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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폴리스 스토리> 홍보차 내한한 성룡
사진 오계옥김수경 2005-01-27

“이제 액션보다 연기로 인정받겠다”

우리 시대의 버스터 키튼, 성룡이 돌아왔다. <뉴 폴리스 스토리>의 그는 예전처럼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웃음을 날리지 않는다. 술에 절어 길바닥에 몸을 누이고 한숨을 내쉬거나 비참하게 짓밟히는 주인공 진국영은 액션스타가 아닌 성격파 배우 성룡의 새로운 발걸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층버스에 스파이더 맨처럼 달라붙어 홍콩 시내를 누비고, 마천루에 맨몸을 내던지는 애크러배틱한 열정도 식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나이에 연기에 발을 내디뎌 쉰살이 된 성룡을 주말 오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났다.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에 들어선 그가 말하는 영화 그리고 아시아 이야기.

-당신의 첫 번째 영화는 무엇인가? 1962년작 <Big and Little wong tin bar>(1962)로 알려져 있는데.

=아니다. <양산박과 축영태> <정상연>이 먼저다. 이 영화들 역시 옌준 감독이 연출하고 여배우 리리화가 출연한 영화다. 나는 리리화의 아들 역으로 나왔고, 그녀는 당시 평소에도 나를 아들처럼 돌봐줬다.

-호금전의 <대취협>에도 참여한 걸로 안다.

=출연은 아니고 더빙을 했다. 어린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그걸 내가 불렀다.(즉석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성룡)

-<뉴 폴리스 스토리>는 당신의 몇 번째 작품인가.

=몇편을 찍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홍콩 영화산업이 저조한 상황이라 홍콩 정부나 국민들이 홍콩에서 영화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나 요청이 많았다. 그래서 JC라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처음 찍은 영화가 <뉴 폴리스 스토리>다. 동남아시아에서 이렇게 큰 흥행을 거두리라는 예상은 못했다. 금마장영화제에서 6개 중 4개를 차지했고, 특히 관객상을 받은 점이 기뻤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진지한 연기나 비극적인 캐릭터가 황지강이 감독한 당신의 전작 <중안조>를 떠올리게 한다.

=진지한 면은 유사하지만 중안조의 캐릭터는 멋있는 슈퍼캅에 가깝다. 터프하고. <뉴 폴리스 스토리>의 진국영은 언뜻 보면 터프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아무리 강해도 약한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전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는 웃고 즐기는 즐거운 경찰 이야기에 국한되었다. 이번에는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이번 영화를 포함해서 나는 경찰 역을 너무 많이 해서 길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나를 경찰로 기억한다. (웃음)

-오언조, 사정봉 같은 젊은 배우들을 다양한 캐릭터로 대거 기용했다. 호흡은 잘 맞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새로운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찾는다. 특히 영어권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그들은 재능있는 젊은 배우들이다. 내가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는 일만큼 젊은 배우들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서 찍은 당신 전작들과 많이 다르다. 액션이 줄었다는 평도 있는데.

=장이모나 리안이 드라마를 주로 만들다가 액션을 찍는 것처럼 나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다. 현재는 내가 코미디 일변도의 영화를 찍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저런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찍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액션스타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나를 보는 게 무조건 좋지는 않다. 미국과 유럽에서 거닐때면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쿵후 동작으로 흉내내며 “재키 챈”라고 이름을 부른다. 그 누구도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에게는 이름을 부르며 그런 동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평생 액션배우만 해야 하는가 하는 회한이 밀려들었다. 연기실력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력파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실력파 연기를 하는 배우는 일흔, 여든살이 되어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액션영화는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찍을 수 없는 것과는 반대로.

-사형인 홍금보, 사제인 원표 같은 동료들은 잘 지내고 있나.

=연락은 자주 하고 만나지만 그들은 반쯤 은퇴한 상황에 있다. 그것은 홍콩 영화시장이 위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좋은 영화를 찍어도 많은 홍콩 사람들은 그걸 극장에서 안 보고 홈시어터로 본다. 그것도 불법복제로 본다.

-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 시장의 영화 불법복제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그건 중요한 문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니까. 한국영화의 불법복제판이 홍콩에서도 범람하고 있다. 다만 한국 내 영화시장이 크고 단단해서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뿐이다. 현재 홍콩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성공할 때 그것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과거를 보자. 홍콩영화가 전성기였을 때 아시아 사람들은 홍콩 차, 홍콩 스타들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현재는 김치, 신라면을 먹고 한국 여행을 즐긴다. 홍콩 연예면에도 한국 스타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중국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표 한장에 인민폐로 10원 정도밖에 안 했지만 현재는 60원이다. 불법복제로 인해 매출이 발생하고 그게 다시 영화제작에 투입되지 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절대 불법복제 DVD나 CD에는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 중국에 갔을 때 어느 여자아이가 불법복제판을 들고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안 해줬더니 나가서 또 사왔는데 두 번째 사온 것도 불법복제판이었다. 너무 안쓰러워서 매니저에게 140원짜리 정식발매판을 사오라고 돈을 줘서 보냈지만 두 시간을 뒤졌는데도 정품을 살 수 없었다. 이런 현실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당신이 찍는 영화와 이번처럼 홍콩에서 찍는 영화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에 따라 팬층이 다르다. 당신은 <러시아워>와 이번 작품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가? (기자가 <뉴 폴리스 스토리>라고 답하자) 그것 봐라. 당신은 내 영화를 꾸준히 수십편 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관중도 두 부류로 구분된다. 원래 팬들은 내 스타일을 잘 알고 홍콩에서 찍은 영화를 더 좋아한다. 반면에 미국의 젊은 새 관객은 <러시아워>에 열광한다.

-최근에 한국 배우들과 같이 작업했는데 어땠는지.

=한국 배우들의 프로정신은 굉장하다. 같이 작업한 최민수, 김희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 어떤 태도인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영하 25도의 추위에 기절할 상황에서도 김희선은 울면서 계속 촬영을 강행했다. 최민수는 나와의 액션장면에서 피가 나는 타격에도 ‘괜찮다’라며 손을 내저으며 촬영에 임했다. 웬만한 젊은 배우였다면 바로 병원에 가자고 누웠을 것이다. (웃음)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사람은 장동건. 정말 실력파 연기자다. 이병헌도 그렇다. 그들과 굉장히 남성적인 영화를 찍고 싶다.

-한국영화 드라마 합작계획이 있다고 밝혔는데.

=드라마는 시나리오가 이미 나온 상황이다. 2월 중순쯤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화는 아직 드라마에 비해 진행이 빠르지는 않다. 영화는 한국에서 찍고, 드라마는 한국과 중국이 모두 등장하는 설정이 될 것 같다. 내용은 당연히 비밀. (웃음) 아시아 전체로 공동제작의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아시아영화의 공동제작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이 협력하면 아시아 관객만 20억명이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그런 20억 관객 중 대다수는 미국영화, 힙합에 영향받는 상황이지만 아시아에는 아시아만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한국전쟁의 기억에서 비롯된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작품은 홍콩에서는 찍을 수 없다. 한국영화가 홍콩이 위력을 보이던 장르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현실이다. 한국 액션영화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지만. 우리 팀원 중에도 이미 한국 사람이 둘이나 있다. 그럼에도 홍콩이 강세를 가질 수 있는 장르는 액션일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나는 사람들이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할 영화를 찍고 싶다. 내 영화가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까지나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는 계속 노력해봐야겠지만. 아시아 어느 곳을 가도 사람들은 <취권>과 <폴리스 스토리>를 기억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에 버금가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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