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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본 <겨울연가> [1]
시미즈 마사시 2005-01-11

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본 <겨울연가>의 매력

일본인이 잃은 순수, 이 드라마에 있었다

2004년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한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상품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2004년의 한류는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일어난 붐이라고 좁게 지칭해야 옳다. 욘사마 열풍 또한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위성방송에서 시작해 공중파인 에서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 일본인들은 과연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감동하는 것일까? 일본의 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쓴 비평은 이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시미즈 마사시는 현재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과와 대학원 예술학 연구과 교수로 등 문학·영화·만화를 넘나드는 다양한 저서를 내놓은 인물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달 동안 유학을 하기에 앞서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한국에 간다면 꼭 를 봐두어야 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본래 유행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몇번이나 권유를 받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권한다면 첫 번째 이야기만이라도 볼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DVD판 1부를 학교에서 가지고 집에 왔다. 밤중에 가족 모두가 잠든 다음에 혼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1부에 수록된 세 번째 이야기까지 계속해서 봐버렸다. 다음날 나머지 6부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틀간 20편을 보고 나서 분명히 이 드라마는 도중에 그만둘 수 없도록 구성돼 있음을 알았다. 달콤하고 슬픈 테마송을 시작으로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남녀의 조화,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회의 예고, 다음 편을 보면 테마송 뒤에 반드시 전편의 줄거리가 소개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이번에 나는 1편을 통해 이 드라마의 특수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버스’를 쫓는 여자아이-체제에 대해 반항하지 않는 젊은이들

히로인인 여자아이 정유진은 고등학교 2학년. 항상 통학 버스를 뒤쫓는 지각 상습범. 히로인의 첫인상은 ‘달리고 있는 여자아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열여섯이나 열일곱이다. 유진 역의 최지우는 당시 25살.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보기에는 약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인상은 감추기 어렵다. 이 정유진이 사귀고 있는 이가 소꿉친구 김상혁이다. 상혁은 반장인 우등생으로 전형적인 모범생 청년이다.

정유진은 언제나 버스를 놓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유진은 지각 상습범이지만 학교를 퇴학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유진은 학교가 싫지만은 않으며 특별히 누군가에게 불만을 품고서 반항적인 태도를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유진은 일반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듯한 여고생으로 보인다. 너무나 보통스러워서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은 타입으로도 보인다. 왜 이런 보통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유진을 연기하는 여우 최지우의 매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며느리 삼고 싶은’ 여배우 넘버원인 히가시와 어딘가 닮은 최지우의 얼굴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진은 ‘버스’라는 체제(질서, 모럴, 혹은 유교적 정신)에 반역하는 존재는 아니다. 유진은 언제나 열심히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달리고 있다. 그녀의 달리는 모습에 반항의 흔적이나 항의, 빈정거림은 없다. 유진은 ‘버스’를 놓치지 않고 뒤쫓는다. 그러나 일단 ‘버스’를 타면 이번에는 안심하고 잠들어버린다. 여기에도 ‘버스’가 상징하는 체제에 대한 반역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진은 체제 안에 있을 때야말로 안심하고 있는 듯하다. 유진은 지각에 대해 주의를 주는 교사에 대해서도 전혀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유진뿐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체제에 대해서 반항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커다란 특징이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진은 질리지도 않고 ‘버스’를 뒤쫓으면서 지각을 반복하는 걸까. 여기에는 의외로 많은 관객이 간과하지 못하고 있는 유진의 성격에 대한 ‘비밀’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유진은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버스’(체제)를 놓치고 겉돌거나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상혁은 유진의 소꿉친구이긴 하나 우등생이며 ‘체제’의 상징이다. 유진은 상혁과 함께 있으면 안심하기는 하지만 운명적인 사람은 아니다. 유진은 상혁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한번도 없다. 유진은 열심히 달려서 상혁을 뒤쫓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멀어져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잠들어버린 유진 곁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이 청년이 강준상이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 수학과 음악 천재이며 말수가 적은 쿨한 청년이다. 확실히 만화책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처럼 핸섬하다. 전학생이란 이유만으로도 어쩐지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배용준이 연기하는 스타일이 멋진 강준상은 왠지 모르게 그림자가 진 수재이기 때문에 클래스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진은 준상과 만나기 위해 매일 ‘버스’에 늦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만약 유진이 지각을 하지 않는 모범스런 학생이었다면 준상과 버스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학과 음악 천재인 준상도 ‘버스’를 놓칠 정도로 지각을 하는 청년이며 그 점에서 그 또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체제’로부터 떨어져나갈 듯한 경향을 지닌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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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은주·편집 박초로미·디자인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