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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깊은 독립다큐를 만나자, 제4회 인디다큐페스티벌
오정연 2004-10-27

서울아트시네마, 28일부터 제4회 인디다큐페스티벌 개최

국내 유일의 독립다큐멘터리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이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한해 동안 제작된 국내외 독립다큐멘터리의 다양한 흐름을 조망해왔던 인디다큐페스티벌은 그간, <영매> <송환> 등 굵직한 다큐멘터리들이 일반 관객과 가장 먼저 조우하는 소중한 장이었다. 오는 10월28일부터 11월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게 될 인디다큐페스티벌 2004는 대중적인 화법과 독특한 시선으로 무장한 총 32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개막작 <진실의 문>부터 폐막작 <왕과 엑스트라>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이 엿보이는 이 작품들을 준비한 영화제 관계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와 시간,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한정된 작품만을 소개해야 함이 안타깝다고 전한다. 점점 더 많은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동시대를 고민하는 다양한 시선을 놓치지 않기 위한 관객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60편의 출품작 중에서 엄선된 17편의 국내신작은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 반전운동 등 거대한 문제부터 여성의 생활사, 군대문화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의 경중을 떠나, 다양하고 과감한 표현방법을 통해 주저없이 개인의 주관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올해의 주목할 만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신작 8편 중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이는 지난해 전세계를 관통한 이슈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부분. 한편 요리스 이벤스를 잇는 네덜란드의 거장 요한 반 데르 코이켄의 대표작 5편이 준비된 회고전과 국내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두편의 옴니버스,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철폐 프로젝트>와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진실의 문 The Gate of Truth감독 김희철 l 한국 l 2004년 l 100분 l 개막작

온갖 불의로 얼룩진 우리의 현대사 때문일까. 그간 만들어진 독립다큐멘터리들 중 의문사와 그 유가족들을 다룬 작품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 앞에 어처구니없이 희생당한 그 죽음들은, 유가족의 오열 혹은 당국의 무책임한 반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면서 감정적인 동의를 얻곤 했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경력을 가진 김희철 감독의 작품 <진실의 문>은 또 하나의 의문투성이 군의문사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도 그러한 감상에는 추호의 미련도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6년 전 판문점 안 지하벙커에서 총상으로 사망한 김훈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하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 <진실의 문>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고, 그 구성은 흔한 방송다큐멘터리처럼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객은, 정교하게 수집된 각종 자료화면과 세심하게 진행된 관계자들의 인터뷰, 그리고 이들을 한곳에 묶은 치밀한 논리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그의 목숨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로 인해, 또 다른 수많은 죽음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평범하고 우직한 진리를 향한 뜨거운 이성이 사뭇 감동적이다.

왕과 엑스트라: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찾아서 Kings & Extras: Digging for a Palestinian Image감독 아자 엘-하산 l 팔레스타인, 독일 l 2004년 l 62분 l 폐막작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을 가지고 있나요?” 1982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침공 때 사라진 팔레스타인 미디어 본부의 필름을 찾아나선 감독이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약혼자, 누군가에게서 선물받은 반지 등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혹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기엔 현실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온갖 폭격과 폐허, 피해자의 이미지로만 묘사되어왔던 팔레스타인에도 스스로의 이미지를 기록한 역사가 있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되찾는 것이 그간 그들이 잃어왔던 고향을 위한 투쟁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감독의 느슨하고 성찰적인 일련의 추적은 결국 필름들이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한 순교자의 무덤에 이르지만, 끝내 그것을 파헤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누군가의 오래된 카메라 속에서 현상도 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필름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마주하게 된다. 흐릿하게 남은 22년 전의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생생하고 구체적인 기억과 기록으로 점철된 다큐멘터리 작업 자체가 지닌 불변의 힘이 전해진다.

