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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부활한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이영진 2004-11-16

여자로 부활한 김봉두, 이번엔 도시 아이들과 맞짱뜨다

촌지 챙기기 바쁜 불량교사 김봉두를 교화의 길로 이끈 건 코는 흘리되 때는 묻지 않은 시골 아이들이었다. 김봉두는 시골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선생’이 되고, 그 다음에야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김봉두의 갱생 스토리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판타지라고 해도, 본디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 영화의 순진함을 믿고 싶어하는 관객은 많았다. 장규성 감독의 <여선생 vs 여제자>는 전작 <선생 김봉두>의 속편이라고 부를 만한 영화다. 그런데 이번엔 눈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서울찬가를 부르는 산골 아이들은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가 찾아간 곳은 남도의 한 조그마한 도시의 초등학교. 교실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직행하고, 담임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뺨을 때리는 선생을 동영상으로 찍어 고발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선생’이 태어날 수 있을까.

<여선생 vs 여제자>가 끌어들인 실험 대상은 초등학교 교사인 여미옥(염정아)이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교편을 잡은 지 꽤 된 노처녀 선생. 노모와 함께 사는 여미옥은 따분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어서 빨리 청산하고 임용고시를 새로 쳐서 서울 학교로 전근갈 생각뿐이다. 그러니 새로운 제자들과 만나는 개학 첫날에도 지각을 할 수밖에. 그러고선 애들은 처음부터 휘어잡아야 한다며 벌을 주는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하의 젊고 잘생긴 미술 선생 권상춘(이지훈)이 새로 부임하고, 노처녀 여미옥의 얼굴에도 볕이 든다. 여미옥은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료들을 따돌리는 데까지 성공하나 예상치 못한 강적이 등장한다. 전학생 고미남(이세영). 아이들 사이에선 고미남이 미술 선생과 데이트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여미옥은 뒷짐지고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영화는 스무살 터울 두 여자의 우스꽝스러운 대결로 전반부를 꽉꽉 채운다. 캐릭터를 소개하는 첫 장면. 여미옥은 카레이서가 부러워할 터프한 운전실력을 선보이고, 고미남은 같은 반 불량소녀 네댓을 손쉽게 물리친다. 만화적인 과장으로 두 여자가 만만치 않은 성깔의 소유자임을 설명한 뒤, 두 여자의 못말리는 질투 게임을 하나둘 늘어놓는다. 권상춘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가 하숙하고 있다는 반장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여미옥은 급기야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바라는 선생으로 오해받고, 고미남은 미술 선생과 연애한다면서 놀리는 아이들을 패주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다. 연적 사이가 된 두 사람의 설전은 장학사가 방문한 날에도 계속되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 중 누군가는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선생 vs 여제자>의 전반부 전략은 간단하다. 여미옥은 대결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애가 된다. 반대로 고미남은 점점 어른이 된다. 둘의 싸움은 점점 대등하게 되고, 그래서 볼 만하다. 갖은 수단을 부린 끝에 여미옥은 고미남을 불러앉혀놓고서 “우리 여자 대 여자로 허심탄회하게 얘기 한번 해보자”고 설득한다. 고미남은 그런 여미옥의 철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어이없어한다. 여미옥이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시라며 난데없이 학생들의 가슴 검사(?)를 하는 장면 등은 지나친 희화화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겠지만, 천연덕스런 배우들의 연기가 그런 약점을 가리고 메운다. 처음으로 코미디에 도전한 염정아는 <선생 김봉두>의 차승원만큼 능청스럽고, 이세영은 투톱 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하다. 여미옥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나문희와 교장 선생님으로 나오는 변희봉도 <여선생 vs 여제자>의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에 힘을 보탠다.

여선생과 여제자의 으르렁은 갈 데까지 간다. 아이들에게 크게 한방 먹고 나서야 여미옥은 선생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고, 고미남은 숨겨온 진심을 털어놓을 때 선생은 이미 학교를 그만뒀다. 전반부에 웃음을 지핀 다음 영화는 중반을 넘어 공통된 유년의 상처와 기억과 마주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비추면서 눈물을 훔칠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여러 번 재촉한다. 동시에 사제지간의 오해와 갈등의 매듭을 잘라내기 위해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한번 떠올려보라고 제시한다. “선생이 뭐 별거냐. 먼저 나서 뒤에 사람 본보기 되게 잘살면 그게 다 선생인 거지.” 선생을 그만두겠다는 여미옥에게 노인대학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어머니는 충고한다. 막바지에 이르러 아이들이 <스승의 노래>를 부르다 말고 <어머니 마음>로 건너뛰는 에피소드는 그저 웃자는 의도는 아니다. 가진 것 탓하지 않고 베푸는 부모의 심성이야말로 선생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거다.

그 가르침이 이따금 누선을 자극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눈물을 흘려도 가슴이 후련하진 않다. 왜 그럴까. 여미옥은 뉘우친다. 그런 선생을 아이들은 쉽게 용서한다. 여미옥이 저지른 악행은 영화가 마련한 한 차례의 고백성사를 통해 면죄받고 지워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받았던 상처가 정말 가벼운 생채기처럼 말끔히 아물었을까. 성숙한 아이들이고 하니 어쩌면 이쯤에서 싸움을 접자는 휴전은 아니었을까. 손찌검이 웬말이냐며 따지러 온 학부모들이 “애들이 맞을 짓 했으면 맞아야지”라고 물러서는 데에서부터 해묵은 교권 불가침 논리가 반복되고,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선생 김봉두>를 보자. 김봉두의 악행은 애초 죄로 생각되지 않는다. 개울물 마시고 사는 아이들은 봉두의 행위를 선의로 해석하는 놀라운 우둔함으로 영화에 방어막을 친다. 그러나 이번엔 명백히 상황이 다르다. 컨셉이 분명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재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감독이 설파하는 성선설에 동의하긴 여전히 어렵다.

:: 장규성 감독 인터뷰

“현실에선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없었다”

전작 <선생 김봉두>의 속편 같은 느낌이다.

일부러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캐릭터 만드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선생 김봉두>보다는 못하다면서도 그런 의도에는 공감했다. 엔딩은 무조건 재밌게 간다, 이게 원칙이었다. <선생 김봉두>보다 상업적인 코드가 훨씬 더 강한 영화다.

현장에서 추가된 장면이 많은 듯하다.

더 좋은 게 있으면 바꿔야지. 카메오 등장은 모두 현장에서 추가된 것들이다. 나머지는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해주는 장면들이 더해졌다. 여미옥이 마지막에 차를 돌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경찰관 에피소드는 없던 것인데 새로 만들었다. 여미옥과 고미남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 다음에도 이 두 인물의 감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도 새로 찍었다. 애드리브는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

사람은 본디 착한 존재라고 믿나.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쉽게 용서한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없다. (웃음) 이름도 모르겠고, 얼굴도 기억 안 난다. 현실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 희망사항인 거지.

다음 작품은 <군수와 이장>인가? 역시 코미디인데.

우리 정치판을 군으로 축소해서 비꼬는 건데. 패턴은 많이 바뀔 것 같다. 웃음을 주겠다는 강박관념을 좀 떨구고 드라마에 힘을 실을 생각이다. 이번 영화가 전작과 비슷하다는 말 적지 않게 들었다. 스스로도 변화를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코미디라는 장르는 계속 갖고 갈 거다. 내게 영화는 분석하면서 보는 게 아니라 보면서 웃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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