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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합작 극장애니메이션 1호 하드보일드 형사물, <신암행어사>
김수경 2004-11-23

레이먼드 챈들러가 필립 말로 대신 암행어사 박문수를 기용한다면? 한·일 합작 극장애니메이션 1호 하드보일드 형사물.

<신암행어사>는 시대물이 아닌 하드보일드한 형사물이다. 주인공 문수가 주어진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식의 이야기구조는 감독 시무라 조지의 전작 <마스터 키튼>을 답습한다. 배경을 인물과 분리하고 캐릭터의 세부에 정성을 기울이는 극화 방향도 이러한 내러티브의 구조와 연결된다. 스토리의 배경인 춘향전, 박문수, 유의태 등의 역사적 장치들은 이야기 진행을 위한 의사(擬似)- 역사적 장치로 축소된다. 주인공 문수가 “기적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되뇌이는 모습은 <무사 쥬베이>에서 그저 주어진 미션에 충실히 임해가던 ‘쿨가이’ 닌자 기바카미 쥬베이와 닮았다. 두 인물에게 존재론적, 사회적, 역사적 정체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과 적으로 남겨진 세상뿐이다. 시공간적 배경은 축소되는 차원을 넘어 소거되고 역사성은 탈각된다.

문수는 망해버린 쥬신국의 홀로 남은 암행어사다. 사막을 건너던 그는 암행어사가 되기 위한 과거에 실패한 몽룡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의 유품을 지니고 문수는 몽룡의 고을에 도착하고 그를 대신해 춘향을 구출한다. 문수가 길을 떠나자 무작정 따라나서는 춘향.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우연히 소년 준과 맞닥뜨리고 그가 살던 섬으로 향한다. 섬에 도착하자 문수와 만났던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준. 문수는 섬 전체에 어떠한 음모가 있음을 감지한다.

<신암행어사>의 주요 캐릭터는 기존 국내 장편애니메이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다. 원작만화에 기반하여 인물의 측면을 잡아내는 그림은 와타나베 시니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에서 보여지는 우울한 느낌의 군상과 비견될 정도로 준수하다. 원작자 양경일의 필치는 이미 <소마신화전기> 시절부터 부드러운 인물선과 속도감 있는 동선으로 기존 판타지물이나 무협물의 강한 이미지 일변도의 구성과는 대비되는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스토리와 캐릭터 면에서도 초기작의 동화적이던 인물 성격은 좀더 장르적으로 변화했고 성숙한 이미지를 풍긴다.

다만,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CG와 원화의 이질감, 소홀한 배경 그림의 처리, 디테일 없는 대사 등은 기존 극장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안정감을 흔든다. 주인공 문수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이 소모적으로 사용되는 단선적인 플롯도 단점으로 작용한다. 심도와 디테일이 배제된 밋밋한 배경화면은 캐릭터에 모여진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그라들게 한다. 캐릭터나 CG만큼 이야기의 얼개와 배경의 디테일에도 공을 들인 세심한 국내 극장애니메이션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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