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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의 귀환, <철수♡영희>의 황규덕 감독

“변화는 시작됐다. 판갈이가 필요하다”

‘초등학생 황규덕’은 “신당동의 맹호부대장이었고, 지나가는 여자애들 세워놓고 너 이름 뭐냐고 윽박지르기 일쑤였고, 사립학교 다니는 애들을 굉장히 싫어해서 비만 오면 노란 옷에, 노란 우산 쓰고, 노란 스쿨버스 타고 다니는 애들 집을 끝까지 쫓아가서 초인종을 부수는 것”이 다반사였다. 초등학교 시절 명실공히 “반장, 부반장 해본 적 없고, 선생통인 그들이 싫어할 만한 야당 당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집안에서만큼은 조용하고 생각 많은 ‘방안퉁쇠’였다.

어른이 된 뒤, ‘감독 황규덕’은 등으로 한국의 교육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고, 수많은 영화인들의 산실인 영화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수년 동안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리고는 긴 휴지기 끝에 다시 대안교육자의 감성을 담아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디지털 장편영화 를 만들어 13년만에 돌아왔다. 시작 자체가 우여곡절이었다. 집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지만 제작비를 조달받지 못했고, 사비를 털어 홀로 거듭나야 했다. 그럼에도 타협과 구속은 없었던 영화이다. 타협없는 감독이 그만의 세상을 담아 만든 동화, 의 개봉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드디어 개봉하게 됐다. 근황은.

=지난해 4월경에 완성본이 나와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배급라인에는 다 풀어봤는데, 희한하게 CJ 딱 한 군데에서만 살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소리를 들었다. 애정을 갖고 분위기를 지켜보자 했고, 7월에 CJ아시아인디영화제에 출품하게 됐고, 후반작업 지원받게 됐고, 약속한 대로 인디영화 전용관 3개관에서 걸리게 됐다. 그리고 다행인 건 언론시사 뒤에 반응이 좋으니까, 다른 멀티플렉스도 걸겠다고 나오고 있다.

-여기저기 지면을 보니, 지금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대해서 할말이 많은 것 같다.

=새로 판갈이를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계가 발전하려면 돈이 아니라 인재가 필요하다. 내가 영화아카데미에 있으면서 느낀 건 영화적인 사고를 하는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 세대들이 한국의 새로운 영화를 위한 틀을 짜내기 시작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가장 무서운 건 디지털 세대 감독들이다.

-디지털 매체가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보는가.

-요즘 웃자고 찍는 한국영화 많지 않나. 어느 한컷도 필름다운 것이 없다. 그 비싼 카메라와 필름으로 왜 찍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같은 훌륭한 영화도 HD로 간다. 나만 해도 다음 프로젝트 혹은 평생을 디지털로 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정도다. 한국의 키네코 시스템도 놀랄 만큼 좋아졌다. 게다가 요즘 극장은 옛날 같지 않고, 작기 때문에 화질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굳이 자본의 간섭을 받으면서 필름으로 찍을 이유가 뭐가 있나. 무슨 떼돈을 벌겠다고. 내가 꿈꾸는 세상을 표현하겠다고 영화를 하는 거지 영화해서 떼돈 벌겠다고 하나? 그럴 거면 차라리 부동산해서 떼돈 벌지.

-이 영화의 내용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가 나오는 바람에 지금은 약발이 좀 떨어진 이야긴데, 처음에는 시골 분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길게 있었다. 만든 놈이 이런 거 또 만들면 학교 얘기만 한다고 찍히니까 하지 말자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프로듀서 했던 박민이라는 친구가 같이 하자고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짜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웃음), 김윤경 작가의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그때 마침, 뉴시네마네트워크(NCN)가 출범한 거다. 2억원짜리 프로젝트니까, 워밍업 삼아 한번 해보자 했던 거다. 예전에는 어린애들을 보면 귀찮았는데, 2∼3년 사이 애들이 귀여워졌다. 저렇게 순수하고 맑은 인간들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굉장히 불쌍하게 살고 있구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저런 애들이나 맑게 늙은 노인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그런 감정을 소복하게 넣는 것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겠구나 싶더라. 남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 못 찍고 방황하고서 지금 만드는 영화가 이렇게 작은 영화냐고 말들을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기만의 질감으로 만들기만 하면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꼭 스케일이 커야 한다는 건 강박관념처럼 느껴진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면 많이 달라졌을까.

