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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풍요로운 거장의 새로운 악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
김도훈 2004-12-21

익숙한 미야자키 세계의 변주곡, 그러나 지혜롭고 풍요로운 거장의 새로운 악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매너리즘의 성(城)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9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은 그가 창조해온 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류를 타고 부유하는 날틀, 만물에 영혼을 내리는 애니미즘, 강한 소녀와 지혜로운 할머니, 왈츠가 흐르는 가상의 유럽왕국.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미야자키의 새로운 경지에 열광했던 관객에게 <하울의…>의 의연한 진부함은 과거로의 회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은 실망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가냘픈 네개의 다리와 증기를 내뿜는 굴뚝, 고철덩어리로 짜깁기한 것 같은 풍채로 안개 속의 산자락을 누비는 하울의 성은 맥박의 떨림이 느껴질 만큼 생생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유럽의 모든 지형들을 모자이크해놓은 듯한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19세기’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비행의 쾌감은 온전하다. <하울의…>가 매너리즘의 혐의에 의해 업수이 여겨진다면, 그것은 풍요로운 상상력을 증거로 변호받아 마땅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모노노케 히메> 이후 점점 옅어져가던 전통적 이야기 구조가 <하울의…>에서는 거의 해체돼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도 그랬지만, <하울의…>는 관람 직후에 스토리를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유독 힘들다. 물론 모험의 발단은 소피라는 소녀가 마녀의 저주를 받아 90살 노파가 되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취직하는 순간부터다. 소피는 저주를 풀어야만 하고, 하울과 불의 악마 캘시퍼는 계약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종종 옆길로 새고 인물들의 목적은 더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반전(反戰)의 메시지는 난데없는 외삽처럼 조화롭지 못하다. 소피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외모와 성격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마치 온갖 고물 조각으로 만들어진 하울의 성처럼 영화는 덜커덩거리며 많은 매력적인 요소들을 껴안고 걸어가지만, 미야자키는 이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나태함이 아니라 늙은이다운 느긋함이다. <하울의…>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매력을 깨달은 늙은이의 우화다. 비범함이라곤 없던 소녀가 90살 노파가 되자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놀랄 만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늙어가며, 이야기의 강박관념을 버리며, 화면의 여백을 찾으며,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여전히 매혹적인 비행의 꿈을 꾸는 노인의 다음 행보가 그 언제보다 조바심나게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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