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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세계에 기억을 되돌려 세상을 구원하리, <포가튼>

가슴 시린 스릴러에서 황당한 엽기물로 돌변하다. 이것은 새롭게 등장한 21세기형 ‘모성영화’일까?

시작은 원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최근 할리우드영화들은 독창적인 주제를 도무지 감당해내지 못한다. 훌륭한 주제들은 어김없이 샛길로 빠져 결론에 이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주절대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이라고 봐주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멀쩡한 이야기에 자본의 잉여가 탄생시킨 쓸데없는 살덩어리가 붙여지고 있다. 이 천박함 속에서 영화는 ‘슬퍼하라, 울어라, 무서워하라’를 강요한다. 그러니 가볍게 웃어줄 수밖에. 영화가 당면한 새로운 비극이다. <포가튼> 역시 기대만발했던 시작의 꿈을 결말은 어김없이 배신한다. 탱탱했던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모성이라는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서사에 기억, 상실의 아우라를 첨가한 영화의 도입부는 꽤 신선하다.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허덕이는 텔리(줄리언 무어).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는 그녀는 기억을 통해 아들의 존재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물건들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그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심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실재한 적 없고 다만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 이 사실을 수긍할 수 없는 텔리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과 맞서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영화는 말한다. 살기 위해 죽은 자를, 과거를, 상실을 잊으려고 애쓰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변명이다.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설사 과장된 기억일지라도 인간은 기억하므로 존재할지니. 영화에서 끝끝내 기억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어머니’이다. 그 어떤 권력이 모든 인간의 기억을 제거한다 해도 ‘초월적인’ 어머니의 심장에는 이미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울림이 새겨져 있다. 어머니는 망각의 세계에 기억을 되돌려 세상을 구원한다. 그러나 모성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순간 영화는 슬프고 절박한 스릴러에서 황당한 코믹SF로 돌변한다. 이야기는 논리를 잃고 <오즈의 마법사>가 되고 <터미네이터>가 된다. 회색빛 푸른 톤의 빌딩 숲을 횡단하는 카메라의 시선과 핸드헬드로 인물들을 급박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과잉된 움직임도 감독의 영화적 야망만을 되새긴다. 영화의 논리적 허점들을 결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감독의 의도는 ‘모성은 논리를 넘어선다’는 나름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방식은 처절히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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