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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산행 [1] - 오대산의 절
2005-01-21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며 새로움에 대한 경험이다. 그러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떠남은 돌아옴이 약속된 여정이고 새로움은 오늘에 대한 반성을 먼저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겨울 산사로 떠나는 여행은 각별하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세속의 즐거움과 단절하고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스님들의 모습과 절집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과 절제된 생활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여행길 등에 둘러멘 작은 배낭 하나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될 것이다. 오대산과 설악산 인근의 절집들을 소개하는 것은 꼭 산사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겨울에 쉽게 찾게 되는 동해로 가는 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찰들이기 때문이다. 사찰 경내의 찻집에서 잘 끓인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2005년을 더욱 알차게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1만의 문수보살 덕에 비움의 지혜 배웠네요

오대산 상원사·월정사를 가다

밤길입니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1만이나 거한다는 오대산에서 지내는 밤. 이미 겨울은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 오대산은 온통 하얀 눈에 뒤덮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운 것은 쉽게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올 겨울 오대산에서조차 유난히 눈이 귀합니다. 눈을 찾아 밤길을 나섰습니다. 더 솔직하자면 겨울 밤 하늘 유난히 빛나는 별빛에 오히려 사무치는 외로움을 떨치고 싶었습니다.

염불소리와 바람소리 들으며 오르는 비탈길

상원사를 지나 오르는 비탈길. 오대산 최고봉인 비로봉 중턱의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를 비장했다는 곳입니다. 눈이 귀해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나무에 기대 가쁜숨을 달래게 될 때마다 옷깃을 꽁꽁 여며보지만 파고드는 바람은 여전합니다.

쉬엄쉬엄 가쁜 숨을 달래며 1시간여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바람이 제법 세차졌습니다. 그 바람소리에 섞이지 않는 또 다른 소리는 염불소리였습니다. 이미 깊은 밤. 적멸보궁 법당에는 신도들이 가득합니다.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적멸보궁 법당에는 부처의 상이 없습니다. 부처 상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방석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 뒤로 난 창 어딘가에 석가의 진신사리가 있다 합니다. 그러나 그 사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모은 두손을 풀지 않게 하는 그 힘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기원. 그것은 내 마음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악의 유혹 앞에서 흔들릴 때 선의 마음을 일으켜 붙잡아주는 힘은, 헤어짐에 눈물지을 때 또 다른 사랑이 있음을 일러주어 다시 서게 하는 것도 결국 내 가슴 어딘가에 웅크린 ‘또 다른 나’가 내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불가에서 ‘부처는 바로 자기 마음속에 있다’라고 이르는 것도 결국 내가 모르는 그러나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또 다른 나’를 찾으라 이르는 말인 것만 같습니다.

상원사의 이름없는 돌탑 앞에서

다시 아침을 맞는 곳은 상원사입니다. 이름 갖지 못한 돌탑 앞에 섰습니다. 이미 솟은 아침 해를 맞이한 첩첩한 산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멀리 하늘에 기댄 봉우리에는 간밤 그리움을 알았는지 겨울이 눈을 한 움큼 뿌려놓았습니다. 눈을 덮은 봉우리와 달리 잎을 떨군 나무들이 가득한 산자락은 보랏빛입니다. 보랏빛은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있는 색입니다. 막 해가 떨어진 저녁 하늘이 보랏빛이고 막 아침 해를 맞이하는 하늘의 색이 보랏빛입니다. 보랏빛을 지나면 어둠이 시작되고 보랏빛을 지나면 밝음이 시작합니다. 결국 끝과 시작은 함께 있는가 봅니다. 끝을 맞았다면 또 다른 출발을 할 수 있으니 용기를 가져도 될 것입니다. 무언가 시작하고 있다면 또 끝도 멀지 않으니 겸손해야 합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가득한 겨울 숲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빛 어딘가에 봄을 준비하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이미 봄이면 초록으로 피어날 작은 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목탁소리가 상념을 깨웁니다. 천년도 더 오래된 그 옛날. 제대로 된 지도도 없었을 그 시절에 이 첩첩한 산중에 찾아들어 절을 세운 옛사람의 눈은 혜안 그 자체일 것만 같습니다. 첩첩산중임에도 시야는 막히지 않고 그러기에 마음속 응어리졌던 그 무엇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빈 가슴속에 의문이 찾아듭니다. 지혜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입니다.

