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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흥미진진한 재구성, <리컨스트럭션>
홍성남(평론가) 2005-01-18

<범죄의 요소>의 터치와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를 연상케 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소년 소녀를 만나다>. 우리를 흥미진진한 재구성의 미로에 빠뜨린다.

(1959)이나 (1961) 같은 알랭 레네의 초기 걸작들에 대해 못마땅해했던 평자들 가운데에는 그 영화들이 들려준 다분히 앙상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를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 눈에 비친 레네의 영화들이란 기껏해야 불륜 이야기를 다룬 것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무력한 것은, 레네가 그 골조만 보면 빈약하고 진부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에 지극히 창의적인 시선과 손길을 가져감으로써 그것을 영화와 이 세계에 대한 어떤 심원한 성찰(의 틀)로 격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우선 결과는 생각지 말고 의도만을 고려해본다면, 을 만든 덴마크의 젊은 감독 크리스토퍼 보에에게도 레네처럼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태도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에의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그저 처음 봤을 뿐이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어놓은 어떤 여자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남자 알렉스에게는 여자친구 시몬느가 있었고, 또 그를 사로잡은 여자 아메는 어거스틴이라는 저명한 소설가 남편이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원래의 사랑을 뒤로하고 서로를 향해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짐작하겠지만 이건 영화의 내레이션에서 말하는 것처럼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한편 너무나도 많이 반복되어 이젠 닳을 대로 닳아빠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은 이야기할 바가 가진 그런 식상함을, 오히려 진부하지 않은 영화로 만들어낼 조건으로, 혹은 새롭게 다시 시작할 기반으로 삼는다. 뻔한 사랑의 이야기에 앞서 만들어진 그 많은 길들을 따르지 않고서 여전히 ‘재구성’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그것도 많이 남아 있음을 증명하려 하는 이것은 상당한 야심을 가진 이가 만든 사랑 영화라고 부름직한 것이다.

을 보면서 아마도 적지 않은 이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덴마크 태생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특히 그의 데뷔작 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비록 폰 트리에 영화보다 발작성은 덜하지만 여하튼 그에 비견할 만한 불안하게 표현주의적인 터치가 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리고 영화의 그같은 색조는 그 세계 전반을 감싸는 불투명한 공기에 대한 효율적인 시각적 대응물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제시하는 세계는 꽤 짙은 안개로 덮여 있는 것이다. 그것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출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하나의 세계, 즉 미로와 마주하게 된다. 그 세계는 반복(이를테면, 알렉스와 아메의 만남이 이뤄지는 카페의 반복적 등장) 같은 요소가 중요한 자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는 그것의 독특한 설계 형상 때문에 미로로서 구축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의 세계는 그 안에 심연은 아니어도 어쨌든 굉장히 깊이 파여 있는 어떤 곳에 하나의 하위 세계가 존재하고 또 그 안에는 그보다 하위의 세계가 포함되는 식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요컨대 하나의 허구적 구조물(construct)임을 분명히 밝히는 전체 세계 안에는 아마도 어거스틴의 글쓰기의 산물인 허구 세계가 존재하고, 또 그 안에는 좀더 하위 세계로서 어거스틴의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알렉스가 잠든 아메를 바라보며 상상함으로써 만들어진 세계가 포함되며, 그리고 이 세계 안에도 좀더 찰나적인 상상을 통해 축조된 더 작은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을 보는 과정이란 머리 속에서 그런 구조를 재구성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의문들을 떠올리며 유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런 의문을 가질 법하다. 알렉스가 아메와 사랑의 감정을 교환한 뒤로 부조리하게도 예전에 그를 알았던 이들, 친구, 연인, 아버지 모두가 이제 더이상 알지 못한다고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건 알렉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어거스틴이 자신의 ‘캐릭터’인 알렉스에게 일종의 복수를 하는 상황, 그래서 허구 속 세계와 그것을 주재하는 세계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상황을 일러주는 것일까? 여하튼 영화 속에 구축된 세계란 아마도 아귀가 들어맞는 정확한 설계도가 없이 지어진 것일 터이기에 그런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주어지지 않고 그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에게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다가올 뿐이다. 그런 식으로 이것은 (오슨 웰스, 1941), , (자크 리베트, 1974) 등이 하나의 흥미로운 계보를 만드는 ‘미로의 영화들’에 끼게 되었다.

하지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2003)을 수상한 이 영화가 앞에 열거한 영화들이 보여준 만큼의 창조적인 미로를 세웠냐 하면 시인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젊고 야심있는 영화감독의 재능과 탐구정신만이 아니라 거기에 그의 스타일상의 과시욕과 가벼운 재치가 함께 배합되어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은 그것을 보는 관객쪽에서는 분석과 재구성을 위해 필요한 지성과 로맨스에 반응할 감성 사이로 타고 흘러가는 영화가 된다. 그러나 이 러브스토리는 도회적인 멜랑콜리를 미묘하게 포착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인물들의 심리 깊은 곳까지 이르지는 않기에 내레이터-어거스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할 정도는 못 된다. 여하튼 세련된 감성을 건드리면서 형식의 유희를 할 줄 아는 은 머리와 가슴은 어느 정도, 그리고 눈만은 확실히 혹하게 만드는 영화다.

크리스토퍼 보에와 그의 그룹 “Hr. Boe & Co.”

함께 전진하는 진짜 동업자들

이란 단 한편의 장편을 만들고서 크리스토퍼 보에는 덴마크 내에서 영화 매체와 관객을 가지고 놀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건 1974년생인 그 젊은 영화감독에게 덴마크의 영화인들이 거는 기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무래도 라스 폰 트리에 이후의 또 다른 걸출한 덴마크인 영화감독으로 성장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은 듯 보인다.

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듯이 보에는 장 뤽 고다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레오스 카락스, 라스 폰 트리에, 스티븐 소더버그 등으로부터 형성된 영향권 안에 놓여 있는 영화감독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 빠져들었다는 보에는 덴마크국립영화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영화 수업을 받았다. 재학 시절 그는 (1999), (2000), (2001)으로 이어지는 실험적 색채가 짙은 단편영화들을 만들어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영화들에 참여한 프로듀서(티네 그루 파이퍼), 촬영감독(알베르토 클라로), 사운드디자이너(모텐 그린)가 모두 에서도 함께 작업했다는 점이다. 함께 영화학교를 다닌 그들은 하나의 창작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의 첫 크레딧 시퀀스에도 나오는 ‘Hr. Boe & Co.’이다. 그 그룹의 추진력쯤에 해당하는 보에는 그룹 안에서의 토의와 협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영화를 추구해오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 그룹이 그같은 집단작업의 개념만이 아니라 재가공과 재생으로서 영화작업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학생 시절에 만든 단편영화들에 비하면 스토리상으로나 시각적으로 다소 덜 ‘순수’해지긴 했으나 ‘Hr, Boe & Co.’ 멤버들은 이 이전 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고 또 그들 스스로의 영화언어를 발전시켜 나온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으로부터 더 나아갈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은 아직 하나의 주기를 다 마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단지 보에라는 감독만이 아니라 그가 이끄는 그룹 자체가 어떤 필모그래피를 그려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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