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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D-14, 영화 개봉 2주 작전
2001-06-27

극장까지 가는 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 사례연구: <신라의 달밤> 고군분투 배급홍보전 밀착취재

일본의 영화사 직원들은 편할 거다. 보통 후반작업까지 끝내고 나서도 6개월이 지나서 개봉하는 게 그들의 관례다. 한국 영화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속도의 계율이 지배한다. 촬영 종료후(후반작업 종료후가 아니다!)1개월 이내에 개봉되는 영화가 태반이다. 그

사이에 후반작업과 배급작업과 마케팅이 모두 완수돼야 하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영화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랍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한국 영화인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들 눈엔 놀라운 역동성으로 보이겠지만, 막상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전쟁을

치른다.

6월23일 개봉한 <신라의 달밤>을 만든 좋은영화 사람들도 전쟁을 치렀다. 여기 재구성한 짧은 기록은 블록버스터 외화들에 샌드위치

마크를 당할 <신라의 달밤>의 배급팀과 홍보팀들의 분투기의 일부다. “최전선의 야전부대와 후방의 보급부대.” 개봉 2주를 앞둔 영화의

배급팀과 홍보팀을 그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제작진의 고민이 끝을 보는 순간, 이 두팀에겐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는 것이다. 물론 2주 안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진 않는다.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래도 그 짧은 기간 동안

죽기살기로 매달려야 한다. 적어도 충무로 전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이런 때일수록 예민해지고 외부 인사의 존재가 불편할 터이지만, 눈총을 무릅쓰고 그들의 개봉전 2주일을 옆에서 지켜봤다. 2주 내내 “또 왔네”라면서도

내치지 않고 불청객의 불편한 방문을 인내한 그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고 싶다. 1년 전 각설이 보는 듯한 시선을 감내한 기자로서는 그

정도면 ‘셈셈’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우 리

에 게 주 말 은 없 다

일, 토요일 오후. 서울시 중구 주자동 배급사 시네마서비스 사무실 안쪽 조그만 방에선 회의가 한창이다. 내일 여는 야외 이벤트를 위한 첫 번째

회합. 가수 섭외부터 진행까지 기획팀이 전담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정된 비용이 따로 없어서다. 아이디어를 낸 김희정 과장이 총대를

맸다. 경험은 없지만 못할 일도 아니다. 강혜정 실장은 회의하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압구정동에 있는 편집실 모팩으로

가야 한다. <신라의 달밤> TV 광고 중 몇 장면이 방송심의에 걸려서다. 내심 “웃다가 뒤집어집니다”라는 카피 정도가 지적받을 거라 했는데…

극중에서 차승원이 학생들 머리를 쿠션으로 가격(?)한 장면이 ‘인명경시’, 패싸움 도중 경찰차 위로 사람이 떨어지는 게 ‘공공기물 파손’이란다.

TV 광고의 경우, 적절한 ‘타이밍’이 생명인데… 혹시 모를 ‘재난상황’을 위해 3일 동안의 여유를 둔 게 그나마 다행이고 위안이다.

강혜정(좋은영화 기획실장) 개봉 2주 남겨놓고선 불면증에 시달려. 자꾸 악몽을 꾸거든. <선물> 때는

안 그랬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종일 우리 “예매 목표는 2만장이야”, “맞아”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가는데. 막상 꿈은 예매결과가

달랑 2장인 거야.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거지. 기자시사를 하는데 갑자기 화면하고 사운드하고 안 맞는 사고가 발생해서 부리나케 뛰어가보면,

영사실에서 프린트 한권이 없다며 하소연하는 꿈도 있어. 2주 내내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하고. 그러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어.

왜 그런 거 있잖아. 몇년 일하면 관성이 붙는 거. 누구나 겪게 될 텐데, 민주나 영지에게 괜히 신경질내고 스트레스 푸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한마디로 괴롭지.

결 혼 상 대 로 언 론 사 다 니 는 사 람 은 N O!

“무슨

소리예요. 제가 통화를 안 한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그러는 게 어딨어요.” 난데없이 흥분한 목소리가 창가에서 터져나온다. 조윤미 팀장이다.

