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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가 인디영화를 만났을 때, CJ아시아인디영화제
김도훈 2004-10-19

CJ아시아인디영화제, CJ CGV에서 10월20일부터 5일간 열려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CJ아시아인디영화제(이하 CJ AIFF)가 ‘서로와 다른, 서로의 힘찬 첫발’이라는 슬로건으로 10월20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열린다. 국내외 유수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아시아 각국의 인디영화들의 새로운 경향을 감지할 수 있을 이번 영화제는 한국 인디영화 23편과 함께 중국, 일본, 이란, 인도, 스리랑카 등 12개 아시아 국가에서 온 20여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성찬이다. 개막작과 폐막작으로는 각각 배창호 감독의 <길>과 99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이란 감독 바흐만 고바디의 신작 <거북이도 난다>가 선정됐다. CGV강변과 새로 문을 연 CGV용산에서 열릴 CJ AIFF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부산행 열차에 탑승할 수 없었던 영화광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모든 영화들은 CJ AIFF 홈페이지(www.cjaiff.com)와 CJ CGV 홈페이지(www.cgv.co.kr)에서 예매가 가능하고 현장예매는 각 상영관에서 할 수 있다. 모두 3개의 섹션(‘한국영화 장편’, ‘한국영화 단편모음’, ‘해외초청작’)으로 나누어져 있는 CJ AIFF의 부문별 추천작들은 다음과 같다. 다만, 45편의 다양한 영화들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모든 초청작들의 면모는 CJ AIFF 홈페이지에서 개별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영화 장편>

이미 국내에 개봉됐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 인디 장편영화 7편이 자리잡고 있는 섹션. <송환> <영매: 산자와 죽은자의 화해>처럼 화제 속에 개봉되어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작품으로부터, 황규덕 감독의 <철수와 영희>, 윤영호의 <바이칼> 같은 미개봉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2편의 디지털 장편영화 <양아치 어조>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디지털 인디영화 속에서 한국 주류영화의 미래를 타진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다.

<한국영화 단편모음>

이 섹션은 다시 3개의 작은 섹션으로 분류되어 있다. ‘인디 상상력과 발칙함’ 섹션에서는 올해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편대단편> <올드보이의 추억>을 비롯해 밀도있는 장르적 완성도를 지닌 단편영화 5편을 만날 수 있다. ‘스타 in 인디’에서는 송강호, 문소리가 주연하고 김지운이 감독한 <사랑의 힘> 등 스타들이 출연한 6편의 단편영화들을 통해 TV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나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현역배우들의 짧고 인상적인 모습들을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다. ‘해외 단편영화제 초청작’은 세계 유수의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출품되었던 작품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섹션이다. 아래 소개하는 두편의 단편영화는 다른 초청작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인상적인 완성도를 지닌 소품들이다.

<오디션> 감독 이경미 l 출연 박해일 l 2003년 l 16분배우 지망생인 지석은 오디션장에서 기다리던 중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뛰어간다. 병원에서 할머니가 힘겹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을 보던 그에게 전화가 오고, 모레로 연기된 오디션에서 그가 연기해야 할 역할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6분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박해일(<인어공주>)은 스타로서의 에고보다는 단편영화에 적절한 섬세한 연기를 효과있게 보여준다.

<즐거운 우리집> 감독 엄혜정 l 출연 명계남 l 2004년 l 17분54초막내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는 가족. 사망자 명단에 막내딸 지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절망적으로 오열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벨을 누른 사람이 죽은 막내딸 지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경제불황 시대에 절망을 품고 살아가는 한국 가족의 현재를 미스터리-공포의 형식 속에 담아낸 작품. 짧은 시간 속에 튼튼한 반전의 플롯을 숨겨두고 있다.

<해외 초청작>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품에서부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된 작품들까지, 다양한 아시아의 인디·대중영화 22편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CJ AIFF로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 작품들을 포함해서 이후 국내 개봉으로 이어질 기회가 희미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다. 아래 소개되는 작품들은 올해 부산영화제나 CJ AIFF로 처음 월드 프리미어를 가지게 되는 영화들이다.

<카미카제 걸스>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 l 일본 l 2004년 l 103분프랑스 로코코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는 모모코(후카다 교코)는 야쿠자들의 본거지인 도쿄 근처의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서양인형 같은 ‘로리타 패션’을 하고 다니며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일탈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파는 가짜 베르사체 옷을 사기 위해 여자 오토바이 폭주족 이치코가 찾아온다.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현실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모험을 겪으며 서로의 세계를 열어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 개봉 때 화제를 모았던 <카미카제 걸스>는 만화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소녀들의 연대감을 따스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주류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발한 아이디어와 MTV적인 미술, 특수효과가 인상적이다. 첫 장면의 어이없음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서적 울림으로 치환되어나가는 독특한 감성의 영화.

<커커시리> 감독 루추안 l 중국 l 2004년 l 88분티베트의 영양 사냥꾼들과 이들의 무차별적이고 조직적인 영양 사냥을 저지하는 순찰대원들,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방문한 중국인 기자가 겪는 모험을 그린 영화. 93년부터 96년까지 티베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른 무게의 삶을 각자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존투쟁이 티베트의 미개척지인 커커시리의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담겨 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역사적 함의가 담겨 있는 영화지만 스펙터클한 화면 속의 거친 삶의 냄새는 하나의 유사 다큐멘터리로서도 손색이 없다. CJ AIFF로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 작품이다.

<브라이달 샤워> 감독 제프리 제투리안 l 필리핀 l 2004년 l 128분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필리핀 상업영화의 세계를 살짝 맛볼 수 있는 작품. 필리핀 버전 <섹스 & 시티>라 할 만한 <브라이달 샤워>는 전통적인 가치와 (한국의 관객도) 놀랄 만큼 진보적인 신세대들의 성관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명의 광고회사 여직원들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어와 스페인어, 필리핀어가 뒤섞인 대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서구문화와 전통문화의 균열에서 생겨나는 독특한 영화의 뉘앙스들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형식과 필리핀 대중영화의 재미있는 교배의 현장이다.

<베컴이 오웬을 만났을 때> 감독 애덤 윙 l 홍콩 l 2004년 l 80분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귀여운 퀴어영화. 영국의 축구선수 이름과 같은 마이클 오언과 데이비드 베컴은 축구에 광적으로 미쳐 있는 소년들. 단짝친구 베컴과의 우정어린 날들을 보내던 오언은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이 다른 방식으로 베컴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MTV적으로 감각적인 화면 속에서 눈이 시릴 만큼 화창한 어조로 어린 소년들의 성적인 열망을 이야기하는 귀여운 소품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까지 활용되는 오언의 몽정장면들처럼, 인디영화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들이 마음껏 터져나온다.

<태권도> 감독 마이리시 & 사이푸 l 중국 l 2003년 l 94분태권도 선수인 린과 양은 국가대표를 목표로 뼈를 깎는 훈련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무술을 배우며 자란 두 사람은 국제대회에 출전하지만 양은 그만 예선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만다. 태권도 선수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린 양을 위해 린 역시 꿈이었던 태권도를 포기하는데…. 베이징영화학교를 수료한 마이리시 & 사이푸의 <태권도>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두 소녀의 우정과 꿈을 담아내는 전형적인 스포츠영화다. 흥미롭게도 ‘태권도’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자그마한 상업영화는 낡은 방식의 극적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현대 중국 대중영화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김도훈 groove@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