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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제작한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사진 오계옥문석 2004-12-30

“이제는 내공이 좀 쌓인 것 같다”

“<역도산> 얘기는 빼고 하자… 껄껄껄.” 인터뷰를 청한 계기가 <역도산> 개봉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농담을 던졌다. 그건 11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인 만큼 부담이 간다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고, 회사 차원에서 엄청나게 공력을 들인 영화이니 ‘살살’ 다뤄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했을 게다. 어쩌면 그건 “난 지난 일에는 연연할 새가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런저런 대형 프로젝트를 눈앞에 두고 분주하게 작업을 벌이고 있는 차 대표의 심경이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역도산>이 개봉한 지 딱 7일째 되는 12월21일의 그에게선 흥행상황을 파악하느라 초조해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근황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쉴새없이 퀸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를 불러대는 휴대폰이었다. 연말의 각종 모임, 판권 계약, 대학 강의 등과 관련된 통화가 끊이지 않았고, 마주하고 있는 기자의 귓속에도 일본의 한 출판사 관계자, 배우 매니저, ‘또’ 입건된 ‘동네 후배’의 사연이 슬쩍 들어오곤 했다. 찾는 이 많고 부르는 이 많은 그의 타고난 인복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역도산>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역도산>의 흥행성적은 어떤가.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기대치들이 높아서 그렇지, 한국 관객이 250만명 정도만 들면 손익분기점은 넘는다.

-총제작비가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

=대략 105억원 정도일텐데 일본에서 미니멈 개런티로 22억원을 받았으니까 국내에선 80억원 좀 넘게 회수하면 된다. 빡빡 우겨서 한번 가볼 작정이다. 더이상 숫자 얘기는 하지 말자. 아직 얼마가 들지는 모르니까.

-송해성 감독과 설경구가 언론의 리뷰에 다소 실망하고 있는 것 같더라.

=감독의 연출에 대한 비평가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설경구의 연기가 진짜 좋았다고 하는데, 그게 감독 없이 될 일인가. 또 굉장히 커다란 블록버스터형 상업영화를 기대했던 것 같은데, 내가 계속 남자 얘기 한다고, 사람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감독이 그런 면에서는 충실하게 찍었다고 본다. 우리는 흥행에서도 그걸로 승부를 낼 수 있다고 본 거다.

-블록버스터 치곤 너무 ‘약’을 안 친 것 아닌가.

=약을 치면 약을 쳤다고 뭐라 그러고, 안 치면 안 쳤다고 뭐라 하고…. 아주 재밌는 경험인데, 상업영화를 만들면 작품성이라는 잣대로 뭐라 하고, 나름대로 우직하게 찍으면 상업영화 잣대로 뭐라 그러고,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싸이더스 영화로 <역도산>을 꼽았다.

=<역도산>은 굉장히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런 경쟁논리 안에서 뭔가를 이뤄가면서 큰 것을 잃어간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잖나. 스토리라인이나 인물을 참 좋아한다. 어찌보면 너무 거기에 함몰돼 있어서 나만 지나치게 재미있게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작자 입장에서 느끼는 성과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역도산>이란 영화가 태어났다는 것 자체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요소가 굉장히 많았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신이나 설경구의 노력, 감독의 노력 같은 것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과 일본시장을 동시에 생각하는 기획으로 이 정도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영화를 하는 데 있어서 한 발짝 나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패착이라고 느끼는 점은.

=관객의 요구를 못 읽었다는 것 아닌가, 하는 점. 항상 그것을 읽으려 노력하지만 언제나 퍼펙트하게 읽을 수는 없는 거다. 사실 이 영화는 관객이 좀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그런데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감정들이 조금씩 숨어 있고 생략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 정도까지는 볼 줄 알았는데…. 아니, 지금 흥행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렇게 분위기 흐리는 질문만 던질 거냐? (웃음)

-민족주의적 요소가 배제됐고, 역도산의 비열한 구석이 약화된 것은 각각 일본에서의 흥행과 실존인물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은 아닌가.