상대를 바꿔가며 한참을 설명하던 그는 가슴에서 뭐가 치밀어 오르는지, 결국 전화를 강 실장에게 넘겨주고 자리를 뜬다. 강 실장의 통화내용을

엿들은 바에 따르면, 배우들이 생방송은 싫다 해서 출연할 수 없다고 한 것인데, 해당 방송국쪽에서는 무조건 세 배우 모두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40분 넘게 기획실 사람들은 강 실장의 설득을 강의마냥 듣고 있다. 할말, 할 일이 있는

것 같은 2년차 막내들도 눈치채고 손짓, 눈짓만으로 일을 처리한다. 양쪽이 다 지쳤는지 폭풍이 잦아들 무렵, 조 팀장이 슬그머니 들어와 제자리에

앉는다.

조윤미(좋은영화 기획실 대리) 아직 난 고수는 아닌가봐. 못 참고 욱 하는 걸 보면 말이지. 사실 홍보하는 입장에서 매체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겠어. 놓치고 갈 수 없다고. 하면 좋지.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돼. 아니라고. 배우가 싫다는데 어떡해. 이번 배우들만큼 열심히

뛰어준 사람들도 없는데, 우리 욕심만 채울 수는 없잖아.

‘머 리’ 를 써 라, ‘해 피’ 해 진 다

<신라의

달밤>의 시사회가 예정된 서울극장 앞. 땡볕에 늘어선 행렬은 심지어 차들로 꽉 찬 도로까지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길게 울부짖는 차량들의

클랙슨 소리. 그 사이를 뚫고 불만에 찬 언성들이 터져나온다. “관계자는 어디 있어요?” “일단 줄부터 서세요” 입장이 시작되지만 줄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불평은 상영관이 있는 5층의 좁은 계단까지 타고 번진다. 인파 속에서 안면을 찡그리고 있는 이들. 등은 흘러내린 땀으로 범벅이다.

그런데도 정작 행사를 준비한 기획팀은 아무 말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눈치다. 보도자료를 나눠주는 이들은 묵묵히

“표 받아가세요”라고만 한다. 스탭들과 일반 관객까지 불러모은 건 무슨 이유일까. 북적북적한 시사회에는 다 이유가 있다. “웃음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속설을 염두에 둔 전술은 상영이 진행되는 동안 적중한 듯 보였다. 전날 기획팀이 짜놓은, 이른바 택(tactics)은 또 있었다.

전례를 볼 때, 무대인사를 끝낸 뒤에도 배우들에게 향하는 수십개의 카메라들 때문에 상영이 지체됐던 점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배우들이 영화를

보지 않고 곧바로 퇴장하는 것처럼 위장 동선을 짰던 것이다. 결국 상영 뒤 극장 옆 커피숍에서 이어진 인터뷰 자리는 대만원이다.

인 천 앞 바 다 에 사 이 다 가 떠 도 고 뿌 가 커 야…

개봉

일주일 전 이미 배급팀의 손에 지도 한장씩이 들려 있다. 프린트가 들어가는 극장들을 그려놓은 것이다. 시네마서비스 같은 메이저 배급사는 그러한

지도를 그리기가 쉽다. 극장 잡기도 용이하다. <신라의 달밤>같이 큰 작품은 2주 전이면 지도가 완성된다. 이미 예고편과 선전물

등에 대한 극장 반응만으로도 이 극장이 얼마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남은 한주다. 대박 몰이를 위해선

좀더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해야 한다. 김동현 대리가 딸과 함께 놀지 못하고 주말 오후를 사무실에서 보내는 까닭이기도 하다. “왜 우린 하나밖에

못 들어가요? 그 정도밖에는 신경 안 쓰실 거예요?” 김 대리가 콧소리까지 넣어가며 상대편을 떠본다. <신라의 달밤> 개봉 앞뒤로

거대한 블록버스터 외화들이 즐비해서 극장들의 눈치작전도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상대는 다음주에 있는 <툼 레이더> 시사회까지 본

뒤에야 스크린 수를 알려줄 모양이다. “그럼, 오래 끌어주실거죠.” 넓게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게 가는 것 역시 못지않다. 김 대리는 큰

건은 다 끝났다고 하지만 진짜 작전은 이제부터다.

