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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익스프레스> & <월드 오브 투모로우> [3] - <월드 오브 투모로우>
김혜리 2005-01-18

A. 기획

가난한 영화학도의 가내 수공업

(미리 말해두건대 슬픈 이야기다.) 거대한 제펠린 비행선이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유유히 정박하는 이미지. 케리 콘랜(38)은 그것을 꼭 영화로 찍고 싶었다. 소년 시절부터 열애해온 1930, 40년대 누아르, 스릴러, 유니버설 호러, 독일 표현주의영화, 만화, 펄프픽션에 바치는 오마주를 뭉뚱그린 쿨한 영화. 그러나 돈이 없었다. 칼아츠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는 셀애니메이션의 원리에 착안했다. 우선 좋아하는 옛날 영화를 관찰해 프레임의 요소들을 전경과 원경으로 나누었다. 자료 필름과 사진, 애니메이션을 컴퓨터로 층층이 합성해 공간과 거대구조물이 든 배경 평면을 그렸다. 그리고 아파트 창을 쿠킹호일로 막고 PVC파이프로 블루 스크린 틀을 짜서 모델의 연기를 촬영해 배경에 얹었다. 프로덕션디자이너는 형 케빈이 촬영은 칼아츠 동기 에릭 앳킨즈가 맡았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준비한 가정용 매킨토시로 프레임 하나 여는 데 20분씩 걸리는 작업을 1년. 제작 소식이 들려오더니 에 포토리얼리스틱한 CG 공룡이 등장하고 말았다. 그동안 콘랜은 컴퓨터 사양 탓에 로봇 다리를 일일이 떼어 개당 12시간씩 걸려 렌더링하고 있었다(다리 둘 달린 로봇이 20기였다.) 4년이 흘러 영화의 첫 6분 데모가 완성됐다. 지인을 통해 이 6분을 보게 된 제작자 존 애브넷에 의해 의 진도는 급속히 빨라졌다. 그 즈음에도 콘랜은 HD카메라와 워크 스테이션을 써서 500만달러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뿐이었다. 그러나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가 합류하고 파라마운트가 미국 판권을 사면서 가내수공 어드벤처 의 운명은 표변했다.

B. 연기

100% 블루 스크린 앞의 연기

의 톰 행크스처럼,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도 연기를 연극 수업에 비했다. 그러나 진공상태에서 거칠 것 없이 연기한 행크스와 달리 블루 스크린 앞에 서야 했던 그들은 자신이 찍을 장면을 본인 동선을 포함해 애니마틱 버전으로 먼저 관람하고 그대로 연기했다. 한편 파라마운트 아카이브 필름으로 죽은 로렌스 올리비에를 부활시켜 오즈의 마법사 같은 악역 닥터 토텐코프로 캐스팅한 는 와 더불어 “아바타와 바디 스내처의 시대가 오는가?”라는 우려섞인 전망을 불러오기도 했다(조너선 롬니, 2004년 11월28일치) 사망한 명배우를 옛 필름에서 오려내는 기법은 일부 영화와 CF에서 이미 이용됐으나, 기술의 발전은 이들에게 새로운 연기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급한 호사가들이 궁금해하는 법률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모션 캡처,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으로 재생된 죽은 배우들에게 초상권이 있을까? 이들이 인공지능까지 얻어 자율적 결정이 가능해져도 권리는 유족의 것일까? 로렌스 올리비에의 인공지능 디지털 재생 배우가 둘 이상 존재할 때 둘 사이의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까? 어쨌거나 와 의 연기 연출방식은, 디지털화에 적응하는 능력, CG 조연과 어우러지는 능력이 좋은 배우의 조건으로 여겨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고한다.

C. 대차대조표

대작 제작비의 반으로 3776만달러 수익

착상부터 치면 콘랜 감독의 10년 세월을 집어삼킨 는 2004년 9월17일 개봉해 첫 주말 1558만달러를 벌었고 누적수입 3776만달러를 기록했다. 센세이션을 예고한 데뷔작치고는 덤덤한 수치. 그러나 제작진은 의 7천만달러 제작비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같은 영화를 만들었을 경우의 반값이고, 여름 블록버스터 의 1/3 수준으로 액션어드벤처를 뽑아냈다는 점을 자부한다. 케리 콘랜 감독과 제작자 존 애브넷은 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제작을 자극하고 여름 블록버스터의 경제학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성년의 대부분을 쏟아넣은 입봉작과 이별하는 일이 감독에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존 애브넷의 짓궂은 예상. “DVD를 위해 손질에 들어가면 5, 6년 걸려 1/4 분량을 수정해놓지 않을까” 점친다. 케리 콘랜의 다음 영화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원작의 . 이번에는 진짜 세트와 로케이션을 써서 2년 안에 완성한다는 계획을 현지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콘랜 감독은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되는지 “꼭 사기치는 기분이겠죠?”라고 덧붙였다.

