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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짜인 스릴러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 <서스펙트 제로>
이다혜 2005-03-15

연쇄살인마를 노리는 연쇄살인자, 그가 원하는 것은 처벌인가 구원인가.

연쇄살인마 하나로는 스릴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FBI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펙트 제로>는 수많은 실종과 연쇄살인을 켜켜이 쌓고, 그 위에 원격투시가 가능한 사람들을 양성하는 FBI의 ‘이카로스 프로젝트’라는 고명을 얹었다. 제목인 서스펙트 제로란, 일정한 패턴이 없이 연쇄살인을 반복해서 프로파일링이 불가능한 범인을 뜻한다. 스펙만으로 보면 스릴러 팬들이 당장 덤벼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구소련에서 처음 시도한 이래 FBI가 일급 기밀 프로젝트로 실제 운영했다는 이카로스 프로젝트라는 음모론적인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으니.

언뜻 보기에 평화로운 광경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FBI 요원 토마스(아론 에크하트)는 연쇄살인범 체포 과정에서의 돌출행동으로 뉴 멕시코 지부로 전출당한다. 토마스는 세일즈맨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시체가 발견된 식당 주차장에 버려진 차 트렁크에서 또 다른 시체를 발견한다. 토마스가 쫓던 연쇄살인범도 시체로 발견되는데, 시체 세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특이한 제로 표식을 조사하던 그는 살해된 세 명이 법의 망을 피해 살아가는 극악한 연쇄살인마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토마스는 자칭 전직 FBI 수사관이라는 벤자민(벤 킹슬리)으로부터 실종자들에 대한 팩스를 받고, 그를 범인으로 추정, 수사를 해나간다.

문제는, 영화가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데도 권태롭다는 것이다. 사건을 지원하기 위해 온 프랜(캐리 앤 모스)은 토마스와 옛 연인관계였지만 두 사람에게 <X파일>의 음모론에 사로잡힌 멀더와 이성적인 스컬리가 어정쩡하게 오버랩된다. <매트릭스> 시리즈와 <메멘토>의 캐리 앤 모스와 <간디>의 벤 킹슬리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프랜은 계속 엇박으로 수사를 진행해가고, 벤자민은 반전을 암시하다가 음모를 암시하더니 구원을 논한다. 연쇄살인범을 쫓아가던 이야기는 황폐한 사막 복판에서 이카로스 프로젝트의 희생자의 고통어린 얼굴로 이어진다. 그저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느끼는 지독한 두통과 환청에만 감정이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고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 꽉 짜인 스릴러를 만나기가 이렇게 어렵다. 좋은 배우들과 끔찍한 시체들, 연쇄살인 퍼레이드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뉴 멕시코의 태양 아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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