김동현 (시네마 서비스 배급팀 대리) 성수기를 놓칠 수야 없지. 외화들이 숨통을 죄어오지만 오히려 한국영화는 1편이라는 메리트를

충분히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봐. 자신감 없으면 해볼 수 없는 싸움이야. 장사꾼은 그걸 즐겨야 하고. 물론 모든 영화를 지금처럼 펼칠 순

없어.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지역 내 한쪽 극장에 몰아줘야 응집력이 생기거든. 배급사 입장에서 벌당 250만원씩 하는 프린트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다양한 영화들이 각각의 극장에서 롱런하는 거? 이상적이지. 한데, 시장이 그래?

비 야 오 거 들 랑, 제 발 피 해 가 다 오

일주일

전 이벤트 진행을 해본 터라 손놀림들이 능숙하다. 제작부까지 함께 나선 터라 한결 수월하다. O.S.T 발매기념 공연장 위로 새카만 먹구름이

밀려오지만 반응은 뜨겁다. 공연 시작 1시간 전인데도 행인들이 500명 넘게 모였다. 영화 홍보물인 대형 걸개의 호소력도 상당하다. 이미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는 소문도 퍼져 있다. 막내 조영지씨는 건너편 김희정 과장과 무전기까지 동원해가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대로 밀고가면 된다”는

감이 온다. 드디어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무대 옆 대기장소인 천막 안의 밴드들 역시 슬슬 몸을 풀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꼬마야, 여긴 올라가면 안 돼.” 어디선가 나타나 소란을 피우는 아이 둘과 출연진들 사이에 마이크가 한 차례 바뀐 것을 빼면 성공적이다.

30분이 지나고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무대는 환호성으로 포위된다. 뿌듯하다. 배우들도 고무된 듯 보인다. 성공이다. 다음은 갑작스레 공연을

하기로 한 디바의 차례다. 호응이 이만저만 아니다. 크라잉 너트가 대미를 장식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디바의 퇴장과 동시에 ‘억수로’ 비가

온다. 청중은 일단 크라잉 너트를 보기 위해 꿈쩍 않는다. 고민이다. 크라잉 너트는 공연을 계속하기를 원한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비가 멈출 것 같지 않다. 강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다. 공연을 중단키로 한다. 간단한 사과 인사와 함께 좌중은 뿔뿔이 흩어진다. 천막

안은 비에 젖은 악기를 들여놓는 이들로 꽉 찬다. 구민주씨를 비롯한 기획팀 모두 흠뻑 젖는다. 하늘의 심술인가. 그칠 것 같지 않던 세찬 비가

20분도 채 안 돼서 멈춘다. 허탈감이 밀려든다. 다시 모여든 30명의 팬들이 항의한다. 그렇다고 다시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남은 건 소주

한잔뿐이다.

척 보 면 압 니 다

“예매

어떻게 됐어?” 월요일 아침, 배급팀 이화배씨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최용배 배급이사도, 김정상 사장도 이른 시간부터 막내 이화배씨를 채근한다.

이화배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배급한 영화들의 예매 성적표와 함께 지난 주말 각 극장의 <신라의 달밤> 예매 스코어를 집계한 뒤

보고한다. “어. 여기는 왜 아직도 예매를 안 하는 거야?” 한 멀티플렉스가 아직 주말 예매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최용배 이사가

묻는다. “23일날 개봉하는 영화들은 다 그런데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말 예매 결과가 기대치를 만족시키진 못한 표정들이다. 그렇다고

우려하는 낯빛도 아니다. 앞으로 남은 5일 동안의 예매 스코어가 앞으로 이 영화의 흥행 추이를 정확히 예고하는 것이니, 아직 뭐라 결과를 단정할

만한 데이터는 아니다. 좀더 지켜봐야 한다.

이화배 (시네마서비스 배급팀) 개봉 전날? 이미 주사위는 다 던져졌는데, 뭘. 맘이라도 편히 먹어야지. 사실 개봉 전 5일동안

예매 스코어 합계를 보면 파이널까지 대강 맞출 정도이고. 나중에 추측한 것과 맞춰보고, 확인사살하는 것일 뿐, 별 의미가 없어. 이제 고작

1년이지만, 지금까지 예측을 빗나간 적은 거의 없었던 걸 보면, 엄청난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걸.

