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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10분간의 명상록, <텐 미니츠 첼로>

8명의 거장들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철학적 질문 ‘시간이란 무엇인가’. <텐 미니츠 트럼펫>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

는 ‘텐 미니츠 올더 프로젝트’의 2부에 해당하며, 1부격인 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개봉하게 됐다. 에 참여한 감독은 모두 여덟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이크 피기스, 이리 멘젤, 이스트만 자보, 클레르 드니, 폴커 슐뢴도르프, 마이클 레드퍼드, 장 뤽 고다르다. 의 명성에 비교해도 떨어질 것이 없고, 참여한 감독 수도 한명 더 늘어났다. 프로듀서 중 한명인 니콜라스 매클린톡이 1975년에 제작된 허츠 프랭크의 10분짜리 다큐멘터리 에서 제목을 가져오고, 빔 벤더스와 짐 자무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비로소 완성된 시간 성찰 프로젝트의 두 번째 면모를 2002년 제작 이후 2005년이 되어서야 확인하게 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는 신화의 한 구절처럼 시간을 풀이한다. 낯선 이탈리아 마을로 들어선 인도 청년은 나무 밑에 앉아 목이 마르다며 물을 청하는 노인을 만난다. 노인에게 물을 떠주기 위해 헤매던 청년은 순간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만 노인을 잊는다. 그녀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행복하게 늙어간다. 그러나 불행은 그를 덮치고 가족을 삼킨다. 노년에 접어든 그는 정신을 잃고 걷다가 어느덧 다시 그 나무 아래 당도한다. 노인은 그제야 하루종일 기다렸노라고 말한다. 청년의 일생과 노인의 하루가 자연스럽게 겹치며 인생의 마디는 윤회의 원을 그린다. 시간에 대한 오래된 신화를 베르톨루치는 여전히 아시아적인 흐름 속에서 포착하고 싶어한다.

반면, 폴커 슐뢴도르프의 에서 상대적인 시간을 감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모기이다. 유원지로 놀러온 인간들은 그저 놀고, 먹고, 싸울 뿐이지만, 모기는 시간과 삶에 대해 고민한다. 제목처럼 서투른 계몽이어서 독창성이 떨어지지만, 상대적인 시간 개념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다. 마이클 레드퍼드의 에서 시간은 우주 안에 있어서 상대적이다. 우주 비행사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아들은 이미 백발 노인이 되어 있다. 그는 지구 바깥에서 10분을 살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가족은 벌써 수십년을 살았다. 걷기도 힘들 만큼 늙은 아들은 자기보다 몇 십년은 더 젊어 보이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 사랑해요”라고.

<물의 이야기>

<낭시를 향해서>

마이크 피기스의 에서 스토리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시간은 네개의 화면으로 분할되어 있고, 나눠져 있는 네개의 프레임을 통해 네개의 장소와 네개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로 동시진행되며 한 시각장 안에서 서로 헤쳐졌다 모이고, 또 연관을 맺는다. 깊지는 않지만, 재치있는 구성이고, 현란한 장치들이다. 이리 멘젤의 은 인간의 얼굴로 시간의 형상을 대신한다. 이 단순한 이미지의 모음들처럼 완강한 감정적 감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것을 완성하려면 영화가 상상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실제의 시간이 이미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인간의 육신이 있다는 사실을 이리 멘젤은 길고 긴 인생 동안 건져낼 수 있는 몇개의 클립을 모아 증명한다. 나무 밑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는 듯한 노인. 그는 배우이다. 음악이 흐르고, 그가 출연한 젊은 날의 영화 속 장면들이 차츰 하나둘씩 등장한다. 영화 속의 배우는 수없이 많은 다른 삶을 살지만, 동시에 나이를 먹어간다. 인간이 늙고 죽는다는 단순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준다.

<단 한번의 순간>

이스트만 자보의 에서 시간이란 불확실성의 배경이다. 그 안에서 생길 수 있는 몇만 가지 가능성의 뭉치들이다. 아내는 남편의 생일에 약간 들떠 있다. 그러나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과 싸우게 되고, 실수로 남편을 죽이게 된다. 행복은 그렇게 10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유의 폭이라는 면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리얼 타임에 가까운 롱테이크로 불확실성의 행위를 돌출시킨다. 클레르 드니의 는 시간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시간을 10분간 담는다. 기차 안에서 철학자와 그의 제자는 인종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언어로 가능한 사유가 왜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의아해할 때쯤, 기차 바깥의 풍경들과 시간이 그 언어를 돌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의 만이 오로지 객관으로서의 영화와 집단으로서의 역사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한다. 고다르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관념적 화두 앞에서도 물질의 역사들을 잊지 않는다. 이로써 시간에 관한 10분간의 명상록을 만들어낸 대가들의 이름은 열다섯명으로 늘어났다.

짐 자무시부터 첸 카이거까지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

에는 일곱명의 거장들이 참여한다. 짐 자무시, 빔 벤더스를 위시하여 빅토르 에리세, 베르너 헤어초크, 스파이크 리, 첸카이거가 그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그들이 시간을 사유한 방식들은 역시 제각각이다. 처음부터 10분간의 러닝타임을 제외하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더더욱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에는 출소한 남자의 10분이 그려져 있다. 시베리아로 갈 계획을 갖고 있는 이 남자는 10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치운다. 그에게는 일말의 준비도 필요없어 보이고, 그저 행동만 있다. 시간에 대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흥미진진하고도 조용한 블랙코미디다.

빅토르 에리세의 은 섬세한 이미지로 말을 건다. 아기와 엄마의 고요하고도 교감어린 모습이 함께하는가 하면, 시계 초침이 시간의 흐름을 고풍스럽게 보여주고, 그러다가 가끔씩 시간은 정지한 듯 움직이지 않는다. 때마침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그 순간 생명과 죽음의 예상들이 이미지 속에서 엇갈린다. 빅토르 에리세는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치 화풍이라 불릴 만한 이미지의 리듬으로 시간을 잡아낸다.

베르너 헤어초크는 역시 인류와 문명의 기나긴 시간에 관심을 돌린다. 이라는 제목답게 문명을 알아버린 브라질 원시부족의 지금을 찾아나선다. 인류학적 관심사로 거대한 초월적 자연을 그려내거나, 광대한 문명의 감동을 표현해온 헤어초크는 이미 문명의 악해에 물든 원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그 자연성이 어떻게 길들여졌는지를 쳐다본다. 영화 촬영 중인 여배우의 휴식시간을 소재로 한 짐 자무시의 은 산뜻하다. 10분여간의 휴식 동안 많은 사람들과 행위들이 바쁘게 일어나지만, 짐 자무시는 특별히 뭔가 표현하기보다 그저 담아내기만 하면서도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다.

빔 벤더스의 에는 약물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남자가 등장한다. 어서 빨리 도착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 그러나 빔 벤더스는 이 몽롱한 10여분을 음악과 뒤섞으며 몽환적인 상상의 로드무비로 만든다. 스파이크 리의 는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고, 명료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접전을 이루던 시각, 승리를 점치는 고어 진영의 사람들을 스파이크 리는 보여준다. 무엇을 강탈당했는지를 씁쓸하고도, 명확하게 다시 포착한다. 첸카이거의 은 아름다운 우화에 가깝다. 어느 노인의 이삿짐을 나르기 위해 도착한 짐꾼들은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노인의 맘을 다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빈손으로 끙끙거리며 물건들을 나르는 척 애를 쓴다. 첸카이거의 초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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