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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를 매개로 한 청춘물, 이누가미 스쿠네의 <러버즈 세븐>

1층은 편의점, 2층은 노래방, 3층은 탁구장인 어느 빌딩. 지나치게 번화하지도, 그렇다고 한산하지도 않은, 도시 외곽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무대다. 주인이 젊은 야쿠자라는 사실도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친다든지, 노래방에서 낯뜨거운 짓을 벌인다든지, 쓸데없이 이 구역을 침범하려고 어슬렁거린다든지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때는 3층의 썰렁한 탁구장 창밖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 들려온다. “모든 트러블은 볼과 라켓으로 결정한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다.

도시의 탁구 무협 드라마. 불을 뿜는 스매싱, 살을 잘라내는 커트, 간교한 이질 러버의 서비스, 돌연 판을 엎어버리는 난동… 같은 것들을 기대할 법한 시작이지만, 다시 한번 만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더이상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말해두자. 이 만화는 탁구를 살짜쿵 매개로 한 청춘물, 혹은 조금 비껴 친 로맨스코미디다.

남학생 히로미는 1년 전 사소한 도둑질로 붙잡힌 뒤, 사장인 무네모리와의 ‘탁구 시합’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자신과 비슷한 오해로 붙잡히게 된 같은 학교의 여학생 나츠키와 탁구 시합을 벌이게 된다. 사장은 여학생에게 말한다. “이기면 무죄, 지면 육체 노예.” 히로미는 갈등하지만 협박 속에 그녀를 물리치고 만다. 히로미,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시무시한 말들이 오고가지만 히로미 옆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츠키. 그 주위에 무네모리를 중심으로 게이바에 출입하는 스짱, 노래방을 관리하는 부두목,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만들어가는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부모의 이혼 뒤에 양쪽의 성을 버리고 혼자 살아가는 나츠키를 중심으로 무네모리와 히로미의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하나둘 인물들이 늘어나면서 감추어진 비밀이 벗겨지는 패턴은 익숙하지만, 그 비밀을 따라가는 과정이 구태의연하지만은 않다.

탁월한 작품은 아니지만, 잔잔하면서도 상쾌한 만화다. 이질 러버를 붙인 듯 착각을 하게 만든 뒤에, 정직하게 정공법으로 덤벼드는 것이 조금은 신선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탁구일까? 셋이서는 할 수 없는 게임인데. 도대체 누가 점수판을 넘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