=그런 건 이미 지금 영화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애당초 얘들이 잘 나가고, 또 잘 나갈 것 같았으면 보편성이 없었을 거다. 그 사회 안에서 나름대로는 존재를 드러내려고 발버둥치지만, 그저 사회의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희는 조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부모님 모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지원사격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보통으로 살 수밖에 없고, 철수도 횡설수설한 부모 밑에서 말썽꾸러기로 크는 순진하지만 덜떨어진 놈이고. 그런 애들의 삶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신화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게 충분히 소중하게 가꿔줘야 할 싹이라는 생각을 했고, 경쾌한 판타지를 넣고 싶었다. 그래서 철수와 영희의 판타지가 첨가된 거다. 처음 시나리오는 일상적으로 그냥 끝났었다.

-원래 작가가 붙인 제목도 였나.

=아니다. 나도 얼마 전에야 확인했는데 이란 제목이었다.

-질문한 이유가 있는데, 는 무척이나 보편성을 강조하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니 보기보다 그 보편성을 굉장히 센 강도로 강조하는 제목이라는 걸 알게 됐다.

=뭐 그렇게 셀 건 없는데. (웃음) 제목에 대해서는 자신이 좀 없다. 카피라이터적인 재능이 별로 없다. 의 원래 제목도 였다. 너무 어필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라고 배우 오디션 공고냈던 행사 제목이 영화제목이 됐다. 도, 잘 지어진 제목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제목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유명한 카피라이터는 는 되는데 는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철수와 영희가 사랑을 했다. 철수하고 영희하고 사랑한대요’ 하는 데서 출발한 거고, 찍고나서 보니까, 이 영화는 철수와 영희가 노는 이야기가 아니라 철수가 영희를 좋아하는 영화였다. 철수가 주어이고, 영희가 목적어고, 하트가 동사인 거다. 이게 맞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에 대한 칭찬은 한번도 못 들어봤다. (웃음)

-실제 가족인 사람들을 영화에 많이 출연시켰다. 그게 이 영화의 어떤 태도처럼 느껴졌다.

=‘태도’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30억원짜리 영화가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욕을 먹겠지. 중압감에서 벗어나니까, 가장 순진하게 접근하는 거다. 주변에 있는 가장 편한 사람들한테 부탁을 하는 거다. 어린 영희 부모님으로 출연하는 음악감독님 가족들의 출연도 그렇고, 영희 할머니로 출연하는 주부진씨 부군 되시는 복진오 교수가 할아버지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부인이 영화출연한다니까 그냥 촬영장에 오신 건데, 뵙고 나니까 인상이 좋아서 내가 역을 만들어낸 거다.

-동물 연기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게 아이들 연기시키는 것일 텐데, 게다가 한명도 아니고 서른한명이다.

= 때 촬영 회차의 거의 절반이 교실이었고, 동선 짜는 건 이미 거기서 다 해봤기 때문에 걱정없었다. 그런데, 질문한 대로 가장 큰 변수가 애들이더라. 고등학생들은 자기가 지금 일을 한다는 걸 알고 겁을 주면 통하는데, 초등학교 애들은 이게 놀이터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아찔했었는데, 내가 운좋게도 사대 출신이어서 초등학생들 교생실습을 하면서 이미 그런 걸 느꼈던 적이 있다.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뭐, 개판일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웃음) 어차피 윽박질러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애들이 노는 대로 인정하고 흘러가는 거다. 아이들이 유지하고 내가 흐름을 타는 식으로.

-꼭 4학년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선생님(정진영)이 음악회 무대에서 하는 대사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진지하게도 들렸다.

=개인적으로 4학년 때부터 내 사춘기가 시작됐던 것 같다. 이 집단 안에서 의미없이 굴러가는 게 싫고, 내 개성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에서 문성근이 한 학년을 올려보내면서 하는 말이 사실 그 영화의 주제다. 이 영화에서는 꼬마들의 이 시절이 인생이라는 명제 안에서 중요하다는 걸 정리해주고 싶었다.

-세편의 장편영화 모두 학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

=누구는 유치원 영화도 찍으라고 놀리는데, 그건 이미 프랑스에서 교육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찍으면서 해봤다. 다시 또 학교영화를 찍을 거냐고 물어보면,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다. 도 70년대 대학생들이 나오고, 도 그 당시를 겪었던 노근리의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명필름) 계획은 어떻게 돼가나.

=지금은 이라고 가제를 붙여놨는데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야 2억원 갖고 찍지만, 노근리는 그렇지가 않지 않나. 지금 이야기 중이다.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제작사하고 합의가 됐지만, 나는 이번 여름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회사는 2006년 여름에 찍자고 한다. 소재 자체가 비상업적이기 때문에 아직 좀 두고봐야 한다. 중요한 건 자기가 가장 마음 편하게, 그 대신에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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