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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의 기록, <아무도 모른다>
박은영 2005-03-29

어른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의 기록.

엄마가 집을 나갔다.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를 힐끔 보고는 엄마가 남긴 돈을 꼼꼼히 세어보고, 바로 밑의 여동생에게 당분간 엄마가 안 올 거라고 일러준다. 동생도 놀라는 기색없이, 세탁기를 마저 돌린다. 그렇게 계절이 세번 바뀌었다. 돈은 진작 떨어졌고, 전기도 수도도 끊겼다. 처음으로 다 같이 외출하던 날, 그들은 아스팔트 보도 틈에서 솟아난 잡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누가 버리고 갔나봐. 불쌍하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거둬들인 잡초에 이름을 붙이고 정성껏 보살핀다. 기왕이면 먹을 수 있는 야채를 키우지 그랬니, 엄마의 새 주소로 찾아가면 됐을 텐데, 하는 탄식어린 충고는 부질없다. 그건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궁핍하고 위태로워 보이긴 해도, 아이들의 우주는 그 자체로 싱그럽고 풍요롭다.

17년 전 도쿄에서 있었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강조하는 것처럼 “재현 드라마”는 아니다. 아버지가 다 달랐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법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웃의 눈에도 띄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는 이야기. 감독은 이 상황을 가져오면서,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구성했다. 사회고발성 드라마로 비치거나, 떠나간 엄마를 가해자로, 남겨진 아이들을 피해자로 이분하는 위험을 피해가려 한 것이다. 어른들이 철없어 보이고, 아이들이 조숙해 보이는 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엄마의 고백에서 진심이 읽히고, 복지기관 때문에 “뿔뿔이 헤어질 뻔했다”며 지원 요청을 거부하는 아키라의 태도에서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동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작품에서보다 나와 인물들의 거리를 좁혔고, 나란히 서서 어깨를 감쌀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그렸다”는 감독의 설명처럼,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온기를 지닌 관찰자의 시점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아무도 모른다>의 마법 같은 생기와 아름다움은 상당 부분 아역 연기자들의 생생한 연기에서 뻗어나왔다.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촬영하는 1년 동안 역할 속에서 숨쉬고 자라났다. 동생들을 돌보는 열두살 가장 역할의 야기라 유야를 비롯한 아이들의 풋풋한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깊이로 보는 이의 감정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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