배워야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지혜는 태어나기 이전의 그 어떤 존재일 때부터, 그러니까 사람의 형상을 갖기 이전부터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 지혜를 갖추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즐거움 또한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지식으로 알 수 있는 지혜의 모습입니다. 그 지혜를 갖추면 그리움과 외로움, 사랑과 집착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원사는 지혜의 상징인 1만 문수보살이 상존한다는 오대산의 봉우리들은 보여주지만 지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떠한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세속과 단절하고 산중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스님들은 어쩌면 가장 용기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집 마당에서 만난 스님께 두손 모아 인사를 건넸습니다. 용기를 가진 자에 대한 경의였습니다. 돌아오는 스님의 인사가 유난히 맑습니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년) 신라의 보천왕자와 효명왕자에 의해 창건된 절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이야기도 많습니다. 세조가 친견한 문수보살이라는 문수동자상이 있고, 세조를 자객으로부터 구했다는 고양이상은 법당 계단 옆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의 아름다운 문양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귀한 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 법. 상원사의 귀함도 눈에 보이는 몇몇 유물보다는 그 정신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원사를 세운 신라의 두 왕자는 스스로 초막을 짓고 수행과 공양으로 세속의 지위가 가져다준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낮추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천왕자는 왕위를 거절하면서까지 그 삶을 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는 한암스님 또한 서울 봉은사 조실자리를 박차고 1925년 오대산에 입산해 입적할 때까지 수행자의 삶을 지켰습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오대산 모든 사찰들이 불태워질때도 스님은 상원사 법당에 꼿꼿이 앉아 절집을 지켰습니다. 상원사를 불지르기 위해 산에 올랐던 국군장교는 결국 스님의 자세에 탄복해 법당의 문만 떼어내 불을 질러 마치 상원사가 불태워진 것처럼 꾸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원사가 북방제일선원으로서 이름나게 된 것도 한암스님이 세운 전통 탓일 것입니다. 제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세조 역시 상원사에서 제 죄업을 참회했다고 합니다.

가지기도 쉽지 않지만 이미 가진 것을 버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르면 내려가야 하고 그릇은 비워져야 채울 수 있습니다. 상원사를 내려가는 길. 겨울나무들은 지난 여름 빼곡했던 잎들을 버린 나목으로 겨울바람을 이기고 있습니다. 지난 잎들을 버렸기에 저 나무들은 다가오는 봄 새로운 초록으로 다시 계절을 맞이할 것입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지만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상원사를 내려갑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적막한 월정사에서의 산책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가는 20여리 길은 귀한 길입니다. 아스팔트가 뒤덮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꽁꽁 얼어붙은 흙길은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를 폴폴 날리지만 머지않아 그 먼지는 사라질 것입니다. 오대산의 산중 사찰들은 그 길에 이제 자동차의 출입도 막겠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은 걸어야 합니다. 걷는 것은 당장의 고통이지만 걸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몸이 건강해질 것이고 길가의 생명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생명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마음까지도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월정사는 이미 산중에 자동차를 사라지게 하는 첫 발자국을 떼었습니다. 법당 앞 마당에 깔려 있던 자갈을 이미 볼 수 없습니다. 걸을 때마다 자박거리던 그 자갈 밟히는 소리는 흙에 기대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생명들의 아우성 소리였습니다. 자갈이 치워지고 드러난 흙빛과 어우러진 월정사 8각9층 석탑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월정사의 조치들은 인간이 편리함을 버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찾아가는 첫 징검돌입니다.

월정사 금강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겨울이라 찾는 이 귀하고 한낮인지라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습니다. 적막함이 있어 뒹구는 낙엽이 남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얼어붙은 계곡 물소리 들리지 않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수십 미터에 이를 정도로 곧게 자란 전나무는 여전히 초록입니다. 두팔을 가득 벌려 나무를 보듬어 봅니다. 얼굴을 자극하는 나무의 촉감이 거칠면서도 부드럽습니다. 혈관으로 전해지는 차가움은 차가우면서도 따듯합니다.

겨울 오대산. 채우려면 비우라고 이릅니다. 잃으면 얻는 것이 있음을 말합니다.

오대산 산사를 가려면

스님들 계실 때는 조용조용히~

정보 |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인 만큼 사찰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에서 찾기 쉽다. 특히 오대산 이름의 유래가 된 오대에는 각각의 사찰들이 있는데 상원사 인근의 서대 염불암은 전통 산간가옥인 너와집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다만 스님들의 정진도량이라 찾을 때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오대산 사찰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월정사 홈페이지(www.woljungsa.or.kr) 참조.

오대산 인근에는 대관령 삼양목장, 방아다리 약수, 오대산 소금강 등 관광지가 많다. 용평리조트, 휘닉스파크 등의 스키장과도 가깝고 강릉과도 1시간 내의 거리라 겨울여행의 기점으로도 적당한 곳이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와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그 길을 따르면 월정사에 이른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식당가를 지나면 월정사 주차장이다. 상원사까지도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월정사를 지나면 비포장도로다.

전나무 숲길부터 제대로 즐기려면 식당가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것이 좋다. 5분쯤 걸으면 일주문이 나오는 데 일주문으로 들어서야 전나무 숲길을 만날 수 있다. 월정사를 지나 부도밭의 숲도 꼭 돌아보도록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강릉이나 원주에서 진부로 와서 상원사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월정사를 경유해 상원사까지 하루 12차례 다닌다.

문의: 월정사(033-332-6664∼5), 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399)

숙박 | 월정사에서는 숙박이 곤란하다. 상원사에는 하룻밤 묵을 방이 있지만 동안거 기간 중이라 사전에 확인(문의: 상원사 033-332-6661~5)해보는 것이 좋다. 상원사에 묵을 때는 반드시 예불에 참여해야 한다.

월정사 입구에 여관과 오대산호텔, 민박이나 펜션 등이 많다. 월정사 앞 식당가의 산채정식은 반찬의 가짓수와 정갈한 산채요리로 유명하다.

글·사진 윤승일/ 자유기고가 nagneyoon@empal.com·편집 박초로미·디자인 문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