불 퇴,

항 전

“OO극장에서

못 가겠다는데요. OO극장으로 교체하는 게 어떨까요.” 김 대리의 보고를 들은 이하영 실장은 순순히 “OK”라고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눈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곧장 전화기를 들든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취했겠지만 외부인 하나가 버티고 앉아 있으니 참고 묵묵히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시기가 만만하진 않은 건 사실이다. 며칠 전 개봉한 <미이라2>가 주말에 엄청난 수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일부

멀티플렉스에서는 많게는 5개관까지 늘인다는 정보가 입수된다.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스크린 흥정을 벌여야 하는 마당에 비슷한 시기 경쟁작들의 선점이

맘에 걸린다. 오후로 넘어서자 <신라의 달밤>보다 1주 늦게 개봉하는 <툼 레이더> 시사회를 보고 온 최용배 이사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안 물어봐? 영화가 어떤지 궁금하지도 않아?” 이 실장이 웃음으로 슬쩍 넘기더니 비밀리에 다른 회합 장소를 찾아 자리를 뜬다.

치고 들어간 다음에는 얼마나 버티느냐다. <진주만> <미이라2>가 1, 2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첫주에 1위를

해야 다음의 <툼 레이더> <슈렉>에 스크린을 내줘야 하는 수모의 위험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냥 순순히 한발 뺄

순 없는 것이다.

기자 실장님, 성격이 참 조용하시네요.

이화배 무슨 말씀이세요. 하루에도 몇번씩 큰소리 나는데요.

기자 그래요?

이화배 1년밖에 안 됐으니 혼날 일도 많죠.

김동현 이화배씨가 2시간 혼쭐난다치면, 전 그 반이에요. 그래도 대리라고….

기자 배급팀은 항상 시끄럽다면서요?

최용배 내 죄가 커요. 예전에 내가 그랬거든요. 소리치면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고. 지금 이 실장이 닮았나 보네.

김정상(대표) 아무래도 내 방 바로 앞에 배급팀을 둔 건 실수야. 이 실장 목소리밖에 안 들려.

기자 듣고 보니, 화를 잘 내시는 성격이라던데요.

이하영 내가요? 나 안 그래요.

밀 고

당 기 는 샅 바 싸 움 은 계 속 되 고…

결승점

10m를 남은 육상 선수에게 말을 거는 건 불가능하다. 전화벨은 쉴새없이 울리고, 목소리 큰 배급팀 세명의 목소리가 뒤섞인다. “상무님이 그러시면

안 되죠. 때에 따라서 골라 먹겠다는 건데 우리도 그럼 골라 먹을래요. 다른 영화는 보지도 않고 2주 이상 끌어줘야 한다고 해놓고서 우리 영화는

2주밖에 못 걸겠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신라의 달밤>도 한다고 해놓고 결국 엎었잖아요. <엽기적인 그녀>는 그때

가서 보죠, 뭐.” “그게 잘못 제작됐다고요? 어떻게 된 거예요?” 이쯤되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이도 입이 근질근질하다. 배급팀이 한관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세방현상소에서는 일단 125벌의 프린트가 각 극장에 배치될 준비를 끝마치고 있다. 극장별 일련번호를 확인한

뒤 파란색 상자에 담겨진 이 프린트들은 포장이 끝나면 서울의 각 극장과 지방의 중간 배급업자들에게 전달된다. 빠듯한 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봉 직전 목요일에 당도해야 극장에서 자체 상영하는 일이 없다.

이하영(시네마서비스 배급팀 실장) 한편 끝내고 후련한 건 없다. 한편 개봉하면서 다음 영화를 준비해야 하는 시스템이니까. 1년

라인업만 보면 한해가 후딱 간다. 실제로는 한해에 30편에 가까운 영화들을 개봉하지만 우린 1편 개봉하는 듯한 긴장을 안고 산다. 그러니까

이렇게 빨리 늙나보다.

하 루

당 겨 진 카 운 트 다 운

만국기가

날리는 운동장 한가운데, 400m 계주가 한창이다. 누구보다 승부를 진땀내면서 보는 건 마지막 주자에게 바통을 넘긴 이들이다. 그들은 스타트를

끊지도,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는 기쁨을 맛보지도 못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긴장감만은 팽팽하다. 이제 카운트다운은 끝났다. 약 130여개의

<신라의 달밤> 프린트 중 70%가 6월22일 금요일부터 상영에 들어갔다. 종전보다 하루 먼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다. 내가

좀더 뛰었으면 혹시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지막 주자인 관객에게 바통을 넘겨놓고서 아쉬움은 찾아올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못내 채우지 못한 이들의 욕심은 다음번 계주의 추동력이 될 것이다.

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