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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미치고 싶을 때>
박은영 2004-11-09

함부르크와 이스탄불, 터키 전통 음악과 하드 록이 겹쳐지는, 그리스 비극을 닮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잃은 이들, 모두가 나처럼 이성을 잃을까.” 적어도 그들은 그렇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어도 좋다’는 듯 세상에 ‘정면충돌’하고 만다(영화의 영어 제목은 ‘헤드-온’ 즉 ‘정면 충돌’이다). 돌아가거나 쉬어갈 줄 모르는 그들은 날선 욕구와 감정을 세상에 정면으로 ‘들이대’고 그 때문에 무너져내린다. <베티 블루>의 주인공처럼 자기파괴적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미치고 싶을 때>는 그렇게 슬프고 격렬하고 쓸쓸한 영화다.

아내와 사별하고 폐인처럼 광인처럼 살고 있는 차히트(비롤 위넬)는 음주 운전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 대합실에서 야릇한 눈길을 보내는 시벨(시벨 케킬리)을 만나게 된다. 터키계 이민자인 시벨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벗어날 핑계로, 같은 터키계인 차히트에게 다짜고짜 위장 결혼을 제안한다. 눈속임으로 결혼한 그들은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시벨은 매일 밤 클럽에서 ‘원나이트 스탠드’ 상대를 찾고, 냉소적인 차히트는 가끔 애인을 만나고 술과 마약에 절어 산다.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 순간, 차히트는 질투심에 불타 시벨의 남자친구를 죽이고 만다. “진짜 죽을 여자야. 죽으면 내 책임이라고.” 시벨을 ‘살리기’ 위해 위장 결혼에 응한 차히트였지만, 거꾸로 그녀가 ‘산송장’ 같던 자신을 구원하고 파괴할 거라고,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다.

감독 파티 아킨은 <미치고 싶을 때>를 “단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이들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이스탄불로 귀향한 뒤에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시벨의 체념 혹은 발악, ‘사랑에 빠졌다’고 깨닫는 순간 양손에 유리 파편을 박고 환호하는 차히트의 기행에서 보여지듯 이들의 사랑은 너무 뜨거워 델 것 같고 너무 날카로워 벨 것 같다. 그들은 너무 오래 방황했고, 힘들게 만난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신은 우릴 시험에 들게 했다”는 시벨의 말처럼 그들 사랑의 운명은 너무 얄궂었다. 그렇게 서로를 다치게 하고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사랑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 열정적이지만 냉소적이고, 낭만적이지만 냉혹한 이 로맨스는 가슴으로 끌어안거나 밀쳐내거나, 그렇게 극단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러브스토리로서는 드물게 반전이 거듭되고, 뒤로 갈수록 비척거리는 것은, 결말을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한 흔적으로 읽힌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미치고 싶을 때>를 두고, 독일 영화계에선 간만에 ‘독일영화’의 쾌거라고 반긴 바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미치고 싶을 때>는 독일 내 터키 이민자들의 삶에 주목한, 조금 ‘다른’ 독일영화다. <슈팅 라이크 베컴>이나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소수 이민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미치고 싶을 때>는 그러나, 근거없는 희망과 화합의 비약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집안 남자들의 과잉보호에서 벗어나, 피어싱과 춤과 마약과 원 나이트 스탠드로 자유를 희구하는 시벨의 모습은, 시대와도 문화와도 불화한 채 폐쇄적인 삶을 사는 마이너리티 집단, 그 분열의 초상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독일인으로는 살 수 없다. 차히트의 정신상담의는 “딴 데 가서 죽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나서”라는 지독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터키로 돌아가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온전하게 살지 못한다. 이민자들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미치고 싶을 때>처럼 뿌리없이 떠도는 그들의 고독과 좌절, 그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영화는 흔치 않았다.

<미치고 싶을 때>는 문화의 충돌과 불화를 그린 만큼 음악과 영상에도 비슷한 컨셉을 적용했다. 고전 비극에 감화해 ‘음악극’을 도입하게 됐다는 감독은 이스탄불 항구에 터키 전통 악단을 막간 내레이터로 끌어들여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와 스토리가 달라질 것을 예고한다. 이야기로 들어와서는 남녀의 광기를 오롯이 드러내는 하드 록과 차가운 침묵을 섞어가며 관객의 심박동을 뒤흔든다. 함부르크의 어두운 뒷골목과 이스탄불의 활기찬 도심을 대비한 라이너 클라우스만의 촬영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보수적인 부모에 반항하듯 포르노를 찍고 배우가 된 시벨 케킬리, 난폭하고 변덕스러워 뭇 감독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비롤 위넬 등 자신을 꼭 빼닮은 역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넣어 황폐해진 배우들 때문에 감독은 한때 고려했던 해피엔딩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 감독 파티 아킨

독일영화에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담겠다

<미치고 싶을 때>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은, 서른한살의 젊은 감독으로, 그 자신도 터키계 독일인이다. 함부르크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단편 <젠진-네가 그것이다>로 함부르크의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편 데뷔작은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일상을 그린 <짧고 고통 없이>(1998)로, 독일 평단과 관객 사이에 호평을 이끈 작품. 이때부터 그의 영화적 주제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나 마이너리티의 삶에 집중됐다. 2002년작 <솔리노>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독일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이탈리아 이민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미치고 싶을 때> 역시 그 자신이 속해 있는 터키계 독일인들의 삶을 근접 포착한 영화다. 감독은 실제로 그 자신이 동료였던 터키 여자에게 위장 결혼을 제안받았던 기억을 영화의 소재로 확장시켰다. 독일 내의 터키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찍은 영화. 그러나 파티 아킨은 어떤 의미로도 자신의 영화세계를 규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의 삶을 즐겨 다루는 데 대해서도 “나는 내 영화들을 그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언론에선 내게 다음에도 이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묻지만, 그런 단어는 쇼비니즘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일갈할 뿐이다. 대신 이제껏 독일영화가 반영하지 않았던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끌어들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믿음을 드러낸 바 있다. <짧고 고통 없이> <7월에>에 이어 <미치고 싶을 때>에도 비롤 위넬을 캐스팅하는 등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 더 나아가 영감의 원천으로 여기고 있으며, <미치고 싶을 때>에 터키 전통 음악을 끌어들인 것을 계기로 터키 음악과 서구 음악의 만남과 변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등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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