=유족들도 살아 있고 실존인물이고 하니까 보통 영화보다는 감독이 제약받는 것도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일본시장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송해성 감독과 내가 처음부터 얘기한 방향은 이런 거다. 역도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역도산일 수도 있고 역도산이 아닐 수도 있는 어떤 한 사람이 살아간 궤적 안의 심리를 좇아가보자, 그런 느낌의 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국내와는 또 다른 반응을 얻을 것 같다. 언제쯤 개봉할 예정인가.

=일본쪽에서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 일본 사람들이 조심스럽지 않나. 내년 중에 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역시 해봐야 아는 것은 사실이지만, 변수는 있다고 본다. 국내에선 자막 때문에 감정이입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더라. 일본에서는 그런 게 좀 극복되지 않을까.

-북한영화 <력도산의 비밀>과 어떤 교류를 한다고 하던데.

=북한쪽에서는 중국과 합작으로 그 영화를 찍고 있다. 그쪽에서 우리에게 교류를 제안해서 검토하고 있는 거다. 그 영화도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협업을 할 게 있으면 찾아보자는 거다. 남과 북이 동시에 역도산을 소재로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 아닌가.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 있다면 찾아서 내가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도와주고 싶고, 그쪽 도움도 받고 싶다.

-올 한해 싸이더스의 성과는 대단했다.

=제작자로서 정말 좋았던 한해다. 내년에는 더 좋아야 할 텐데. (웃음) 영화 6편을 개봉했고, <역도산>을 제외하고도 관객 1200만명을 동원했다. 일개 제작사가 한국영화 관객의 20% 정도를 담당한 거니까. <살인의 추억>부터 5편이 연속으로 흥행했고, <슈퍼스타 감사용>이 조금 잃었다가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벌어줬고 <역도산>도 있으니. 그러다보니까 강박은 있다. 이번에도 또 돼야 하는데, 하는.

-그런데 전형적인 싸이더스 스타일이 아닌 <늑대의 유혹>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성공한 반면, 싸이더스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흥행에서 실패했다.

=1년에 6편을 만들면서 만날 싸이더스표 영화만 해서는, 그것을 좋아하는 관객만 공략해서는 못 먹고 산다. 예전에는 사실 그런 트렌디한 영화들에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거다. 그런 면에서는 내공이 쌓인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영화가 성공할 수는 없지 않나.

-올해 싸이더스는 기업적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회사가 계속 표류하다가 정박지를 찾아서 제대로 진용을 갖추려고 한 1년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시작점에 선 것 같은 느낌이다. 애초 씨큐리콥에 인수된 것은 쌓여가는 부채를 유예시키기 위해서였다. 흥행도 되고 부채도 갚아나갔고, 우리 회사가 이름이 좀 알려졌다는 이유로 회사명도 싸이더스로 바꿨다. 내가 1대 주주가 됐지만, 다른 분야까지 경영하는 것은 아니다. 보안과 통신분야는 각각의 책임자가 알아서 경영하고 있다.

-상장사가 엔터테인먼트업에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일을 해나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산업화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기업의 상장은 큰 방향에서 맞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게 체질에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체질에 안 맞는다고 다 안 해버리면 산업화가 안 된다. 공개시장에 나와야 기업이 깨끗하게 운용될 수 있고, 자금도 시장을 이용해서 모을 수 있다.

-상장기업으로서 또 다른 계획도 있을 것 같다.

=자금을 유치할 계획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 다 공시위반이다.

-배급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나.

=배급에 큰 욕심은 없다. 항상 했던 말이지만 배급은 할 수 있는 체력이 되면 한다. 제작에서만도 일가를 이루기 힘든데….

-제작만 하게 되면 항시적인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겠나.

=1년에 6편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중 3편 이상이 흥행한다면 그건 성공이다. 그리고 배급은 재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굴릴 수 있는 돈의 크기가 400억원 정도 있으면 된다. 억지로 마련하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본다. <역도산>을 빼고 올해 우리가 동원한 관객이 1200만명인데, 그 배급 수수료가 거의 30억원이 나온다. 하지만 그 돈이 거저 들어오는 건 아니다. 배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손실을 걸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거다. 그 손실을 감당할 체력이 돼야 배급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생각하는 거다.

-CJ가 너무 세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다.

