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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스타, 그 반짝하는 황홀한 삶
박혜명 2005-01-14

연예인한테는 도통 관심이 없던 내 여동생이 드라마 이 방영되던 올 초에 권상우가 너무 멋있다며 나보고 인터뷰하게 되면 사인 좀 받아달라 했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HOT에 빠져 엽서를 사모으던 내 옆에서 강타 사진 한장만 달라고 구차하게 부탁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좀 지나서 이 하니까 여동생은 이동건만 나오면 TV 앞에 쓰러져 누웠다. 권상우는 이미 전생의 연인이었다. 여동생은 수혁이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드라마만 보면 펑펑 울었다. 하긴 나도 그랬다. 마침 내 동생이 사인을 부탁하던 그 무렵에 개봉이 물리고 권상우 인터뷰가 잡혔는데, 평소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이 아니어서 인터뷰 준비차 을 몰아서 봤고, 나는 비로소 동생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은 주위에서 한참 떠들던 와중에 봤다. 재방송 몇번 보고 나니까 이동건이 꿈에 나왔다.

소지섭은 볼 때마다 다리가 녹아내린다. 드라마 보면서 “어떡해애! 소지섭 너무 멋있어!”를 매회 평균 10번은 부르짖었다. 가슴 찢어놓는 마지막회도 시청률은 아쉽게 30%를 넘지 못했다지만 소지섭은 지금 모 포털사이트에서 남자배우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른 상태다. 나나 내 여동생 같은 사람들이 느닷없이 가슴에 질러진 불을 감당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몰려드는데 1위가 안 될 수가 없다. 강동원이 인기 최고일 땐 “우리 강동원 표지 안 해요?”, 이동건이 인기 최고일 땐 “우리 이동건 표지 안 해요?”라고 시국의 변화에 맞춰 선배들을 붙들고 조르는 게 일이었던 나는 요즘 소지섭 카드를 대체 언제쯤 내놓는 게 말이 되는지를 심심찮게 궁리 중이다.

그러니까 이런 인기는, 누구나 동의하는 뻔한 사실이지만, 드라마와 드라마 속 캐릭터에 철저히 한해 있다. 드라마가 끝나면 인기도 곧 숨이 죽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음에야 배우가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자고(인기를 연장해보자는 건 기대도 하지 않을 테니) 아무 데서나 그 캐릭터를 흉내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해서 팬들의 아쉬움이 달래질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인기 검색어라고 하는, 대중의 관심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되 객관성과 정확성은 어디에서도 보장받을 수 없는 독특한 종류의 지표가 생기고나서부터는 이 사이클이 얼마나 짧은지를 더욱 체감하게 된다. 우리도 이럴진대, 이런 급류 위에 자기 인생의 조각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야 하는 배우들한텐 그저 모든 것이 한순간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하던 내 삶에 불꽃처럼 펑펑 터지고 밀려들기 시작한 CF 계약, 인터뷰, 시나리오. 그러다 다시 잠잠해지는 하늘. 그러다 또다시 뭐 하나 잘 만나서 검색어 1위 되는 상황.

수많은 배우들은 똑같은 말버릇을 갖고 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에요. 그리고, 운이 좋은 거죠. 그들은 그들 스스로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도, 그 평생 동안 진실한 노력의 가치를 경계하며 산다. 섣불리 신뢰하면 마음만 다칠 뿐이니까.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이룬 배우일수록 인터뷰 자리에서 할말이 없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 라는 말조차 어느 순간이 되면 닳아빠진 멘트처럼 제 귀에 울릴 배우들에게, 그들만의 별자리가 따로 있다면 그건 별똥별일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에 강렬한 빛을 내자마자 꼬리의 흔적조차 감추고 사라질 수 있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대요. 들어보셨어요? 뭐냐하면, 남자, 여자, 그리고 배우. 그만큼 특이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이 말을 한 어떤 배우가 데뷔 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지나가는 말인 양 두번 같은 말을 흘렸다. “내가 그때는 지금의 강동원이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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