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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너무들 착하네! <부모님 전상서>에 공감 못한다

부모 세대를 위한 가족 판타지, <부모님 전상서>

모든 부모가 바라는 이상적 자녀상이 드라마에 집약되어 있다. 사진 KBS

등장인물 모두 비유의 달인들이다. 말투나 쓰는 표현이 가끔 쌀쌀 맞다. 속 깊은 캐릭터와 철없는 캐릭터가 대조를 이룬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주책 캐릭터가 꼭 있다.

내가 발견한 김수현 드라마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인물들의 대화만 들어봐도 김수현 드라마인지 금새 구별이 가능한데, 딱 떨어지는 말투와 확실히 튀는 표현 때문이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김수현 작가는 상황마다 매우 기발하면서도 적절한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 소설로 따지면 ‘문체’쯤 될 드라마 속 인물들의 ‘말투’는 적어도 나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무척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수현식 따발총 대사는 ‘언어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낳았지만, 그 말투 만큼은 너무 쏘아붙이는 듯하여 부담스럽다. 문제는 부담을 느끼니 감정이입에도 애를 먹는다는 점인데, 돌이켜 보면 김수현 드라마 앞에서 박장대소하거나 엉엉 울어본 일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부모님 전상서>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이 드라마를 ‘부모 세대를 위한 가족 판타지’라고 부르고 싶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상, 젊은 세대상이 그 드라마에 모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젊은이들이 그 드라마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일반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가족이 한옥집에 모두 모여 살고, 자식들은 저마다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하며, 며느리들 또한 시부모 봉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데다 막내딸은 예쁘고 착한 애교만점 처녀로 자라주었다. 이는 모든 부모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족 내지는 자녀의 모습이며 그 자녀들을 둘러싼 주변인들마저 도덕 교과서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마냥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모습이 싫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반듯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덩달아 착해지는 기분도 들어 좋다. 그러나 시부모 봉양을 피하면 나쁜 며느리고 결혼 전에 여행가는 남녀는 아주 큰일날 사람들이며 서른이 넘도록 시집 못간 노처녀는 도리를 생각해서 받아주어야 한다? 드라마 속 메시지가 정말로 옳다면, 현실에는 비난 받아 마땅한 젊은이들 투성이리라.

허나 그 비난 받아 마땅한 젊은이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 문제로 초조해 하지 않으면서 사랑도 일도 열심히 하고,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해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그들을 그 누가 욕할 수 있으랴. 결혼해서도 부모님이 해주시는 아침밥 먹고 출근하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혼자 아침밥 지어먹고 출근하는 젊은이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성실하고 훌륭한 젊은이인가는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부모님 전상서>는 전자, 즉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긴 하지만 자녀 세대마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세대의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부모 세대를 위한 가족 판타지’로 보일 정도다. 자녀세대와의 충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가 바라는 바로 그 모습으로 자녀들이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김수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감정이입에는 끝내 실패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녀의 드라마에는 어딘가 고압적인 태도가 녹아있다. 쏘아붙이는듯한 말투, 가부장적인 가치관. 그것은 자녀 세대인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또한 반항하게 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한동안은 김수현 드라마의 팬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