짬 ZZAM감독 김형남 l 한국 l 2004년 l 44분 l 국내신작

예비역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예비역 이야기. 짧은 설명 한 문장만으로도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휴학계를 내고, 입영열차를 타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머리를 깎는, 너무나도 익숙한 입영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제대를 했거나, 혹은 이들을 바라보았던 여학우들과의 수다스러운 인터뷰들이 이어지고, 이들을 통해 우리는 대학 내 군대문화와 대학생들에게 군대생활이 의미하는 바, 혹은 군대를 경유하면서 변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각각의 인터뷰들 사이에는 학교 축제기간 중 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난 예비역과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예비역 사이의 갈등, 언제나 반복되는 주제의 대화가 난무하는 예비역들의 송년모임 등 소소하지만 대학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들이 배치된다. 재치있는 음악과 솔직한 인터뷰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도저히 객관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성찰하고 이야기를 청하는 감독의 의미심장한 자세. 군대문화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그간 반전·분단 등 심각하지만 다소 멀게 느껴지는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닿을 수 없었던 기원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 도처에 자리한 남성성이다. 소소하지만 절실하고, 가깝기에 구체적일 수 있는 맛깔스러운 다큐멘터리.

Play It Again감독 민환기 l 한국 l 2004년 l 75분 l 국내신작

한 지방 극단이 장 주네의 희곡 <갈보집>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당연히 관객은 연출자와 배우들의 치열한 갈등과 굵은 땀방울, 혹은 연극 한편을 무사히 마친 이들의 환희와 허전한 무대 위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원섭섭함 등을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중앙대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Play It Again>에는 그 흔한 박수 갈채도 등장하지 않는다. 갈등을 마무리짓는 사뭇 감동적인 화해 역시 안중에 없다. 배우들은 무능한 연출자를 탓하고 연출자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배우를 원망한다. 연극이 시작도 하기 전에 돈은 바닥이 나고, 후배는 “인간성은 좋지만 연기는 잘 못하는” 선배를 은근슬쩍 나무란다. 그러나 경이로운 것은 이처럼 냉정하기 그지없는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갈등을 드러낼 수 있는 위치를 언제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감독의 카메라인데, 이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다. 영화는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단원들에게 혹은 관객에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는 당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를 것’(Play It Again)을 주문한다. 이것은 그닥 극적이지 않은 지리멸렬한 일상을 꾸려가는 스스로를 향한 관객의 중얼거림일 수도 있다.

소리없는 결혼 Wedding of Silence감독 파벨 메드베데프 l 러시아 l 2003년 l 29분 l 해외신작

침묵 속에서 홀로 눈을 뜬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와주지 않고, 아이는 더이상의 울음이 소용없음을 깨닫는다. 왜일까. 밖에선 파티가 한창이지만, 그것은 끝없는 고요 속에 진행되는 향연이다. 우리는 평소에 절대로 경험할 수 없고, 그러하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청각장애인들의 세계를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파티는 물론이고, 창고에서의 도박과 공장에서의 노동, 교회에서의 종교의식까지 이들의 모든 일상은 심연 같은 침묵만 제외한다면 지극히 평범하다. 어떤 면에서 그 모든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의 소통은 신비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리없는 결혼>은 장애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청각을 제외한 오감을 통해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매혹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한편의 영상 에세이로, 초기 사진의 아련함을 연상시키는 흑백 화면과 이들을 배치하는 이미지의 변증법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재현하는 것 역시 다큐멘터리의 가능성 중 하나임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드는 작품.

아이 러브 달러 I Love $감독 요한 반 데르 코이켄 l 네덜란드 l 1986년 l 145분 l 회고전

오후의 공원에서 야바위꾼의 손님끌기가 한창이다. 그리고 뒤를 잇는 장면은 정신없이 이루어지는 환딜러들의 거래. 이제 영화는 뉴욕과 제네바, 홍콩, 암스테르담 등 세계 경제의 중심지에 위치한 쾌적한 사무실과 음침한 뒷골목을 넘나든다. 각각의 공간에 대한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묘사 뒤에는 각각의 인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돈, 혹은 경제행위의 묵직한 의미가 드러난다. 사무실의 그들은 빨라진 자본 회전속도는 투전판과 다름없으며, 그 와중에 채무국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뒷골목의 소녀는 어머니는 병져눕고, 돈을 벌어야 하지만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싶다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라고 무표정하게 묻는다. 그 누구도 신분상승이라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임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 전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관계자들을 만난 감독은 집요하게 묻는다. “돈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지속적인 성장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약간의 망설임 끝에 돈을 향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이들의 대답. 소름끼치는 한편 실소를 머금게 되는 이 인터뷰는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마이클 무어식 막무가내 인터뷰의 사려 깊은 기원을 연상시킨다.

오정연 miaw@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