D. 이슈

인디영화의 르네상스 이뤄질까?

물건으로 말하자면 는 일종의 ‘가짜 앤티크’다. 이 영화에 투여된 방대한 첨단 테크놀로지가 결국 모사하려는 대상은 흥미롭게도 과거 테크놀로지의 한계다. 는 오래된 영화의 조악한 화질과 후광 조명, 반질하게 닳은 질감을 애써 복원했다. 20세기 초 전쟁터에 나선 병사들이 품었던 빛바랜 사진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 자체가 를 추억하는 낡은 앨범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케리 콘랜의 이 집착과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무심함이 시체애호증이 아닐까 의심한다. 라스 폰 트리에나 가이 매딘이 셀룰로이드로 보여준 비주얼을 디지털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나가다가 미래의 영화광 감독은 비 내리는 프린트와 영사사고를 디지털로 재현할지도 모른다. 배우의 연기에서 창조보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와 같지만, 의 배우는 어느 순간 액션 피겨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는 공간과 사건, 동선부터 정하고 연기를 찍는 제작 공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스펙터클의 풍경을 먼저 상상하고, 그곳에 뛰어들 괴물을 그린 다음에야 괴물과 싸울 영웅과 그들의 동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미학적인 허점에도 불구하고 케리 콘랜 감독은 현실적 견지에서 가 인디영화 르네상스에 실질적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도한 제작비로 코너에 몰린 스튜디오들은 가능한 한 폭넓은 관객에게 호소하는 신중한 영화만 만들게 된다. 나의 방법은 인디 감독도 스튜디오도 다른 방식의 모험을 걸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의 제작과정

"진짜는 배우뿐, 나머지는 전부 CG

근검절약 정신의 산물 는 모든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고 촬영에 들어가려고 했다. 열쇠는 영화 전체를 시뮬레이션한 3D 애니마틱스. 사운드, 대사, 효과가 포함된 움직이는 스토리 보드다. 는 세트나 실제 로케이션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 유일한 진짜 피사체는 배우와 그들의 손이 닿는 소품 정도. 전투기도 앞코만 만들었다. 런던 엘스트리 스튜디오의 3개 블루 스크린 세트를 오가며 이뤄진 촬영에는 3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 같은 소니 시네알타 HDW-F900/3 기종이 쓰였다. 두대의 카메라가 한신의 미디엄 숏과 클로즈업을 찍으면 나머지 한대가 옆 세트에서 다른 장면을 찍는 방식으로 진행된 촬영은 6주 만에 끝났다. 블루 스크린 세트와 컴퓨터 내부의 가상세트에는 모눈지도가 깔려 애니마틱스의 배우, 카메라 위치가 표시됐다. 배우가 파란 방에서 움직이면 콘랜 감독은 3D 배경이 들어간 다른 모니터로 연기를 모니터한다. “한계가 있지만 일관성은 보증된다!”는 것이 의 모토인 것이다.

거대 로봇의 맨해튼 공습장면을 예로 보자. 도심풍경은 2주일간의 출사로 찍은 디지털 사진에 1930년대 건물 텍스처를 부여해 만든 뉴욕 4개 블록의 3D 모델이다. 멀리서 도망치는 시민들은 모션 캡처 애니메이션이고 전경과 중경의 시민들은 블루 스크린 앞의 엑스트라들이다. 이미지 합성은 100명의 컴퓨터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완성됐다. 의 CG 특수효과 숏은 2100개. 에는 1500개다. 옛날 영화 비주얼의 조악함이 갖는 몽환적 효과에 매료된 케리 콘랜 감독은 가 아니라 조야한 멋을 낸 를 원했다. 그러므로 감독은 본디 흑백영화를 원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공들인 흑백영화를 보러온다는 생각이 도착적으로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배급에 있어 컬러는 중요했다.” 결국 는 흑백으로 인물과 배경을 합성해 톤을 맞춘 뒤 (가짜) 3색 테크니컬러 효과를 내는 식으로 ‘오래된 미래’를 채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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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박초로미·디자인 문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