고, 죽는 대목은 만들어낸 거다.

흐름은 하나로 모아지지만 여러 장르의 재미를 고루 배치했다.

대학 시절부터 오랫동안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를 했고, 잡식성으로 하루 네댓편의 영화를 봤다. 그 영향이 있을 거다. 특정 장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원래 이야기 자체나 설정이 너무 진부하다. 관객이 보면서 결말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찾아낼까 고민했는데 웃음 같은 게 작위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일상 속에서 찾아낸 웃음을 많이 활용했다. 가족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이 영화보다 더 진지하게 들어갈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자 했다.

어떤 선을 뜻하는지.

가족애라는 게 원래 있어서 가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 가정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는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혼자라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현실이 훨씬 영화적이지 않나. 그런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 관객이 좋아하지 않겠다 싶었다. 영화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다.

극중의 시 <아스피린>이나 <네잎클로바>는 감독이 직접 쓴 건가, 시에 대한 태도나 시를 다루는 솜씨가 영화에 대한 것과 닮았다는 느낌인데.

<아스피린>은 직접 쓴 거고, <네잎클로바>는 환자분들의 애환을 쓴 글 중에 작자 미상으로 떠도는 시를 약간 손본 거다. 시가 쉽게 이해돼야 하는 것처럼 영화도 그랬으면 한다. 결혼해서 아이는 아직 없는데 내 아이가 봐도 이해할 수 있고, 칠순의 할아버지가 봐도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친구> 조감독의 경험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머가 짙게 들어가긴 했어도 어떤 상관관계가 느껴진다

내 자신이 부산 사람이고, 내 정서가 곽 감독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 4학년 워크숍 때 직접 지도를 받기도 했고. <친구>의 배경이 내 어릴 때 뛰놀았던 곳이기도 하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친구> 같은 정서가 묻어 있다.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고 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이야기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

원빈이 촬영 중에 시나리오가 바뀌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아주 자유롭게 느껴진다.

배우가 사적인 욕심이 없는 한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촬영 초반, 고교생 장면을 찍을 때 마찰이 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빈이 나 이상으로 시나리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후에는 배우가 가급적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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