=세지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건 좀 봐야 할 것 같다. CJ가 현명한 회사라면 세진 힘을 갖고 독단을 부려서 배척당하는 일을 한다면 그건 바보다. 하지만 자기네들이 강한 만큼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유연하게 구사한다면 잘하는 거다. 기업의 논리라는 게 끊임없는 확장과 시장지배력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반시장경제적 발상이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시장을 독점하는 것도 반시장경제적 상황이다.

-CJ와 각별히 가까워진 것 같다.

=일종의 퍼스트 룩 옵션 같은 게 있다. 문서로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당분간 CJ와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우리 회사를 보면 알지만 투자자를 자주 옮기지 않는다. 삼성영상사업단과 꾸준히 운영을 같이 했고, 일신창투와도 꾸준히 했고.

-노종윤 본부장이 퇴사한다고 들었다.

=12월31일자로 퇴사한다. 예전부터 계속 독립하겠다는 걸 붙잡아뒀는데 이젠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 섭섭한 마음이다. 내가 잘 못해준 것 같고. 2000년 싸이더스 창립 때 들어와서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다. 지금의 싸이더스는 노 이사의 덕이 크다. 내가 밖에 나가서 일 벌이면 다 수습해줬다.

-내년 라인업은 어떤가.

=현재 촬영 중이거나 촬영을 마친 영화는 <남극일기> <천군> <연애의 목적> <연애는 미친 짓이다>까지 4편이다. 어떤 작품이 언제 개봉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선의 주먹>은 캐스팅 중이고, 박해일이 나오는 <소년, 천국에 가다>도 우리가 가져왔다. 이언희 감독의 <어깨너머의 연인>도 개발 중이고 정윤섭 감독의 <사회과학 탐구영역>, 그리고 <무기의 그늘> <반짝반짝 빛나는> 등도 준비 중이다. 장준환 감독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고 최동훈 감독도 준비를 시작했다.

-해외 합작영화도 있을 것 같다.

=<어깨너머의 연인>은 일본에서 제작비의 60∼70% 정도를 받아 제작할 것이다. 일본의 큰 영화사와 함께하게 된다. 미국, 호주와 함께하는 <사막전사>도 계속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프랑스쪽을 어떻게든 연계를 해서 같이 해볼까 생각 중이다. <무기의 그늘>도 그렇지만, 아직 밝힐 수 없는 큰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싸이더스 작품 외에 올해 인상깊었던 영화는 무엇이었나.

=<인어공주>다. 되게 따뜻하다. 세심이라는 말이 있잖나. 마음을 씻어준다는. 내 마음속 세속의 때가 씻겨지는 느낌이었고, 어머님과 가족을 생각하게 했다.

-<역도산>은 싸이더스의 30번째 영화이고, 내년은 싸이더스 10주년이 되는 해다.

=1995년 5월에 사무실을 열어서 그해 12월16일에 첫 영화인 <돈을 갖고 튀어라>를 개봉했다. 그래,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많이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알차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많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잘 틀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학습이 많이 됐을 텐데, 해도 해도 모르겠다. 진짜 헷갈린다. 그게 왜 그런고 하니, 성공한 방법론으로 계속하면 퇴행해서 망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경계선 바깥으로 발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운명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다보니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그런 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엇이 바뀌었나.

=우리가 언제 달라졌냐. 대신 10년 동안 영화를 많이 배운 것 같다. 영화를 한다는 것이 뭔지도 배웠고 영화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영화관 같은 것도 생긴 것 같고. 나야 애당초 아무 생각없이 시작했으니까. 나는 영화청년도 아니고 영화학교 출신도 아니지 않나. 거꾸로 영화를 해가면서 배운 거다. 이런 문제는 이렇게 돌파해보자, 시스템을 한번 이렇게 해보자, 그런 것을 죽 해왔던 것 같다. 그런 게 비로소 자리를 잡은 게 올해인 것 같다. 영화를 하는 동안은 계속 배워야 할 것 같다. 영화도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상품이니 사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 내가 뭔가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지 않을까. 알았다고 생각하는 게 자만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렇게 자만한 순간은 없었다. 뭐 좀 안 것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한번 해볼까, 하면 한방씩 얻어맞았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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